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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원 채용 강요…이런 ‘건폭’ 없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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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새벽 6시면 노조원 40여 명이 공사장 정문을 차단하고, 모든 사람의 신분증을 검사합니다. 외국인은 합법 노동자라도 겁먹고 다 도망가죠. 드론을 띄워 휴게시간에 담배를 피우거나 안전모 벗은 인부들 사진도 찍고요. 사법경찰이나 다름없어요.”

지난 8일 만난 건설업체 A사 임원은 연신 한숨을 쉬었다. A사는 전국 건설현장 10여 곳을 책임지는 하도급 업체다. A사는 지난해 3~4월 경기도 고양시 일대 공사장에서 겪은 피해 내용을 공개했다. 피해 일지는 ‘월화수목금토’ 내내 노조의 집회·태업·무단출입 기록으로 빼곡했다. 이 임원은 “(노조는 회사에 대해) 채용 강요나 금품 요구에 쓸 협박거리 하나만 걸리란 식”이라며 “공사 기간과 금액을 맞춰야만 하는 하도급사의 약점을 이용한다”고 토로했다. A사의 2~3월 예상 피해액은 16억원이다.

2021년 경기도 양주시에선 건설업체가 채용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레미콘 차량 통행로에 동전 수천 개를 뿌리고 하나하나 천천히 주워가며 공사를 방해한 기상천외한 사례도 있었다. 이들은 증거인멸을 위해 집회 당시 사용한 무전기 앱을 삭제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민주노총 간부 2명이 지난달 구속됐다. 강성주 전문건설협회 노동정책팀장은 “집회시위법상 소음 기준(10분)에 맞춰 심야에 장송곡과 노동가를 9분씩 틀었다 껐다 하며 주민 민원을 유발하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말했다.

현장의 ‘노노(勞勞) 갈등’이 유혈 사태로 번진 경우도 많다. 지난해 3월 경기도 안양시에선 현장 입구를 막아선 민주노총 조합원과 진입하려는 한국노총 조합원 사이에서 채용 경쟁을 두고 몸싸움이 벌어졌다. 두 노조는 특수폭행 및 공동상해 혐의로 상대 조합원 3~4명을 경찰에 맞고소했다. 인천시 청라에선 2021년 한국노총 건설산업노조(현재는 한국노총에서 제명) 700여 명이 민주노총 조합원 10여 명을 집단폭행한 사건도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건설노조에 경고장을 날렸다. 건설폭력을 줄여 ‘건폭(建暴)’이란 말도 했다. 윤 대통령은 21일 “건설현장의 갈취, 폭력 등 조직적 불법행위에 대해 검찰·경찰·국토부·노동부가 협력해 강력하게 단속하라”고 지시했다.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 직후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권기섭 고용노동부 차관 등으로부터 건설현장 폭력 현황과 실태를 보고받은 윤 대통령은 “건폭이 완전히 근절될 때까지 엄정하게 단속해 건설현장에서의 법치를 확고히 세우라”고 당부했다고 김은혜 홍보수석이 서면 브리핑에서 전했다.

타워크레인 기사, 건설사에 월례비 요구 땐 면허정지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건폭’이란 말을 쓴 이유에 대해 “문제의 심각성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것 같다. 건설노조 비리도 심각하다는 차원”이라고 전했다.

채용 강요, 집회·태업 등으로 인한 피해는 결국 공사 지연과 이에 따른 금전적 손실로 귀결된다. 한 예로 민주노총 건설노조 경기 중서부지부가 요구한 조합원 고용률은 직종별로 70~100%에 달했다. 전국 25개 현장을 관리하는 B하도급사 이사는 “공사 첫날 망치 한 번 안 들어본 노조원들이 우르르 몰려와 ‘이제부터 같이 일하라’고 선언한다”며 “직함은 목수팀장, 철근팀장인데 도면도 못 보면서 월 700만원씩 가져간다”고 호소했다.

