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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폐 세척액에서 유전자 변이 진단, 폐암 치료 패러다임 바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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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학교병원 정밀의학폐암센터

 이계영 건국대학교병원 정밀의학폐암센터장은 “수술 전 EGFR 유전자 변이를 찾아내 표적항암제를 먼저 투여하면 병소를 축소시키고 미세 전이를 억제해 수술 후 재발을 낮출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영상 사진은 선행 치료로 종양 크기가 감소(2.1㎝?0.9㎝)한 환자 사례다. 인성욱 객원기자

이계영 건국대학교병원 정밀의학폐암센터장은 “수술 전 EGFR 유전자 변이를 찾아내 표적항암제를 먼저 투여하면 병소를 축소시키고 미세 전이를 억제해 수술 후 재발을 낮출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영상 사진은 선행 치료로 종양 크기가 감소(2.1㎝?0.9㎝)한 환자 사례다. 인성욱 객원기자

폐암은 획기적인 치료제가 발전해 온 분야임에도 여전히 암 사망률 1위인 난치암이다. 상황이 이런 데는 폐 조직에서 암세포를 찾는 기존 조직검사의 한계가 원인의 하나다. 초기 암일 땐 암 덩어리의 위치·크기·형태 때문에 흉곽에 세침을 찔러 조직을 얻는 방법으로는 조기 진단이 잘 되지 않는다. 다행히 조기에 발견돼 수술받더라도 수술 전 폐암의 병기·유전자 평가가 정확히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수술 후 재발률이 20~40%다.

건국대학교병원 정밀의학폐암센터는 재래식 무기에 그쳤던 폐암 진단법에 뉴노멀(새로운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 민감성·정확도를 더한 정밀 진단으로 폐암 치료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킨다. 환자의 체액에서 암세포가 분비하는 엑소좀 DNA를 검출(폐세척 액상생검)해 표적유전자를 진단한다. 이계영(호흡기-알레르기내과) 정밀의학폐암센터장은 “최근 폐암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변화가 비흡연자·여성 환자 증가로, 나뭇가지처럼 뻗은 기관지 폐포에 말초성 폐암이 증가하며 EGFR 등 표적유전자 변이가 흔히 관찰된다”며 “기존 폐 조직검사로는 더욱 진단이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폐세척 액상생검을 이용한 유전자 진단이 치료에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폐암 환자에 많은 EGFR 변이 찾아

폐세척 액상생검으로 암 유전자를 진단하는 원리는 이렇다. 흉부 전산화 단층촬영(CT)에서 폐암이 의심되는 환자에게 기관지 내시경을 삽입해 종양이 있는 곳에 식염수를 넣고, 폐 세척액에서 EGFR 유전자 변이를 찾아 폐암을 진단하는 게 골자다. 암세포를 운반하는 메신저 격인 엑소좀을 추출해 DNA를 분석한다. 이 센터장은 “국내 폐암 환자의 약 40%에서 나타나는 EGFR 변이로 신속히 진단되면 효과적인 표적항암제가 발달돼 있으므로 환자 생존율이 확연히 높아진다”며 “EGFR 변이가 없는 것으로 진단된 환자에게도 빠르게 다른 치료제 대안을 찾을 수 있어 도움된다”고 말했다.

건국대학교병원 정밀의학폐암센터에서는 폐세척 액상생검을 이용한 EGFR 유전자 검사를 기본으로 시행한다. 하루이틀 안에 95% 이상의 정확도로 EGFR 표적항암제를 처방할 수 있는 결과를 얻는다. 이 센터장은 “최근 건강검진에서 저선량 CT(LDCT) 촬영으로 조기 폐암이 의심되는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조직검사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암이 의심돼도 병변 크기가 작거나 심장·혈관에 가깝게 있으면 조직을 떼는 게 어렵다. CT에서 속이 비어 있는(공동성) 결절이거나 희미하게 보이는 성근 암 조직(간유리음영결절)의 대다수도 조직을 충분히 얻는 게 어려워 진단하지 못한다. 여러 표적유전자 변이 검사를 하려면 많은 양의 조직이 필요한 것도 문제다. 조직검사가 어려워 진단이 지연되거나 수술적 방법을 통해 확진하는 사례가 많다. 이 센터장은 “특히 여성 폐암에서 이런 경우가 많은데, 암인지 아닌지 모르는 상태에서 진단을 위해 수술하다 보니 불필요한 수술을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며 “폐암에 대한 평가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술해 재발률도 높다”고 말했다.

