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해에 깔린 할머니…아빠 우는 모습 처음 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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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부터 요순 아카이가 생활하고 있는 튀르키예의 한 임시 피난소. 이곳에서 500여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사진 요순 아카이]

“여기는 지옥이에요. 지옥 말고는 어떤 말로도 지금 상황을 표현할 수 없어요.”

대지진이 일어난 튀르키예 동남부에 사는 요순 아카이(19)의 목소리는 또렷했다. 요순은 7일(현지시간) 중앙일보와 화상 인터뷰에서 “지진으로 초토화된 아디야만의 집을 떠나 6일 저녁 임시대피소로 와 이틀째 밤을 맞았다”고 말했다. 그의 집이 있던 아디야만은 인구 약 26만의 도시로, 진앙지인 가지안테프에선 자동차로 약 2시간 떨어진 곳에 있다.

요순은 지진이 일어난 지난 6일(현지시간) 오전 4시17분에 깨어 있었다. 창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방탄소년단(BTS)의 라이브 영상을 보던 중 벼락처럼 지진이 덮쳤다. 요순은 “강한 진동과 함께 내 눈앞에서 방안 벽 오른쪽부터 왼쪽까지 지지직 크랙(균열)이 갔다. 책상과 의자가 밀려 갔고 벽이 무너져내렸다”며 “‘나 오늘 죽는구나’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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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소에서 지급된 닭 수프와 밥. 1인당 하루에 두 끼와 물 3병이 지급된다. [사진 요순 아카이]

지진은 2분간 계속됐다. 이윽고 진동은 잦아들었지만, 떠밀려간 책상이 요순의 방문을 막아 빠져나올 수 없었다. 요순의 어머니가 문 밖에서 오열했다. 어머니의 비명소리를 들으며 책상을 밀어내고 가까스로 밖으로 빠져나왔다.

현재 아디야만의 상황은 어떤가.

“이제 도시 같은 건 없다. 건물이 하나도 안 남았다. 마음이 아픈 건 건물 아래에 사람들이 깔려 있다는 거다. 나도 건물 아래 깔린 사람의 손과 짓눌린 한 남자의 머리를 봤다. 정말 도움이 간절하다. 도와주러 오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학교는 휴교 상태인가.

“정부에서는 2월 13일까지 휴교라고 하지만 내년에도 학교에 갈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지금 이 도시에는 쓸 수 있는 건물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홀로 살던 요순의 할머니는 이번 지진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동이 트기를 기다렸다가 할머니를 살피러 간 요순은 잔해에 깔린 할머니를 발견했다. 요순은 “내가 열아홉살인데 그때 아빠가 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 할머니의 시신을 보고는 나를 껴안고 ‘우리 엄마가 죽었어’ 하며 울었다.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라고 했다. 잔해를 들어낼 장비나 인력이 부족해 요순의 할머니는 아직도 건물 잔해 아래 깔려 있다.

대피소 생활이 고단해 보인다.

“이곳에서 이재민 500여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음식도 물도 부족하지만 다들 ‘이거라도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물은 나오지만 비누가 없어서 손을 한 번밖에 씻지 못했다.”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오늘도 5번이나 여진이 왔다. 어린 아이들은 대피소가 흔들릴 때마다 울고 어르신들도 불안해한다.”

요순은 “앞으로 힘들고 고생이 많겠지만 씩씩하게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독자들에게는 “도움을 부탁드린다. 도와줄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기도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국내에선 기부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네이버 기부 플랫폼 ‘해피빈’의 ‘튀르키예-시리아 강진 긴급 모금’에는 하루 만에(8일 정오 기준) 6억1129만원이 모였다. 국경없는의사회, 월드비전에도 각각 1억원이 넘는 기부금이 모였다. 튀르키예에서 8년간 선수 생활을 했던 배구선수 김연경은 인스타그램 계정에 ‘튀르키예를 도와달라’는 문구를 올리며 기부 방법 등을 수 차례 상세히 소개했다. 방송인 장성규는 인스타그램에 유튜브 채널 정산금 2300만원을 튀르키예 긴급 구호금으로 기부했다고 밝혔다.

최서인 기자 choi.seo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