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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22년 희귀병 투병기, 영화에 담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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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영화 ‘안녕, 소중한 사람’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엘렌(비키 크립스·왼쪽)이 치료 대신 노르웨이 대자연으로 여행을 가기로 결심하며 겪는 마지막 여정을 담담하게 그린 작품이다. [사진 티캐스트]

영화 ‘안녕, 소중한 사람’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엘렌(비키 크립스·왼쪽)이 치료 대신 노르웨이 대자연으로 여행을 가기로 결심하며 겪는 마지막 여정을 담담하게 그린 작품이다. [사진 티캐스트]

22년간 희귀병과 맞서 싸운 어머니를 마지막까지 곁에서 지킨 딸이 어머니로부터 영감 받은 영화를 만들었다. 8일 개봉한 프랑스 영화 ‘안녕, 소중한 사람’은 폐가 딱딱해지는 희귀병(특발성 폐섬유증)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프랑스 여성 엘렌(비키 크립스)이 노르웨이로 마지막 여행에 나서는 여정을 좇은 작품이다.

이 영화를 연출한 에밀리 아테프(49·사진) 감독은 서면 인터뷰에서 “죽음을 앞둔 사람은 삶의 마지막 순간을 선택할 권리가 있고 주위 사람들은 고통스러워도 그걸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아테프 감독은 “어머니의 오랜 투병생활을 지켜보며 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고 했다. “사랑하는 이를 잃는 건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렇다고 떠나는 이에게 삶의 끝에 대한 이야기가 금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에밀리 아테프

에밀리 아테프

어머니의 투병 과정이 영화에 어떤 영감을 줬나.
“어머니는 55세부터 78세까지 다발성경화증을 앓았다. 이번 영화 구상 이후 1년 뒤쯤 암까지 걸렸고 2015년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삶을 어떻게 내려놓을지에 대해 많이 고민하셨다. 그런 어머니를 지켜보는 게 힘들었지만, 이 영화를 준비하며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라고 말할 힘을 얻게 됐다.”
노르웨이의 자연을 마지막 여행지로 택한 이유는.
“20대 때 오토바이로 노르웨이를 종단하며 장엄한 자연을 속속들이 체험했다. 자연이 병보다 크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자연은 시간을 초월한다. 우리의 고민이나 두려움에 무심하다. 거대한 피오르드 안에 들면 누구나 겸허해진다.”

영화는 시한부 환자의 성적 욕구도 다뤘다. 엘렌은 남편 마티유(가스파르 울리엘)와 섹스를 원하지만 마티유가 주저하자 굴욕감을 느낀다. 아테프 감독은 “그 장면에서 엘렌은 성적인 욕망을 느낄 권리가 없는, 이미 죽은 사람처럼 취급당한다고 느끼고 좌절한다”며 “그러나 영화 막바지 러브신에서는 다르다. 마티유가 엘렌을 받아들이면서 두 사람은 하나가 된다. 엘렌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순간을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음미한다”고 설명했다.

‘안녕, 소중한 사람’은 공교롭게도 엘렌의 남편 역 배우 가스파르 울리엘의 유고작이 됐다. 그가 영화 촬영 이후 지난해 1월 스키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다. 아테프 감독은 마티유가 배를 타고 떠나고, 엘렌은 육지에 남는 결말에 대해 “편집을 시작할 때 이미 정해뒀던 장면인데, 어떤 암시였던 것처럼 느껴져 마음이 무거웠다”고 했다.

아테프 감독은 지난해 한국계 배우 산드라 오가 주연한 BBC 동성애 첩보물 ‘킬링 이브’ 시즌4에서 가장 호평받았던 5, 6화를 연출한 바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한국을 두 차례 방문했다며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어머니의 투병기를 영화로 털어낸 이후의 목표를 묻자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것”이라고 했다. “과거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에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 것, 행복하고, 자유로워지고자 노력하며 가진 것과 주변 사람들의 사랑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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