비흡연자인 김모(여·72)씨는 지난해 9월 건강검진에서 폐 깊은 곳에 경계선이 불확실한 2.7㎝ 지름의 결절(간유리음영결절)이 혈관에 인접해 발견됐다. 밀도가 낮은 뿌연 형태의 덩어리인 데다 조직을 떼려면 20㎝ 이상의 세침이 깊이 들어가야 해 조직검사가 잘 안 될 가능성이 컸다. 각혈·기흉 같은 합병증 위험도 높았다. 건국대학교병원에서 폐세척 액상생검을 받은 김씨는 EGFR 유전자 변이를 확인했고, 수술로 암을 제거했다. 이 센터장은 “조기 진단이 아주 도움된 사례로 김씨처럼 초기의 순한 암일 땐 조직검사 없이 암 표적유전자를 진단해 수술로 완치가 가능하단 의미”라며 “폐암 의심 환자에게 발견된 작은 초기 병변이 암인지, 아닌지를 진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수술 전 항암제 투여해 병소 줄여

건국대학교병원 폐암센터는 수술 전 선행 치료로 수술 후 재발률을 낮출 수 있다는 연구 목표를 가진 혁신적인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CT 소견에서 폐암이 의심되는 환자에게 조직검사 없이 암유전자를 찾아내 효과적인 3세대 표적항암제(성분명 레이저티닙)를 적용하는 치료법이다. 영상 검사에서는 폐암이 의심되는 작은 종양 형태지만 수술해 보면 미세 전이가 있는 경우가 있다. 1기인 줄 알고 수술했지만 이미 3기인 환자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면 수술을 해도 재발 위험이 크다. 이 센터장은 “수술 후 재발한 환자는 4기 암 환자의 경과를 밟는다”며 “수술 전 EGFR 유전자 변이를 찾아낼 수 있으면 표적항암제를 먼저 투여해 병소를 축소시키고, 미세 전이를 억제한 뒤 수술하는 것이 폐암 재발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폐암 가족력이 있는 강모(53)씨는 지난해 8월, 폐에 3.4㎝의 속이 비어 있는(공동성) 결절이 있다는 검사 결과를 받았다. 결절의 특성상 조직검사가 불가해 건국대학교병원에서 폐세척 액상생검을 받았고, EGFR 유전자 변이가 확인됐다. 표적항암제로 9주간 선행 치료해 종양 벽이 옅어지는 것을 관찰했고, 지난해 11월에 수술받았다. 이 센터장은 “강씨는 수술에서 최종 종양이 2.5㎝인 것으로 판명됐는데 선행 항암 치료로 병기가 한 단계 하향된 상태에서 수술받은 것으로, 현재 경과를 관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선행 치료로 환자의 수술 후 재발률이 현저히 감소한다는 결과까지 확인되면 초기 EGFR 유전자 변이 환자 치료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국대학교병원 정밀의학폐암센터는 EGFR 유전자에 이어 두 번째로 빈도가 높은 KRAS 유전자 변이를 검출하는 폐세척 액상생검 개발을 시작했다. EGFR 유전자 변이를 진단하는 폐세척 액상생검은 여러 병원에서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키트로 개발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앞두고 있다. 이계영 센터장은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과 RNA 염기서열화 등을 이용해 기타 모든 폐암을 조직검사 없이 진단할 수 있는 진단 플랫폼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라며 “더 많은 폐암 환자에게 혜택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폐암 조기 진단 위한 건강검진

1 흡연자는 매년, 비흡연자는 5년 주기
폐암은 더는 흡연자의 병이 아니라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미세먼지와 같은 환경 문제, 평균 수명 증가 등이 폐암의 다양한 원인이다. 조기 폐암 진단을 위해서는 저선량 CT(LDCT)가 상당히 효과적이다. 흡연자는 매년, 비흡연자면 적어도 5년에 한 번 정도 LDCT 검사를 해 조기 폐암을 진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 갱년기 접어든 여성에게도 권장
최근 폐암 동향을 보면 흡연자 폐암의 빈도는 감소하고 비흡연자·여성에서 폐암 증가가 뚜렷하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동양권에서 크게 문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비흡연자나 여성은 폐암과 관련이 없다는 인식 때문에 조기 폐암 검진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조기 진단되지 않고 진행성 폐암으로 진단되기에 치료 성적이 매우 열악하다. 그런데 비흡연·여성 폐암의 65%가 EGFR 유전자 변이 폐암이다. 표적항암제가 가장 효과적인 폐암이 비흡연·여성에게서 발생하는 폐 선암이므로 조기 진단만 되면 완치 확률이 가장 높다. 갱년기에 접어들면 여성도 저선량 CT를  반드시 검사해볼 것을 권한다. 흉부 X선은 조기 진단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3 암 변별은 폐 조직검사로
LDCT는 폐암이 의심되는 병변인 폐 결절을 찾아내는 데에는 매우 민감하다. 그러나 그 특이도가 아주 낮아서 발견된 폐 결절이 폐암인지, 아닌지 변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현재는 폐 조직검사를 통해 폐암 진단을 해야 한다. 한편 크기가 작거나 위치가 위험하거나 간유리음영·공동성 결절 등에서는 조직검사를 시행할 수 없다. 폐세척 액상생검이 대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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