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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규 "낮은 코 수술 안 하길 잘했죠" 데뷔 19년만에 첫 주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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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카운트'(22일 개봉)에서 데뷔 19년만에 첫 스크린 주연을 맡은 배우 진선규를 15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CJ ENM]

영화 '카운트'(22일 개봉)에서 데뷔 19년만에 첫 스크린 주연을 맡은 배우 진선규를 15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CJ ENM]

배우 진선규(45)가 데뷔 19년 만에 처음 스크린 주연을 맡았다. 22일 개봉하는 영화 ‘카운트’(감독 권혁재)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도 판정 시비로 권투를 그만둔 고등학교 체육교사 시헌역을 맡았다. 영화 ‘범죄도시’(2017)의 섬뜩한 외모, ‘극한직업’(2019)의 우직한 매력, ‘사바하’(2019)의 스님, ‘승리호’(2021) 우주선 기관사의 넉살을 합친 듯한 캐릭터다. 극중 시헌은 자신을 똑 닮은 제자 윤우(성유빈)를 만나 교내 권투부를 만들면서 인생 2막을 연다.
 지난 15일 인터뷰에서 진선규는 “코가 낮아 복서 역할을 한 것 같다”며 웃었다. 그가 좀처럼 뜨지 못하자 배우치고는 상대적으로 낮은 코를 높여주자며 수술비 계모임까지 결성했던 고향 친구들도 “그때 수술 안 하길 잘했다”더란다. 영화 배경이 실제 그의 고향 경남 진해여서 금의환향했다는 그의 쑥스러운 소감이다.

“평소 ‘대장’ 같은 건 잘못 하는 성격이라 첫 주연의 부담이 컸다”는 그는 ‘카운트’는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다른 사람에게 주지 말라”고 할 만큼 욕심이 났다고 했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시나리오여서”다.
“일단 진해가 무대란 게 매력 있었죠. 대학 때 상경한 후 만나기 힘들었던 친구들도 볼 수 있고, 소풍을 가거나 혼자서 운동하던 장복산, 군항제 벚꽃길이 영화에 다 나오니까요. 무엇보다 시헌이라는 캐릭터가 ‘진선규’ 같았어요. 가족과 동료‧제자들을 중시하고 가진 게 없을 땐 옛날식으로 몇 ㎞씩 아침‧저녁 뛰어다니며 훈련하는 설정 같은 것들이요.”
진해 얘기를 할 땐 경상도 사투리가 찰지게 튀어나왔다.

22일 개봉 영화 '카운트' 첫 단독 주연 #88올림픽 권투 금메달리스트 실화 토대

"88올림픽 판정사건 몰라…시나리오 울며 읽었죠"

실제로 진선규는 학창시절 운동을 즐겨 체육 교사를 꿈꿨고, 삼십 대 중반에는 권투에 빠졌다고 한다. 그런 그에겐 꿈을 이룬 듯한 역할이었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일(권투)을 즐겁게 한다”는 철학이 딱 맞았단다. “영화에 나오는 ‘다운당했다고 끝이 아니다. 카운트가 있다. 힘들고 고되면 잠깐 쉬었다가 딛고 일어나면 된다’ 뒤에 빠진 대사가 있다”고 운을 뗐다. “‘내 인생도 아마 다섯시나 여섯시쯤일 거다’ 라고요. 자신의 인생이 지금도 (끝이 아니고) 진행형이라는 시헌의 가치관이 드러난 대사죠.”
주인공 박시헌은 실존 모델이 있다. 88올림픽 라이트미들급 우승한 동명의 권투선수 박시헌의 일화에 권혁재 감독이 상상을 보탰다. 박씨는 당시 미국 선수에게 판정승했지만, 편파 판정 구설수가 불거져 선수에서 은퇴한 뒤 은사가 있던 고교에서 체육교사를 지냈다고 한다. 97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한국 측의 심판 매수는 없었다고 공식 발표하며 국가대표 등 지도자 생활을 했다. 이런 사연은 영화 말미 자료 화면으로도 나온다. 진선규는 영화 촬영 전 박시헌을 두 차례 만나, 제자들을 호되게 단련하면서도 세심하고 자상하게 보살피는 극 중 시헌의 성격을 따왔다.

