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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이수만의 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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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전영선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영선 K엔터팀장

전영선 K엔터팀장

모두 잘못한 ‘진흙탕 싸움’이라고 말하기 전 우선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SM엔터테인먼트 분쟁 사태에서 그래도 누구의 잘못이 가장 큰가를 따져보는 것이다.

보기는 4개다. ①쫓겨나자 지분을 경쟁사에 넘긴 이수만(71) 전 총괄프로듀서 ②더는 이수만에 복종할 수 없다며 입장 바꾼 SM 현 경영진 ③지배구조 개선으로 주가를 띄우겠다는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 ④이참에 SM이 갖고 싶은 하이브·카카오.

아무리 들여다봐도 ①번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가 ‘아름다운 퇴장’을 실천할 기회를 여러 번 놓쳤기 때문이다. 그에겐 얼라인 개입 전인 지난 2019년에도 무난한 은퇴 기회가 있었다. SM주주인 KB자산운용(5.12%)은 주주서한을 보내고 SM의 가장 큰 경영리스크인 라이크기획 문제를 해결할 것을 제안했다. 당시 SM은 “문화산업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일축했다. 지난해 얼라인에 두 손 들기 전, SM 현 임원진은 같은 논리를 반복했다. “SM은 이수만 없으면 안 된다”고 답한 이성수 대표는 이제서야 “이수만이 무섭고 두려웠다”고 고백한다. 과연 상장사 대표로 적합한 말인가 싶긴 하지만, 그를 주범으로 모는 것도 무리다.

1대 주주 지분이 시장에 나온 뒤 매각 협상 테이블에서도 이수만은 타이밍을 놓쳤다. CJ ENM과 카카오를 오가며 벌인 3년의 줄다리기에선 믿기 힘든 요구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사실은 SM을 놓을 생각이 없다는 분석이 나왔던 이유다. 거슬러 올라가면 2010년 이수만이 SM 등기이사에서 물러났을 때가 개혁의 적기였다.

결국 기회를 다 놓친 뒤에 둔 수로 이수만 본인을 포함, 여럿이 다치게 됐다. 이성수 대표는 이수만의 여자친구 실명까지 적시하며 전선 확대를 시사하고 있다. 이수만을 찌르면 동시에 SM에도 상처가 나는 형국이다.

무엇보다 이 싸움에서 가장 크게 훼손되는 건 SM 소속 가수라는 브랜드다. 에스파의 노래 가사 속 지구 생태계에 대한 우려가 이수만의 부동산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폭로가 대표의 입을 통해 나온 마당이다. SM의 다른 음악에도 이런 불편한 진실이 내재해 있을 수 있다는 의심을 심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