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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 미중관계·한국정치의 종속에서 탈피해야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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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유럽의 가장 큰 두 축이었다. 해양 세력인 영국은 고래로 대륙의 최강국을 견제하며 세력균형을 유지해 왔다. 윈스턴 처칠은 “400년 동안 영국의 외교정책은 대륙에서 가장 강하고 가장 공격적이고 가장 지배적인 세력과 겨루는 것이었다”고 했다. 일찍이 단일 민족국가를 구성하고 유럽 최대의 영토와 인구를 보유했던 프랑스는 영국의 숙적이었다.

14세기에 백년전쟁이 발발한 이후부터 19세기 나폴레옹 전쟁 때까지 600여년 동안 두 나라는 원수처럼 적대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부터 분위기가 반전됐다. 유럽 대륙에 러시아와 독일이라는 새 강자들이 부상하자 영불은 손을 잡았고, 이후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으로 함께 독일에 대적했다. 도버해협을 사이에 둔 영국과 프랑스는 현재 유럽 주요국 중 가장 오랜 기간 우애를 다져온 나라들이 됐다.

공교롭게도 영불이 적대에서 우호 관계로 돌아선 즈음부터 한반도와 일본은 우호에서 적대로 돌아섰다. 삼국시대 백제와 일본 왕실의 관계에서 보듯 한일은 대체로 선린(善鄰) 관계를 이어왔다. 고려 말 여몽 연합군이 일본을 침공했고 조선 때 임진왜란을 겪기도 했지만 두 나라의 대결 국면은 오래가지 않았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1868)을 이룩하고 운요호 사건(1875)을 일으켜 조선 침략에 시동을 건 19세기 후반 이후 현재까지 150여 년이 역사상 가장 불편한 한일관계였다고 볼 수 있다.

고대부터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는 중국 대륙이 좌우해 왔다. 중원의 제국은 천하관(天下觀)에 입각해 주변국들에 조공과 책봉을 관철했다. 일본은 한반도에 비해 이런 질서로부터 다소 자유로웠다. 전국시대를 끝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휘하 다이묘들에게 영지를 나눠준다는 명분으로 조선과 명나라, 나아가 인도까지 정벌하겠다고 선언했던 정도를 제외하면 일본 조정이 동아시아 대륙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일은 거의 없었다.

고대부터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는 중국 대륙이 좌우해 왔다. 사진 셔터스톡

고대부터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는 중국 대륙이 좌우해 왔다. 사진 셔터스톡

메이지 유신을 전후해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를 경험한 일본의 국가 대전략은 바뀌었다. 대륙의 청나라가 종이 호랑이로 전락했고 러시아가 극동 지역에서 남하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영국과 미국은 일본에 힘을 실어줬다. 유럽에서 해양 세력인 영국과 대륙 세력인 프랑스·독일·러시아가 경쟁했다면 동아시아에선 해양 세력인 일본과 대륙 세력인 중국·러시아가 경쟁했다. 경쟁의 교두보는 한반도였다. 이런 이유로 일본은 한반도 국가를 우호 세력으로 만들거나 자신의 통제 아래 두려 했다. 그 결과 조선은 일본에 국권을 탈취당했고 35년간 식민 통치를 받아야 했다.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의 경쟁·대결이라는 관점은 현재도 유지된다. 해양 세력인 미국은 미소 냉전 종식 이후 세계 유일의 패권국으로 국제질서를 관리했다. 대륙 세력인 중국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전후해 미국 다음가는 경제 대국으로 떠올랐고 미국과 더불어 G2로 불리기 시작했다. 시진핑 정권이 들어선 이후론 정치체제와 군사, 과학기술 분야에서 미국과 경쟁을 본격화했다. 미국은 중국을 전략적, 구조적 경쟁 대상으로 규정하며 신냉전의 서막을 열고 있다.

일본은 동아시아 역내에서 중국에 맞서는 미국의 대리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보통국가로 개헌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고 미국이 이를 지지함에 따라 앞으로 그 역할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도 일본과 함께 적극적으로 그 역할에 동참해 주기를 미국은 바라고 있다. 반면 중국은 한국이 한미일 삼각 동맹에서 철수해 친중 노선을 걷기를 요구하며 경제적 압력들을 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일관계는 기본적으로 미중관계라는 독립변수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 간 경쟁이 심화할수록 일본은 미국과 동조하며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게 될 것이다. 그간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을 내세우며 ‘전략적 모호성’ 정책을 펴온 한국 정부도 ‘전략적 명확성’을 양쪽으로부터 요구받게 될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일 삼각 협력을 명확히 하고 있다. 3국 군사협력 수준을 높이고 일본, 유럽과의 무역 활성화를 통해 경제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 노력 중이다.

한일관계. 사진 셔터스톡

한일관계. 사진 셔터스톡

중국의 국력이 현 상태를 유지하거나 발전하고, 미국과의 경쟁 구도를 현 상태 또는 그 이상으로 심화하며, 동아시아 역내에서 공격적 군사 행동들을 빈번히 벌인다면 한일관계는 더욱 밀착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자신의 군사력을 철수하고 대신 일본과 한국에 중국 견제를 위임하는 역외 균형(offshore balancing) 전략을 선택한다면 한국과 일본은 양자동맹 수준으로 안보협력을 강화할 수도 있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이 ‘세계의 경찰’ 역할에 불필요하게 국력을 소모하지 않겠다며 역외 균형을 시도했었다. 반면 중국이 후진타오 정권 이전처럼 미국과 경쟁하는 태도를 버리고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수용한다면 한국과 일본이 밀착할 유인은 낮아지게 된다. 하지만 북한이 핵 무력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일정 수준 이상의 한일 군사협력은 유지될 수밖에 없다.

한국의 국내 정치 상황도 한일관계에 작지 않은 변수다. 많은 한국 지도자들이 한일관계를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 꾀했다. 독립운동 지도자였던 이승만 대통령은 독도를 무력 점령하고 이른바 평화선을 설정하는 등 일본을 자극하는 동시에 정치적 반대파를 친일파로 몰았다. 박정희·전두환 대통령은 차관 도입 등 경제적 목적을 위해 반일 정서와 교과서 왜곡 문제 등으로 일본을 압박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는 등 반일 민족주의 선동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려 했으나 IMF 외환위기 때 일본의 비협조로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을 받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남북 화해를 추진하기 위해 일본에 손을 내밀었고 ‘김대중·오부치 선언’으로 한일 데탕트 시기를 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내 정치적 위기를 반일 이슈로 타개하기 위해 한국 대통령 최초로 독도를 찾았다가 일본에서 대대적 혐한 사태를 초래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불매운동 등으로 반일 선동을 해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삼으려 했다.

요컨대 한일관계는 기본적으로 세력균형이라는 국제정치 원리에 의해 미중관계의 종속변수로 작동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 국내 정치 상황에 따라 이용돼 오기도 했다. 식민 지배라는 구원(舊怨)을 털어내고 영국과 프랑스처럼 호혜 관계를 안정적으로 이어가기 위해선 미중으로부터 보다 독립적인 한일관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선 양국이 현재보다 높은 수준의 신뢰를 쌓아야 한다. 그러려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양국 간 맺은 국제 조약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행태는 사라져야 할 것이다. 독도처럼 민감한 문제는 한국이 일본의 국제사법재판소 제소에 응할 생각이 아니라면 먼저 독도 이슈를 꺼내 일본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

이충형 차이나랩 특임기자(중국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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