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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8억 빠질 때, 전세는 9억 넘게 폭락…이런 낯선 일,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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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안장원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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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시장 대혼돈

안장원 부동산선임기자

안장원 부동산선임기자

다음 달 10일이면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지 1년을 맞는다. 주택시장은 이전 정부에서 가보지 않은 길에 들어섰다. 직전 문재인 정부와 반대 방향인 데다 매매가격보다 전셋값이 더 떨어지는 매우 낯선 길이어서 시장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 25% 하락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실거래가격을 기준으로 전국 아파트값이 2021년 10월 하락세로 돌아선 뒤 지난달 말까지 잠정적으로 18.9% 내렸다. 서울이 24.6% 하락했다. 집값 4분의 1 토막이 날아간 셈이다. 시세통계도 정도가 좀 덜하긴 해도 보기 드문 수치를 보여준다. 전국 아파트값 하락세가 실거래가보다 3개월 늦게 지난해 2월 시작해 지난달까지 1년 새 9.5% 내렸다.

지난해 이후 매매·전세 동반 폭락
전셋값 낙폭 더 커…60% 내리기도
월세 늘어나며 전세대출 큰 부담
고금리 계속되면 반등 어려울 듯

급락하는 아파트 매맷값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전셋값이 떨어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내 부동산중개업소의 매물 안내판. 매매보다 전·월세가 더 많고 전세와 월세가 비슷하다. 뉴시스

급락하는 아파트 매맷값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전셋값이 떨어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내 부동산중개업소의 매물 안내판. 매매보다 전·월세가 더 많고 전세와 월세가 비슷하다. 뉴시스

실거래가격이 시장 동향을 빠르고 더 큰 폭으로 보여주는 것은 전체 재고보다 거래량은 적지만 시장을 앞서 움직이는 실제 거래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시장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시세통계는 거래가 없어 가격 변화를 보수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대다수 비거래 단지를 포함하다 보니 더디다. 실거래가격이 격변기엔 피부에 실감 나는 통계다.

올해 들어 거래된 개별 단지 실거래가를 들여다보면 2021~2022년 최고가의 반 토막이 잇따르고 있다. 전국에서 집값이 가장 많이 내린 세종과 대구는 이미 이전 고점의 절반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세종시 H아파트 84㎡(이하 전용면적)가 4억9000만원으로 2021년 최고가 11억5500만원의 43%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수도권에선 인천에서 50% 넘게 빠진 단지가 나오고 있고 서울도 40% 넘게 빠진 아파트가 적지 않다. 2021년 12억9500만원까지 거래된 인천 청라지구 C아파트 84㎡가 6억원으로 내려갔다. 서울 강북 동북권인 노원·도봉구에서 50% 가까이 하락한 거래가 눈에 띄고 강남권인 송파구 단지들이 30~40% 하락했다. 금액으로 보면 서초구 재건축 추진 아파트가 지난해 9월 최고 73억원에서 올해 43억원으로 가장 많은 30억원 빠졌다.

시장이 급속 동결됐다고 할 만큼 거래가 급감했다. 지난해 전국 아파트 거래량이 2006년 조사 이후 처음으로 30만 가구를 밑돌았다. 그동안 가장 적었던 2012년 50만 가구보다 40% 넘게 적고, 2006~2021년 연평균 거래량(65만 가구)의 절반이 되지 않는다. 서울 노원·도봉구가 10~11%로 최저다. 지난해 서울에서 집값이 가장 많이 내린 지역이기도 하다.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는 “거래는 수요를 나타내는 주요 지표로 그만큼 집을 사려는 사람이 확 줄며 가격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아파트값이 2년 이전으로 뒷걸음질 쳤다. 실거래가격 수준이 전국이 2020년 11월, 서울은 이보다 더 물러난 2020년 7월과 비슷해졌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인 2020년 이후 치솟던 집값이 거꾸로 비슷한 속도와 폭으로 주저앉고 있는 셈이다.

15억 넘은 전셋값이 6억으로

그런데 알고 보면 전셋값이 더 많이 내렸다. 시세통계 상으로 지난해 이후 서울 아파트값이 9.4% 내리는 동안 전셋값이 14.2% 하락했다. 송파구 K아파트 84㎡ 매매 실거래가가 최고 23억8000만원에서 15억3000만원으로 35% 내리는 사이 전셋값은 15억8000만원에서 6억원으로 60% 넘게 떨어졌다.

지난해 11월부터 지난달까지 3개월간 서울 아파트 전세 갱신 계약 1만여건을 분석한 결과 20%가 넘는 2200여건이 이전보다 낮은 금액에 재계약했다. 19억5000만원이던 강남구 L아파트 158㎡가 13억원으로 다시 계약서를 썼다.

