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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기적의 도서관, "기적이 필요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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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짓는다고 하셨죠? 그죠! 근데 왜 대구에는 안 지어요? 대구 거의 처음에 발표 났는데…”(정지연)

“대구 달서구에 기적의 도서관 취소됐다는 말이 있던데 사실인가요? 소문이었음 좋겠는뎅.”(임진아)

“대구에 기적의 도서관이 지어지기를 바라는 시민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소식이 없네요.선정지역 발표 못지 않게 도서관을 잘 짓고 운영하는 것도 중요한데, 건축은 언제 시작되는지요?”(기호석)

지난 1일 방영된 MBC-TV의 ‘!느낌표’에서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팀은 기적의 도서관 공사가 한창인 청주지역을 방문, 또 한번 떠들썩한 자축분위기를 연출했다. 그 방송을 보는 대구 시민들은 착잡했다. ‘!느낌표’ 제작팀과 시민단체인 ‘책읽는사회만들기 국민운동’(이하 국민운동)이 추진 중인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가 대구에서는 난관을 만나 첫 삽도 못 뜨고 있기 때문이다. 기적의 도서관(http://www.kidslib.or.kr)과 국민운동, 그리고 ‘!느낌표’ 홈페이지엔 상황을 궁금해하는 대구시민들과 아이들의 글들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지만 시원한 답변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 대구 기적의 도서관 부지로 선정된 달서구 월촌역 앞. 이곳에는 한동안 나부끼던 자축 플래카드들 대신 ‘공영 주차장’이란 표지판이 썰렁하게 달려있을 뿐이다. [김정수 기자]

대구시 달서구는 지난 2월 순천·금산과 함께 ‘기적의 도서관’의 1차 건립 대상지로 선정됐다. 하지만 순천 기적의 도서관이 오는 10일 완공한다며 대대적인 축하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반면,대구 기적의 도서관은 취소됐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달서구 월촌역 앞 부지로 선정된 곳에는 한동안 나부끼던 자축 플래카드들 대신 ‘공영 주차장’이란 표지판이 썰렁하게 달려있을 뿐이다.

도서관을 하나 짓는다는 건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도서관 운영과 관련된 세부사항을 정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해 여러가지 행정상의 절차도 거쳐야 한다. 특히 이렇게 기금을 모아 시민단체가 주도해 짓는 건 처음이라 시행착오가 없을 수 없다. 그런데도 현재 선정지 12곳 중 순천·제천·진해·청주·제주 등 5곳이 공사를 진행 중이니 일의 진척이 느리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대구 지역의 경우는 좀 다르다. 기적의 도서관 선정 이전에 이미 민간도서관 건립추진위원회가 결성돼 달서구측으로부터 부지 제공까지 약속받아놓는 등 많은 부분이 준비된 상태였는데 오히려 일이 후진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민간도서관 건립추진위원으로, 대구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를 앞장서 추진해온 신남희(38·여) 새벗도서관 관장을 만나 자세한 사정을 들어봤다. 새벗도서관은 신씨가 1989년 지역 청소년들을 주요 대상으로 열었던 문화공간 ‘새벗도서원’을 93년 확장·개편한 민간도서관이다. 지금도 대구지역 문화지식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 신남희 새벗 도서관 관장 [김정수 기자]

-순천 기적의 도서관이 곧 문을 연다. 함께 선정된 대구는 어떻게 된 건가.

“본 그대로다. 첫 삽도 못 떴다. 구청 측에서 제공하기로 했던 부지는 현재 공영주차장으로 임시 사용 중이다. 달서구청 측과 책읽는사회만들기 국민운동 측은 서로의 책임만 탓하고 있다. 중간에 낀 내 입장까지 매우 난처해졌다. 답답하다.”

-무엇이 문제인가.

“구청과 국민운동이 작성한 기본계약서에 구청은 부지 제공만 하고 나머지 건립비는 모두 국민운동 측이 부담하기로 돼 있기 때문이다. 구청 측에선 계약서대로 하자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고, 국민운동 측에선 방송 사정상 급하게 계약서를 작성할 수밖에 없었지만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이나 대구 부지의 특수성(지하 주차장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건립비가 훨씬 더 들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을 고려해 구청측도 일부 부담하라는 입장이다. ”

-굳이 계약을 급하게 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나.

“국민운동과 ‘!느낌표’ 측이 대구 지역을 1차로 선정한 것은 무엇보다 우리 시민들의 자체 역량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사실 대구 지역에선 지난해부터 경북대 교육학과 김민남 교수를 위원장으로 한 민간도서관 건립추진위원회가 결성돼 도서관 짓기 운동을 벌여왔다. 그래서 지난 1월 달서구청으로부터 부지 제공까지 약속받았다.

