ADVERTISEMENT

"너, 수박이지?" 개딸들은 文까지 넣은 '수배 포스터' 돌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헌정사 초유의 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의 ‘찬성 139, 반대 138’이란 초박빙 부결에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8일 ‘마이웨이’를 선택했다. 당내에서 37명의 조직적 이탈표가 나온 것도 일단 무시하고 가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이 대표 강성 지지자들이 비이재명(비명)계 의원 30~40명의 이름을 적은 총선 낙천·낙선 ‘살생부’가 당 안팎으로 돌았다. 반면에 비명계에선 “6월 전에는 당 지도체제 변화가 필요하다”며 이 대표 거취를 압박하면서 친명계와 비명계 사이의 내분은 커지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서울 은평구 수색초등학교를 찾아 학교 급식노동자들의 폐암 진단 필요성을 촉구했다. 지난주 잡은 일정을 그대로 소화한 것이다. 동행한 친명계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위생모를 비뚤게 쓴 모습을 가리키며 “스타일이 거의 반 불량인데”라는 농담을 건네는 등 짐짓 여유로운 모습을 연출했다.

이 대표는 ‘거취 표명을 할 건가’ ‘이탈표 색출에 나선 지지자에게 자제를 요청할 건가’ 등의 취재진 질문엔 별다른 표정 없이 침묵했다. 대신 “이재명을 잡느냐, 못 잡느냐 이런 문제보다는 우리 물가도 잡고 경제도 개선하고 사람들의 삶도 낫게 만드는 문제에 많이 관심을 가지시기 바란다”고만 했다.

당 지도부도 대규모 이탈표 사태를 봉합하는 데 주력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부결은) 정치검찰의 부당하고 과도한 표적 수사에 대한 헌법정신을 지킨 당연한 결과”라면서 “당의 단일대오를 위해 더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조정식 사무총장은 이날 오후 고위전략회의에서 전날 표결 결과를 논의한 뒤 “당 대표와 지도부는 눈과 귀를 더욱 크게 열고 의원들의 마음을 더 크게 하나로 모으는 일에 주력하기로 했다”면서도 “윤석열 정권의 탄압을 이겨내기 위해 단합이 최우선 과제임을 인식하고 국민이 바라는 민주당의 길로 모두 함께 가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에 친명 강경파는 역공에 나섰다. 김남국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어제 체포동의안 표결은 당원들과 국민의 절박한 호소를 외면한 것”이라며 “사실상 민주적 절차에 따라 선출된 당 대표를 실력행사를 통해 끌어내리겠다는 선언”이라고 적었다. 이어 “앞에선 부결을 외치고, 뒤로는 가결과 무효표를 조직했다”며 “체포동의안 처리를 무기로 ‘공천권 보장’을 거래한 것”이라고 비명계를 비판했다.

개딸, 비명계 살생부 돌리자…이재명 “당 단합에 도움 안돼”

이재명 민주당 대표 강성 지지자들이 28일 체포동의안 이탈표를 색출하겠다고 올린 문자 캡처와 ‘총선 낙선 의원 살생부’. [사진 재명이네 마을 캡처]

이재명 민주당 대표 강성 지지자들이 28일 체포동의안 이탈표를 색출하겠다고 올린 문자 캡처와 ‘총선 낙선 의원 살생부’. [사진 재명이네 마을 캡처]

당 지도부의 수도권 친명계 의원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비명계가 조직적으로 기권표와 무효표를 끌어냈다”며 “치사하고 졸렬하게 뒤통수친 행위는 언젠가 책임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전날 민주당 지도부는 국회 본회의 직후 이 대표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37명 이탈’의 원인을 분석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선 구체적인 비명계 의원 이름을 거명해 “표결을 앞두고 자기들끼리 모여 회의도 하고 전화를 돌렸다”는 취지의 얘기가 오갔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이번 비명계의 책동은 선을 넘었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친명 지도부가 오히려 ‘강경 노선’으로 반격하자 비명계는 “이 대표가 응답할 순서”라며 대표직 사퇴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5선의 이상민 민주당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어제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겉에 나온 숫자는 빙산의 일각이다. 물밑에 있는 얼음덩어리가 더 크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가 억울하다 할지라도 자신의 문제 때문에 당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진 만큼 당 대표로서 책임도 있는 건 틀림없다”고 말했다.

친문재인계 재선 의원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가 당장 어떤 액션을 취할 생각이 없으니 내부 논쟁이 꽤 길어질 것”이라며 “3월에서 6월 사이 늦어도 여름이 오기 전엔 지도체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비명계 의원은 “추가 체포동의안이 넘어올 경우엔 이 대표가 대표직을 내려놓는 결단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 대표 강성 지지자인 ‘개딸’(개혁의딸)들은 이탈표 37명을 겨냥해 대대적인 ‘수박·배신자 색출’에 나섰다. 대표적인 친명 온라인 커뮤니티인 ‘재명이네 마을’ 등에 ‘총선 낙천·낙선 대상 의원 명단’이란 이름으로 42명의 비명계 의원 살생부가 올라왔다. 일부는 문재인 전 대통령 부부까지 포함한 ‘역적 배신자’ 수배 포스터를 만들어 소셜네트워크(SNS)로 돌리기도 했다.

살생부엔 주로 이상민·설훈·조응천·이원욱·박용진 의원 등 이 대표 방탄을 비판했던 비명계와 친문계 의원들이 포함됐다. 전날 체포동의안은 무기명 투표로 이뤄져 실제 어떻게 투표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계파 성향별로 추측해 총선 살생부를 만든 것이다.

일부 ‘개딸’은 “인증샷”이라며  지역구 의원에게 “투표에서 가결하셨나요? 부결하셨나요?” 확인하는 문자를 보낸 뒤 답변을 캡처해 공개했다. 한 의원은 지지자가 “제 손으로 뽑은 의원이 설마 (체포동의안) 가결에 동의했는지” 묻자 “그럴 리가 있나.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또 다른 의원은 강성 지지자가 “수박 인증 제대로 했네요”라고 보낸 문자에 “부표 던졌으니 함부로 얘기하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친명계도 배신자 비난에 동참했다. 양이원영 의원은 페이스북에 “앞에선 동지처럼 웃고 뒤에선 검찰 독재에 굴복하다니 제 눈과 귀를 의심했다”고 썼다.

개딸들의 비난 공세가 심각한 수위에 이르자 이재명 대표는 오후 늦게 “의원들 개인의 표결 결과를 예단해 명단을 만들어 공격하는 등의 행위는 당의 단합에 도움되지 않는다. 민주당을 사랑하는 당원들은 중단해주셔야 한다”고 자제를 당부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