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D 약관 … 슬며시 바뀐 내용 체크해 보셨습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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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당신의 펀드는 안녕하십니까-'.

수익률 얘기가 아니다. 펀드 약관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약관은 투자자와 운용사 간의 법률적 '약속'이다. 그런데도 운용사가 일방적으로 그 약속을 바꾸는 사례가 허다하다. 법적 절차를 따르기는 했지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배신감을 느낄 만하다. 운용사가 판매사를 통해 알리기는 하지만 쓰레기(스팸)메일과 광고성 우편물에 섞여 들어온 약관 변경 통지를 알아채는 투자자는 그리 많지 않다. 약관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투자자도 많다.

◆운용사 마음대로 바꾸는 '약속'=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에 따르면 수수료 인상 등 투자자의 이익과 직결되는 중요 사항을 제외하고는 자산운용사가 임의로 약관을 바꿀 수 있다.

수수료 인상 등은 펀드 투자자의 의결기구인 수익자 총회를 거치도록 돼 있지만 그 외의 사항은 자산운용협회나 금융감독위원회에 보고만 하면 된다.

그렇다 보니 운용사들의 필요에 따라 약관을 바꾸는 사례가 빈번하다. 프랭클린템플턴투신운용은 지난달 '템플턴글로벌채권형모투자신탁'의 약관 중 일부를 변경했다. 신용등급 BBB- 이상의 채권에 투자 가능하도록 한 조항을 삭제하고, 모든 등급의 채권에 투자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신용등급이 A3- 이상인 어음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한 것을 수익률은 높되 위험도가 큰 신용등급 B 이상 어음까지로 확대했다. 투자 대상을 늘려 운용의 폭을 넓히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만큼 투자 위험도 높아지는 셈이다.

푸르덴셜투신운용도 지난달 초 'Pru아시아채권모신탁'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에 30%까지 투자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아시아 채권에 투자한다는 원래 취지가 무색해진 셈이다.

약관상에 명시된 목표 수익률을 낮춘 경우도 있었다. CJ자산운용의 '빅&세이프오토컨버젼주식투자신탁1호'는 원래 10% 이상 수익을 올려야 안전자산으로 전환되는 펀드다. 그러나 올해 초 고점을 찍은 증시가 하락세를 보이자 3월 전환 가능 목표수익률을 8%로 낮췄다. 이 회사 관계자는 "고객들에게 선택권을 주기 위해 수익률 달성 기준을 낮춘 것"이라고 말했다.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20일까지 총변경된 약관은 모두 946건. 투자와 관련된 사항을 쉽게 풀어 설명한 투자설명서까지 합치면 변경 사례는 2500건에 달한다.

◆ 꼼꼼히 확인해야=운용사들이 약관을 변경하면 법에 따라 일간지에 공고를 하거나 홈페이지에 공시를 해야 한다. 운용사들은 투자자와의 '약속'을 바꾸기는 하지만 '몰래' 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약관 변경은 펀드 운용의 묘를 살리기 위해 투자 대상이나 비율 일부를 약간 바꾸는 것뿐"이라며 "법적 절차를 준수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무리한 약관 변경은 투자자에게 혼선은 물론 재산상의 피해까지 끼칠 수 있다. 안전자산에 투자하는 펀드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약관을 바꿔 위험자산에 투자했다가는 손실을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로선 자신이 계획한 분산투자 효과가 어긋날 수도 있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약관은 투자자와의 약속인 만큼 약관을 자주 바꾸다 보면 고객과의 신뢰에 금이 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투자자들도 자신이 투자한 펀드에 대해서만큼은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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