그런데 그때 마침 MBC ‘!느낌표’에서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했다. 지난해 대구에서 도서관대회가 열렸을 때 국민운동의 서해성 사무처장과 만난 적이 있다. 우리 사정을 듣고 적극 도와주겠다고 했었다. 그래서 신청했다. 모금운동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건립비까지 저절로 생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말 선정이 됐다.

그런데 1차 선정지역 발표 방송이 나가기 바로 전날 저녁 ‘!느낌표’ 측에서 전화가 왔다. 달서구청 측에서 건립비 부담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는다면서 대구 지역 다른 지자체를 알아봐달라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 힘들겠다고 했다. 사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발표를 늦춰달라고 하더라도 더 알아봤어야 했다. 그때만 해도 그렇게 많은 지역을 선정하리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꼭 그때 선정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방송사측에서도 편집 문제가 걸렸는지 그냥 발표 방송을 내보냈다.”

-어쨌든 그 후 양측이 합의하려고 했을 것 아닌가.

“구청측은 계약서가 그렇게 돼 있는 이상 구 의회와의 예산심의 문제 등 일이 아주 복잡해진다며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구청장은 이제 날 만나주려고도 하지 않는다. 구청 공무원들도 영 필요하면 일단 국민운동 측이 구체적인 내용을 공문화해서 보내달라고 한다. 공무원들 입장에선 공문 없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운동 측은 서해성 사무처장이 대구에 와서 구청장과 시장도 만나고 돌아갔다는데 공문은 보내주지 않고 있다. 그렇게 충분히 설명했는데 안해주는 것은 지자체의 의지 부족 때문이지 공문이 무슨 필요냐는 얘기다. 요즘은 순천 등 다른 지역 도서관 완공 문제로 더 바빠져서인지 복잡한 대구 일은 아예 덮어두고 있는 느낌이다. 이젠 양쪽이 다분히 감정 대립의 상황까지 온 것 같아 안타깝다.”

-해결 방법이 없겠는가.

“달서구측에서 좀더 유연하게 대응해주면 물론 바랄 게 없다. 하지만 도저히 안된다면 우선 국민운동 측이 양보해서 사용 가능한 기금 규모에 맞게 도서관을 축소해서라도 짓고 나중에 증축했으면 좋겠다. 사실 국민운동 측에서 정보를 충분히 공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얼마가 더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금이 그렇게 충분치는 않은 것으로 안다.

그런데 국민운동 측에선 지금 와서 설계를 바꿀 수 없다고 한다. 그게 사실 납득이 되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을 짓겠다는 말 자체가 함정이 된 것 같다. 외관이 아름다우면 물론 좋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부차적 문제다. 우리 대구시는 다른 어느 지역보다 알찬 도서관을 운영해갈 수 있는 자체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한다. 도서관에 채워질 내용이 중요하고 앞으로의 운영 방법이 더 중요하다. 기존의 공립 도서관들과는 차별화된 어린이 전문 도서관을 만들겠다는 게 원래의 취지 아닌가. 지금 보기엔 일부 지역의 경우 공립 도서관을 하나 지어 지자체에 넘겨주는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하게 된다.”

(국민운동의 서해성 사무처장에 따르면 지금까지 출판계로부터 건네받은 기금은 총 27억원 정도이며 1호 기적의 도서관인 순천에 10억원 이상 사용됐다. 순천의 경우 시에서 부지 외에 5억원을 부담했다. 2호 도서관부터는 조금 적게 들 예정이고 고양시 등 지자체가 건립비 전액을 부담하는 곳도 있지만 그래도 현재 선정된 12곳을 모두 짓는데 건축비와 컨텐츠비용이 모두 60억~70억원이 들 것 같다고 한다. 앞으로 기금과 후원금이 40억원 이상 더 필요하다는 얘기다.)

-조금 더 기다리면 합의가 될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이러다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 방송이 끝나면 기금 조성하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다. 구청 측도 지자체 선거와 총선 등 때문에 이 일에 신경쓸 여유가 더 없어진다. 그 와중에 흐지부지 될까 겁난다는 것이다. 기적의 도서관은 방송사에서 다 지어주는 걸로 아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제 새롭게 모금운동을 하기도 힘들어졌다. 2백30만 대구시민들, 특히 아이들이 모두 지켜보고 있는 사업이다. 더군다나 부지가 아파트 단지 앞 공원지역인데다 지하철이 가까이 연결되는 등 입지가 아주 좋기 때문에 선정됐을 때 모두들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완전히 물거품이 되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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