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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바보이기에 알려준다…ICBM, 서울 겨냥 안해" 美 협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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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새해 들어 첫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한 이튿날 담화를 내놓고 대미·대남 공세에 나섰다. 한·미의 확장억제수단운용연습(DSC TTX)과 연합 군사훈련인 '자유의 방패(FS)'를 염두에 두고 고강도 도발을 위한 명분 쌓기에 나섰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해 8월 평양에서 열린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에서 토론자로 나서 공개 연설을 하는 모습. 조선중앙TV 캡처, 뉴시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해 8월 평양에서 열린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에서 토론자로 나서 공개 연설을 하는 모습. 조선중앙TV 캡처, 뉴시스

북한은 19일 김여정 명의의 담화를 통해 한·미를 상대로 "강대강", "정면승부", "대적투쟁" 등 기존 강경 기조를 재확인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지난 6일 당중앙군사위원회, 17일 외무성 담화 등에서 시사한 '전쟁준비태세 완비', '지속적이고 전례 없는 강력한 대응' 등을 실제 감행함으로써 정치·군사적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 할 것이란 관측을 내놨다.

ICBM 서울 안 쏜다, 미국 협박

김여정은 이날 담화에서 "여전히 남조선 것들을 상대할 의향이 없다"며 "바보들이기에 일깨워주는데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서울을 겨냥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ICBM으로 서울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건 한국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미국을 간접적으로 협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이 18일 오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을 고각발사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ICBM운용부대 중 제1붉은기영웅중대는 18일 오후 평양국제비행장에서 ICBM '화성-15'를 최대사거리체제로 고각발사했다고 조선중앙TV가 19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북한이 18일 오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을 고각발사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ICBM운용부대 중 제1붉은기영웅중대는 18일 오후 평양국제비행장에서 ICBM '화성-15'를 최대사거리체제로 고각발사했다고 조선중앙TV가 19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북한이 사거리 1만 4000㎞에 달하는 ICBM에 집착하는 것은 '미국을 직접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겠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북한군이 전술핵 탑재가 가능한 각종 신형 단거리탄도미사일(SRBM)과 장사정포 등 남측을 겨냥한 무기를 무수히 갖추고 있다는 점도 이런 분석에 힘을 실어준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극도의 부정적 인식과 윤석열 정부를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김정은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국방백서에서 자신들을 주적으로 표기한 사실은 안중에도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안보리·연합훈련에 후속 도발 예고

북한이 최근 북한을 겨냥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소집을 주도한 미국에 대해 불만을 드러낸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김여정은 담화에서 "조선반도지역정세를 우려하고 평화와 안정을 바란다면 모든 나라들이 국제평화와 안전보장의 중대한 책임을 지닌 유엔안전보장이사회를 저들의 극악한 대조선적대시정책실행기구로 전락시키려는 미국의 강권과 전횡을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육군 아미타이거 시범여단과 미2사단 스트라이커여단이 지난달 13일 경기 파주 무건리훈련장에서 대대급 연합훈련을 실시하는 모습. 이번 훈련에는 한미 장병 800여 명과 K808차륜형장갑차, 미 스트라이커장갑차, 정찰드론, 무인항공기(UAV), 대전차미사일(현궁) 등 다양한 무기체계가 투입됐다. 연합뉴스

육군 아미타이거 시범여단과 미2사단 스트라이커여단이 지난달 13일 경기 파주 무건리훈련장에서 대대급 연합훈련을 실시하는 모습. 이번 훈련에는 한미 장병 800여 명과 K808차륜형장갑차, 미 스트라이커장갑차, 정찰드론, 무인항공기(UAV), 대전차미사일(현궁) 등 다양한 무기체계가 투입됐다. 연합뉴스

