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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달군 'K발레'① '에스메랄다' 김시현…"오늘의 영광을 키운 건 팔할이 쓴 경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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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발레 콩쿠르 프리 드 로잔의 스타, 서울예고 김시현 학생이 귀국 직후인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평창동 서울예고 무용관 연습실에서 중앙일보를 위해 '에스메랄다' 마지막 포즈를 취했다. 김경록 기자

세계적 발레 콩쿠르 프리 드 로잔의 스타, 서울예고 김시현 학생이 귀국 직후인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평창동 서울예고 무용관 연습실에서 중앙일보를 위해 '에스메랄다' 마지막 포즈를 취했다. 김경록 기자

스포츠에 올림픽이 있다면, 발레엔 로잔이 있다. 매년 스위스 로잔에서 전 세계 15~18세를 대상으로 개최하는 콩쿠르, 프리 드 로잔(Prix de Lausanne)이다. 올해 50회를 맞은 발레 등용문으로, 강수진 국립발레단장도, 서희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수석무용수, 박세은 파리오페라발레 에투왈(수석무용수)도 로잔을 통해 전 세계에 존재감을 두루 알렸다. 지난 5일(현지시간) 막을 내린 이 유서 깊은 대회에 올해 한국인 수상자가 3명이나 나왔다. 로잔의 무대를 빛낸 한국 학생들을 귀국 직후 중앙일보가 단독으로 만났다. 서울예고 김시현 학생은 지난 8일 서울예고에서, 선화예고 박상원·김수민 학생은 지난 9일, 강민우 학생은 컨디션 회복을 위해 이메일로 만났다.

로잔 무대에 설 수 있도록 예선을 통과한 한국 학생 숫자는 16명으로, 단일 국가로는 일본과 함께 가장 많았다. 이 중 파이널리스트 진출자는 4명이다. 모두 11개 국가가 파이널리스트를 배출했는데, 이중 한국과 일본이 각 4명으로 최다를 기록했다. 이 중 한국은 3명이, 일본은 1명이 입상했다. 로잔은 그러나 입상 여부를 떠나 무대에 진출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스테판 라고니코 로잔 측 이사장 역시 입상자 호명 직전에 "여러분들은 이미 이 자리에 선 것만으로 우승한 것과 진배없다"고 강조했다. 먼저, 김시현 학생과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올해 로잔의 관객상까지 거머쥔 서울예고 김시현 학생. 김경록 기자

