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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원내대표들의 ‘네 탓’ 릴레이…국회가 이 지경인 이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오른쪽)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달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회동을 마친 후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기간을 1월 17일까지 연장합의 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오른쪽)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달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회동을 마친 후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기간을 1월 17일까지 연장합의 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박홍근 “문제는 대통령” 주호영 “의회민주주의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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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 야당과 집권여당의 원내대표가 차례로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했다. 준비에 꽤 공을 들였다는데 내용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연설은 한마디로 “네 탓”이었다. “고물가와 생활고에 몸부림치는 국민들이 많은데, 정치는 무엇을 하고 있나 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169석 야당의 원내 사령탑은 피폐한 민생의 책임을 윤석열 정부 탓으로만 돌렸다. 윤석열 대통령을 39차례 언급하며 “문제는 대통령”이라고 했다. 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의회 정치의 숨통을 막고 있는 현실에 대한 자성은 없었다. 대신 “대통령이 검사들의 대장 노릇을 하고 있다”며 야당 탄압과 정치 보복만 부각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연설도 별반 차이는 없었다. ‘4류 정치’에 대한 반성도 일부 있었지만 “민주당이 압도적 다수 의석을 차지한 이래 의회민주주의는 급격히 붕괴되고 있다”며 대부분의 총구를 야당에 겨눴다. 박 원내대표의 ‘윤석열 정부 국정 운영 5대 참사’ 주장을 되돌려주려는 듯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 시리즈를 인사·재정·입법·적폐 청산 측면에서 비판했다. “성남시장 시절 ‘죄를 지으면 대통령도 구속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던 이재명 대표가 정당한 수사를 정치 탄압이라고 우기고 있다”고도 했다.

모든 잘못을 상대방에게서만 찾으니 해법도 정반대다. 박 원내대표는 “상원도 아닌 법사위가 월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며 거대 야당의 밀어붙이기식 독주를 합리화했다. 반대로 주 원내대표는 법치주의를 형해화하는 민주당의 폭거를 막는 게 국회 정상화의 길이라고 했다. 두 사람의 ‘네 탓’ 연설을 들으니 국회가 왜 이 지경이 됐는지 더 명확해진다. 이런 원내대표들이 이끄는 국회가 제대로 운영될 리 만무하다. 당장 2월 국회도 빈손 신세다. 법인의 부동산 취득세 중과세율을 완화하는 지방세법 개정안은 소위에서만 2개월여를 소모하며 주택 시장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역대급 반도체 불황 속에 반도체·2차전지 등 국가전략기술 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확대하는 법안도 더 이상의 진전이 힘겹다. 지난해 일몰된 안전운임제와 30인 미만 중소기업 추가연장근로제 관련 법안도 마찬가지다.

박 원내대표는 연설에서 “야당과 여당은 협력의 대상이지 적이 아니다”고 했고, 주 원내대표는 “나라의 미래가 국회 손에 달렸다”고 했다. 진정으로 그걸 안다면 지금이라도 네 탓이 아니라 내 탓이란 자세로,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서 주길 바란다. 질 낮은 네 탓 싸움만 지속하고 있기엔 나라를 둘러싼 환경이 너무 엄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