또 그는 "이번에도 우리의 적수들은 근거 없이 공화국의 자주권에 대한 노골적인 침해행위를 감행했다"며 "확장억지(확장억제), 연합방위태세를 떠들며 미국과 남조선것들이 조선반도지역에서 군사적 우세를 획득하고 지배적 위치를 차지해보려는 위험천만한 과욕과 기도를 노골화하고 있는 것은 지역의 안정을 파괴하고 정세를 더더욱 위태해지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한·미가 오는 22일 미국 국방부에서 확장억제수단운용연습을 진행하고 다음 달 중순 계획한 한·미 연합훈련 계획을 공개한 것에 대한 반발 성격이다. 실제로 김여정은 이날 담화에서 "적의 행동 건건사사(사사건건)를 주시할 것이며 우리에 대한 적대적인 것에 매사 상응하고 매우 강력한 압도적 대응을 실시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이 이번에 미국의 안보리 소집을 빌미로 ICBM을 발사했는데, 다음에는 한·미 연합훈련 등을 명분으로 추가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는 "예정된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경고와 함께 위기 고조의 모든 책임을 한·미에 전가하기 위한 수순으로 보인다"며 "앞으로도 자신들의 미사일 발사절차 숙달 훈련을 겸한 강대강 맞대응이 계속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향후 기술적 준비가 된다면 미국을 타격할 중장거리 전력을 지속해서 보여줄 가능성이 있다"며 "7차 핵실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도 18일(현지시간) 뮌헨안보회의 토론에서 "북한은 언제라도 7차 핵실험을 감행할 수 있으며, 이 경우 북한의 전술핵미사일 개발·배치에 있어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건재 과시한 김여정

김여정은 이날 담화를 통해 김정은의 딸 김주애의 등장으로 입지가 축소된 것 아니냐는 일각의 관측을 불식시켰다. 특히 "위임에 따라 끝으로 경고한다"라고 밝히며 자신이 김정은의 입 역할을 하는 동시에 대남·대미 총책으로 건재하다는 점을 과시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건군절(인민군 창건일)을 기념해 지난 7일 딸 김주애와 함께 인민군 장병들의 숙소를 방문했다고 조선중앙TV가 8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숙소 방문 이후 건군절 기념연회에 참석해 연설했다. 사진은 기념연회에 참석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붉은 원).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건군절(인민군 창건일)을 기념해 지난 7일 딸 김주애와 함께 인민군 장병들의 숙소를 방문했다고 조선중앙TV가 8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숙소 방문 이후 건군절 기념연회에 참석해 연설했다. 사진은 기념연회에 참석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붉은 원).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또 그는 남측을 향해 "남조선것들도 지금처럼 마냥 '용감무쌍'한척, 삐칠 데 안삐칠 데 가리지 못하다가는 종당에(결국) 어떤 화를 자초하게 되겠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임을출 교수는 "이번 담화는 김여정의 기존 직책과 역할에 변화가 없음도 확인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통일부는 이날 북한의 무력도발을 규탄하며 도발과 위협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통일부는 이날 입장자료를 통해 북한이 "현 정세 악화의 원인과 책임이 자신들의 무모한 핵·미사일 개발에 있다는 점을 망각하고, 오히려 우리와 미국에 책임을 전가하는 등 궤변을 늘어놓고 있는 것에 대해 개탄을 금치 못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북한 정권이 최근 아사자가 속출하는 등 심각한 식량난 속에서도 주민의 민생과 인권을 도외시한 채 도발과 위협을 지속한다면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이 더욱 심화할 뿐이라는 점을 재차 경고한다"며 "북한은 이제라도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여 도발과 위협을 중단하고,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한 올바른 길로 나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북한 관영 매체들은 이날 "(ICBM 운용 부대인) 제1붉은기영웅중대가 전날 오후 평양국제비행장에서 ICBM '화성-15형'을 고각(高角)발사 했다"며 "미사일은 최대정점고도 5768.5㎞까지 상승해 거리 989㎞를 4015초간 비행해 동해 공해 상의 목표수역을 정확히 타격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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