올해 로잔의 관객상까지 거머쥔 서울예고 김시현 학생. 김경록 기자

상 하나를 받기에도 어려운 로잔에서 김시현 학생이 거머쥔 상장은 2개다. 5위 입상과 동시에 현장 관객이 직접 뽑은 인기상도 받아들었다. 그가 선택한 '에스메랄다' 무대가 끝난 뒤 객석에선 환호와 박수의 데시벨이 유독 크게 컸다. 그의 카리스마 넘치는 화려한 무대에 세계 관객도 매료된 것. 피루엣 턴을 세 번만 돌아도 되는 순간 네 바퀴를 깔끔하게, 그것도 여러 번 완수한 것은 빙산의 일각. 귀국 다음날인 8일, 서울예고 무용연습실에서 만난 시현 학생은 이미 그날의 연습, 일명 '클래스'를 마친 상태로 취재진을 맞았다.
태어날 때부터 피루엣 턴을 돌았을 것 같은 시현 양이지만, 한때 "발레를 하는 게 맞나" 방황했던 시기를 거쳐 "발레 아니면 안 되겠다"고 깨달았다고 한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축하합니다. 피루엣 네바퀴 도전한 게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사실, 도전을 어려워 하는 편이었어요. 하지만 로잔은 꿈의 무대잖아요. 출전 가능 나이가 정해져 있으니 마음껏 하고 와야 후회가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제 장점을 보여드리고 싶었고, 피루엣을 꼭 성공하고 싶었어요. 연습을 할 때 무조건 네 바퀴로 연습을 해놓아야 실전 무대에서 세 바퀴는 안정적으로 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를 믿고 해보자고 멘털을 꽉 잡았어요."  
그래도 떨렸을 텐데요.  
"눈물이 날 정도로 덜덜 떨렸어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으니까요. 마음을 달래면서 (서울예고) 김재희 선생님의 지도와, 안윤희 선생님의 '잘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관객에게 내가 누구인지 소개하는 듯한 심정으로 하라'는 말씀을 떠올리며 마음을 잡았어요. 끝났는데 생각보다 박수가 커서 깜짝 놀랐고요. 연습하며 힘들었던 게 싹 날아갔어요.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행복했어요."  
힘든 시기도 있었을텐데, 어떻게 극복했나요.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영재교육원에 다녔는데요, 2학년 시험에 불합격해서 1년 정도 발레를 쉬었어요. 떨어진 게 힘들고 우울하고 '내가 발레를 정말 좋아하는 게 맞나' 고민도 했고요. 그간 못했던 여행도 하고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어봤는데, 어느 순간 문득 깨달았어요. 내가 원하는 건 춤을 추는 거라고요. 나는 발레가 아니면 안 된다는 걸 절감했죠. 그 힘든 시기가 저에겐 진정 필요했던 거였습니다."  
로잔 도전한 게 이번이 두번째죠.  
"첫 도전이 2020년이었는데, 오자마자 아킬레그건 부상을 입었어요. 많이 울었죠. 그리곤 이런 결심이 들었어요. '아, 이제 좀 알겠다, 한 번 더 도전해보고 싶다'라고요. 제 각오를 믿어주신 가족과 선생님들이 감사하죠. 이번 무대 뒤엔 (세계 유수의 발레단) 10군데에서 감사하게도 (입단) 제의를 주셨어요. 유학도 준비하게 됐고요."  
김시현 학생이 로잔에서 사용했던 소품인 탬버린을 들고 서울 종로구 평창동 서울예고 무용관 연습실에서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김시현 학생이 로잔에서 사용했던 소품인 탬버린을 들고 서울 종로구 평창동 서울예고 무용관 연습실에서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기억에 남는 순간들은요.  
"사실 매일 일정을 소화하다보니 체력적으로 힘들긴 했어요. 하지만 마지막 클래스 그랑 알레그로(점프) 순서에서 선생님이 '날아가요, 저 하늘로'라고 해주셨는데 그때 신기하게 정말 몸이 움직이더라고요. 다른 참가자들에게도 많이 배웠는데요, 특히 321번 (이탈리아 줄리아 카챠토리) 참가자가 행복하게 추는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저도 스스로를 더 믿고 무대를 더 즐기는 무용수가 되고 싶어요."  
시기와 질투도 많이 받을 텐데요.
"음, 저는 오히려 즐기는 거 같아요. 내가 잘하니까 (시기 질투를) 하겠지, 생각하고 오히려 원동력 삼으려고 합니다."  
루틴으론 뭘 하시나요.  
"제가 코어근육이 진짜 약해서요, 저만의 운동 방법을 만들어서 꼭 지키려고 해요. 클래스 한 시간 전에는 미리 와서 몸을 풀고요. 바로 클래스 들어오는 게 잘못됐다는 얘긴 아니고요. 그런 친구들과 제가 갖고 있는 게 다르니까요."  
발레의 매력은요.  
"세계 어딜 가도 통하는, 몸으로 하는 언어라는 점이 매력인 거 같아요. 언어 장벽을 넘어 몸으로 세계 모든 이들과 표현을 할 수 있다는 점이요."  
김시현 학생은 바워크를 되도록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김경록 기자

김시현 학생은 바워크를 되도록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김경록 기자

10년 후, 20년 후, 그 이후의 계획도 들려주세요.  
"(서울예고 졸업생인) 파리오페라발레 박세은 에투왈처럼 목표를 차근차근 이뤄내고야 마는 모습을 본받고 싶어요.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김기민 수석무용수처럼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모습도 멋지고요. 저는 30대 넘어도 계속, 오래 춤을 추고 싶고요, 이후엔 지도자로 많은 걸 나누고 싶습니다."  
발레와 끈을 평생 이어가시겠군요.  
"그런 의미가 되네요(웃음)."  

※박상원·김수민·강민우 학생의 인터뷰 기사는 13일 공개됩니다.

※동영상 저작권은 프리 드 로잔(Copyright: Prix de Lausan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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