매매 수요 감소로 임대 수요가 늘었지만 전세 수요는 줄었기 때문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주택 전·월세 거래량이 283만건으로 2021년(235만건)보다 48만건(20%) 많다. 2021년 대비 지난해 줄어든 전국 주택 거래량이 50만건 정도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늘어난 전·월세 거래량 대부분 월세다. 48만건 중 월세가 45만건이고 전세가 3만건이다. 지난해 전·월세 계약에서 전세 비중(48%)이 역대 처음으로 50% 밑으로 내려갔다. 지난해 11월부터 지난달까지 3개월간 서울에서 신규 전·월세 계약 2만8000건 중 전세가 1만3000여건으로 절반이 되지 않는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매매와 전·월세를 합친 전체 주택 거래시장에서 차지하는 전세의 비중이 줄면서 공급 대비 전세 수요가 상대적으로 감소한 셈”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개별 단지 전세 실거래가격과 달리 전세 실거래가 통계는 하락 폭이 크지 않아 어리둥절한 사람이 많다. 실제로 아파트 전세 실거래가 통계를 보면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최근 1년간 하락률이 전국 -6.4%, 서울 -2.6%다. 서울은 매매 실거래가 하락률의 거의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한국부동산원은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계약도 포함해 통계를 내기 때문에 시세보다 변동 폭이 크지 않게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전 전셋값이 시세보다 훨씬 낮은 계약갱신청구권 가격을 평균한 금액이어서 시세 통계보다 하락 폭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전셋값이 급등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2020년 계약갱신청구권 등 임대차법 개정으로 전셋값이 폭등한 2021년의 경우 전국 아파트 전셋값 시세 통계는 12.1% 오른 것으로 나오지만 실거래가 통계는 0.7% 오르는 데 그쳤다. 매매에선 실거래가 통계가 체감 지수라면 전세에선 실거래가보다 시세가 더 피부와 와 닿는다.

5년 새 전세대출 130조 급증

여기다 요즘 전셋값 폭락을 더욱 부채질한 다른 요인이 ‘전세 금융화’다. 매매와 마찬가지로 전세도 빚으로 쌓아 올린 가격이 무너져내리는 양상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7년 533조7000억원이던 주택담보대출이 지난해 10월 기준 794조8000억원으로 49.7% 늘었다. 주택담보대출 중에서 전세대출이 주택 구입 관련 대출보다 훨씬 더 많이 늘었다. 2017년 초 40조원에 못 미치던 대출액이 지난해 10월 170조원을 넘어서며 4배 가까이 급증했다. 주택담보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17년 초 10% 미만에서 20%를 넘어섰다. 주택 매수를 위한 대출금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불어난 것이다.

이는 통계청의 주택담보대출 용도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보증금 마련 목적이 2017년 7.1%에서 지난해 14%로 두 배로 올라갔다. 같은 기간 주택 매수 목적은 47%로 비슷하게 유지됐다.

기존 대출자도 금리 급등 충격을 받은 것은 대출 대부분 변동금리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변동금리 비율이 76.4%였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보도를 보면 미국이 40% 정도다.

문제는 빚이 소득으로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다는 데 있다. OECD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처분가능소득 대비 한국 가계부채 비율이 206.5%다. 200%가 넘는 나라가 35개국 중 6곳이고 한국이 5번째(최고 덴마크 254.6%)다.

전세 시장도 대출 의존이 심해지면서 금리가 좌우하게 됐다. 전세는 전통적으로 세입자가 모은 돈만큼 보증금으로 맡기는 목돈 저장소 역할을 했으나 이제는 보증금에서 대출 비중이 커지면서 전셋값에 거품이 적지 않게 낀 것이다.

국토연구원이 지난달 발표한 ‘국토정책브리프’ 보고서에 따르면 집값 변동 요인 5가지(금리, 대출규제, 준공물량, 인구 세대수, 경기) 중 금리 기여도가 45.7~60.7%로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택시장의 금리 영향이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집값 변동성이 금리 변화 폭과 속도에 비례해지다 보니 2021년 하반기 이후부터 1년여간 금리가 단기 급등하는 동안 집값·전셋값이 초저금리였던 2020~2021년 오른 만큼 급락했다.

금리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커지면서 공급량을 결정하는 준공물량 변수가 약해졌다. 오히려 지난해 준공이 적은 지역이 더 많이 내렸다. 지난해 아파트 준공 물량이 2019~2021년 연평균과 비교해 전국적으로 12% 적은데 서울이 30%, 세종시는 50% 넘게 줄었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고금리 추세에 따라 전셋값 약세가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고 전셋값이 반등하지 않으면 매맷값 상승도 쉽지 않다”며 “집값 동향을 알려면 전세시장부터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