영화 '카운트'는 1988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지만 10년 뒤 평범한 고등학교 체육교사가 된 ‘시헌’(진선규)이 교내 권투부를 만들며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모습을 그렸다. 사진 CJ ENM

영화 '카운트'는 1988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지만 10년 뒤 평범한 고등학교 체육교사가 된 ‘시헌’(진선규)이 교내 권투부를 만들며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모습을 그렸다. 사진 CJ ENM

“1988년엔 어려서 박시헌의 실화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진선규는 “시나리오를 많이 울면서 읽었다”며 “제주시청에서 선수들을 이끌고 계신 박시헌 선생에게 3년간 카카오톡으로 자주 연락드렸다. 강하고 세다기보다는 가족과 동료, 권투만 생각하며 차근차근 견뎌온 부드러운 분이었다. 외면보단 그런 속마음을 녹여내고 싶었다”고 했다.

"'범죄도시' 이후 급변 겁나…조연 살아야 주연도 살죠"

윤우 역의 성유빈과 권투 시합 장면 촬영을 위해 용인대, 진해의 중학교 2학년 권투부 학생들과 스파링을 하며 맷집을 키우기도(?) 했단다. 흩날리는 벚꽃을 맨주먹으로 잡는 장면은 그가 일본 만화 『더 파이팅』에서 착안해 제안한 것.

'카운트' 주인공 시헌(맨앞, 진선규)과 권투부원들의 훈련 장면. 사진 CJ ENM

'카운트' 주인공 시헌(맨앞, 진선규)과 권투부원들의 훈련 장면. 사진 CJ ENM

주인공의 무게를 그는 “작품이라는 거대한 시계의 단순 부품이 아니라 시곗바늘쯤 된 것”에 빗댔다. “관객 앞에 ‘진선규’가 툭 튀어나오는 게 부담된다. ‘범죄도시’ 이후 너무 급하게 변화한 것 같다”면서도 “연극무대에서 주인공을 할 때의 지론을 잊지 않고 되새긴다"고 했다.
 "나 혼자 잘하려고 하기보다 주변 인물들이 잘할 수 있게 만들어야 주인공도 돋보이는 거라 생각해요. ‘카운트’를 찍으며 감독님께 요청해 단역들까지 모두 1대 1로 따로 만나 대본 리딩을 했죠.”
“잘못하면 모든 화살이 주연에게 돌아올 것 같아”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단다. ‘카운트’ 시사회가 있던 13일도 그랬다. ‘떨립니다’ 하고 그가 보낸 문자에 박시헌씨한테 이런 답장을 보내왔다고 한다. '대한민국 최고 배우 진선규가 링 위에 오르는데 떨면, 옆에 있는 선수들 같이 떱니다. 씩씩하게 하고 오세요.'
 진선규는 이 문자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을 비쳤다. “힘들어서 운 게 아니라 ‘시헌 쌤’의 말이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아내 박보경 '작은 아씨들' 겹경사…"멜로 주연도 하고파"

시헌은 고등학생 제자들을 이끌며 1988년 서울올림픽 금메달 우승 이후(사진)의 편파 판정 논란으로 선수생활을 단명한 과거를 극복해 나간다. 사진 CJ ENM

시헌은 고등학생 제자들을 이끌며 1988년 서울올림픽 금메달 우승 이후(사진)의 편파 판정 논란으로 선수생활을 단명한 과거를 극복해 나간다. 사진 CJ ENM

진선규의 아내 역시 배우인 박보경이다. 지난해 드라마 ‘작은 아씨들’의 악역으로 아내가 대중에 각인되며 부부가 겹경사를 맞았다. ‘승리호’ 때만 해도 “아빠 진짜 우주 가보면 어때?” 하고 천진난만하게 묻던 올해 11살, 8살 두 아이도 이제는 영화를 보며 "진짜 맞은 거 아니지” 하며 능청을 부릴 만큼 훌쩍 자랐다고 한다. “아내가 다시 연기하며 생기가 도니 행복했다. 아이들도 잘 자라고 모든 게 잘 돌아가는 기분”이라며 “톱니바퀴가 되든, 시곗바늘이 되든 좋아하는 연기를 해나가고 싶다”고 했다. “실패하더라도 내 갈 길을 계속 가면 언젠가 또 기회가 올 테니까요. 배우가 희소성이 떨어지면 안 된다는 말도 있는데, 나는 카메오든 단역이든 거의 다 합니다. 필요로하는 곳에 필요한 배우가 되면 좋겠어요. 언젠가 멜로 주인공도 해보고 싶습니다.”

진선규의 출세작이 된 영화 ‘범죄도시’의 살벌한 조선족 조폭 역할.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진선규의 출세작이 된 영화 ‘범죄도시’의 살벌한 조선족 조폭 역할.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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