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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아닌 정비불량에 17명 숨졌다...부품 돌려막는 美주력함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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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추진 항공모함과 이지스 구축함 등 미국 해군의 주력함들이 부품을 돌려막고 정비가 지연되는 등 심각한 악순환에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반도와 대만해협에서 군사적 긴장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유사시 미국이 해군력을 제때 제대로 투사할 수 있을지 우려마저 나온다.

핵추진 항공모함 등 미국 해군의 주력함들이 부품 부족 등 정비 불량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지난 2018년 3월 5일 베트남 앞바다에 정박 중인 미 해군 항모 칼 빈슨함. AP=연합뉴스

핵추진 항공모함 등 미국 해군의 주력함들이 부품 부족 등 정비 불량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지난 2018년 3월 5일 베트남 앞바다에 정박 중인 미 해군 항모 칼 빈슨함. AP=연합뉴스

이같은 상황은 미국 회계감사원(GAO)이 미 해군의 니미츠급 항모 등 주력함 151척의 지난 10년간 운영현황(2011~2021 회계연도)을 분석한 결과 드러났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GAO가 공개한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분석 대상은 항모 이외에 아메리카급ㆍWASP급 강습상륙함, 타이콘데로가급 이지스 순양함, 알레이버크급 이지스 구축함 등 10종이다. 이들 함정의 수는 2022년 기준 미 해군 전체 함정 292척 가운데 약 절반에 해당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10개 함종 중 9개 함종에서 새 부품을 구하지 못해 다른 함정의 부품을 재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방위산업체들이 더는 부품을 생산하지 않거나 원자재 부족 등으로 생산이 지연된 데 따른 결과였다.

정비 지연 기간도 10년 새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1척당 평균 5일이던 정비 기간은 19일로 늘었다. 특히 2019 회계연도의 경우 평균 40일 지연되는 심각한 지체 현상이 발생했다.

F-35 항모 추락 등 사고 잦아  

이는 최근 미 해군 함정들의 잦은 충돌 사고 등과 관련이 있다. 일례로 지난해 1월 남중국해에서 F-35C 스텔스 전투기가 항공모함(칼 빈슨함)에 착륙하던 중 갑판에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해 갑판이 손상됐다.

또 지난 2017년에는 서태평양을 관할하는 미 제7함대에서만 이지스함 충돌 사건이 2건 발생했다. 2017년 6월 이지스 구축함(피츠제럴드함)이 일본 남쪽 해상에서 대형 컨테이너선과 충돌해 함교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심각하게 파손됐고, 이어 석 달 뒤인 2017년 9월에는 이지스 구축함(매케인함)이 싱가포르 동쪽 해상에서 유조선과 충돌해 우현 아래가 움푹 들어가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다. 잇따른 두 사고로 숨진 승조원만 17명에 달했다.

당시 미군은 사안이 심각하다고 보고 미 해군 수뇌부를 경질하는 등 고강도 조치에 나섰지만, 근본적으로 원인을 개선하긴 힘들다는 지적이 나왔다. 함정을 운용할 병력 자체가 부족한 상황에서 훈련과 임무 투입이 반복되다 보니 피로 누적 등에 따라 운항 중 사고가 일어난다는 얘기였다.

이와 관련,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병력 부족과 사고가 중첩되다 보니 임무 시간은 늘어나는데 정비와 교육 훈련할 시간은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악순환에 빠졌다”며 “결국 이같은 상황은 또 다른 사고를 부르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7년 미 제7함대에선 석 달 새 연달아 이지스함 충돌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은 2017년 6월 일본 남쪽 해상에서 필리핀 선적 대형 컨테이너 선박과 충돌해 함교가 파손된 이지스 구축함 피츠제럴드함의 모습. AP=연합뉴스

지난 2017년 미 제7함대에선 석 달 새 연달아 이지스함 충돌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은 2017년 6월 일본 남쪽 해상에서 필리핀 선적 대형 컨테이너 선박과 충돌해 함교가 파손된 이지스 구축함 피츠제럴드함의 모습. AP=연합뉴스

이에 따라 주력함의 유지비도 크게 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함정의 총유지비는 10년 새 17.3%(25억 달러ㆍ약 3조 600억원) 늘어나 171억 달러(약 20조 8500억원)에 달했다. 이중 정비 비용이 62억 달러(약 7조 5000억원)로 같은 기간 24%(12억 달러ㆍ약 1조 4000억원)가 증가했다.

보고서는 “함정들의 항행 시간 자체가 줄어든 가운데 정비가 늦어진 탓에 함정의 상태가 더 나빠졌고 이에 따라 다시 정비ㆍ운영비용이 증가하는 악순환이 일어났다”고 진단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같은 상황은 이미 양적으로 중국 해군력에 추월당한 미국 입장에서 불안한 요소다. 중국은 지난 2015년 함정 수에서 미국을 넘어섰으며 계속 격차를 벌리고 있다. 미 의회조사국(CRS)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중국 함정 수는 348척, 미국은 296척이다.

이에 대해 양 위원은 “항모전단 규모나 전력 측면에서 보면 미국이 여전히 우위에 있지만, 중국 해군력의 엄청난 양적 증가에 대응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 해군력의 약화는 한반도와 대만해협 유사시 미국이 충분한 전력을 보낼 수 없다는 경고로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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