윤 대통령 “불법 방치, 국가라 할 수 있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특히 노조와 원청 사이에 낀 하도급사에 피해가 몰린다. 성남시 대장동 일대 아파트 공사를 맡았던 C하도급사는 79억원의 손실 감당이 어려워지자 공사를 포기했다. D하도급사는 양주시 공사 현장에서 노조원 과투입(53억원), 무노동자 임금(6억5000만원) 등으로 1년간 약 72억원을 손해봤다. D사 관계자는 “양주 현장에서 근무하던 30년 넘게 근속한 임원이 ‘노조 때문에 너무 힘들다’며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가 가까스로 살아난 적도 있다”고 주장했다.

건설노조의 불법행위는 특히 문재인 정부가 노조의 폭주를 방관하기 시작한 2017년부터 급격히 늘었다. 박광배 건설정책연구원 박사는 “5~6년 전쯤 전국에서 아파트 공사가 활성화되면서 합법·불법을 막론하고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건설현장이 버틸 수 없게 됐다”며 “불법 외국인 단속을 빌미로 노조들이 영향력을 키워나갔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시기 양대 노총 건설노조 조합원 수도 11만2500명(2016년)→24만9500명(2020년)→28만6515명(2022년) 등으로 급증했다.

고용노동부가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7~2023년 신규 설립된 건설 관련 노조도 157개에 달했다. 박광배 박사는 “군소 노조가 무분별하게 난립하면 조합원 영입 경쟁이 생기고, 이 비용이 건설업체에 전가된다”며 “건설업 특성상 발생하는 분진·미세먼지 등 환경법, 안전모 미착용에 따른 산업안전법, 외국인 고용법 위반 등을 빌미로 공사를 방해하기 때문에 업체는 요구를 들어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건설현장에서는 월례비 문제도 심각하다. 전남 여수의 한 아파트 현장에서 철근콘크리트 공정을 맡은 E업체 대표는 2021년 8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13개월간 타워크레인 조종사에게 월례비로 2억1700만원을 지급했다. 한 달 평균 1700만원에 이른다. 월례비를 주지 않으면 태업으로 인해 공사 기간이 늘어나 더 큰 손해를 본다.

대장동 하도급사 79억 손실, 공사 포기

국토부 조사에 따르면 최근 2~3년간 월례비를 받아온 전국의 타워크레인 기사는 438명이다. 이들이 수령한 총액은 243억원으로 1인 평균 5560만원, 상위 20%는 9470만원을 받았다. 이런 관행들은 앞으로 정부의 강력한 제재와 처벌을 받게 된다. 21일 국토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근절대책’을 발표하고, 부당한 월례비를 요구하는 타워크레인 기사는 면허 정지·취소 등 조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노조 전임비와 채용 강요 등 행위에 대해선 형법상 강요·협박·공갈죄를 적용해 처벌한다.

국토부는 특히 월례비 등 부당한 금품을 수수할 경우 ‘국가기술자격법’의 성실·품위 유지 의무를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끼친 경우에 해당한 것으로 봐 조종사 면허정지 등 행정처분을 내릴 계획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건설노조 조속 타워크레인 조종사의 일자리 독점도 강력하게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원 장관은 “지금은 노조 가입비 4000만원을 내야 타워크레인 조종석에 앉을 수 있는 상황”이라며 “건설현장 불법을 일단 강도 높게 제재한 뒤 정상적 수요·공급 질서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해 12월부터 오는 6월까지 200일간 전국 건설노조 불법행위를 특별단속하고 있다. 지난 17일 기준 1648명(400건)을 입건해 63명을 검찰에 송치했고, 1535명을 수사 중이다. 경찰청은 이 같은 불법행위 단속에 특진자 50명을 배분했다. 이는 올해 국가수사본부에 배당된 전체 특진자 510명의 10분의 1에 달하는 규모다

윤 대통령의 ‘건폭’ 언급도 이 같은 불법행위를 뿌리 뽑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이날 생중계로 진행된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부터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오늘 국무회의에서는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근절 대책’을 논의한다”며 말문을 연 윤 대통령은 “아직도 건설현장에서는 강성 기득권 노조가 금품 요구, 채용 강요, 공사 방해와 같은 불법행위를 공공연하게 자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이로 인해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공사는 부실해지고, 초등학교 개교와 신규 아파트 입주가 지연되는 등 그 피해는 국민에게 전가되고 있다”며 “폭력과 불법을 보고서도 이를 방치한다면 국가라고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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