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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핵사찰' 거부"…美, 사거리 150㎞ 정밀폭탄 우크라 보내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러시아가 미국과 맺은 핵무기 통제 조약인 ‘신 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ㆍ뉴스타트)’에 따른 상호 핵사찰 요구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는 더 나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군사지원을 이유로 뉴스타트 폐기 가능성까지 언급하는 상황이지만, 미국은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사거리 150㎞의 정밀폭탄 등 또 다른 무기 지원을 검토 중이다.

러시아 국방부는 지난해 10월 26일 러시아 북서부 플레세츠크 발사장에서 핵 훈련의 일환으로 '야르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를 시험발사했다며 발사 장면을 공개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러시아군의 핵무기 공격 위협도 계속되고 있다. EPA=연합뉴스

러시아 국방부는 지난해 10월 26일 러시아 북서부 플레세츠크 발사장에서 핵 훈련의 일환으로 '야르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를 시험발사했다며 발사 장면을 공개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러시아군의 핵무기 공격 위협도 계속되고 있다. EPA=연합뉴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국무부는 미 의회에 “러시아가 미국과 약속한 상호 핵사찰을 거부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지난 2010년 체결한 뉴스타트에 따르면 미ㆍ러 양국은 서로 주기적으로 핵시설을 사찰해 핵탄두와 운반체(미사일)의 감축 유지를 확인하게 돼 있지만, 이를 러시아가 지키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그간 양국은 뉴스타트를 통해 각각 실전배치 핵탄두 수를 1550기 이하로 통제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ㆍ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ㆍ전략폭격기 등 운반체도 700기 이하로 줄였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술핵무기 공격을 언급하고 최신형 핵추진 잠수함에서 SLBM을 시험발사하는 등 핵 능력을 과시하면서 러시아의 뉴스타트 준수 여부가 도마 위에 올랐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런 가운데 지난해 8월 미국이 러시아에 코로나19로 3년여간 중단된 상호 핵사찰을 재개하자고 요구했으나 러시아 측이 이를 거부하면서 핵무기를 둘러싼 양국 간 불신은 더 깊어진 상황이다.

러시아 측은 코로나19가 계속 유행하고 있다며 사찰을 반대했지만, 미국은 방역 완화로 사찰 인원의 출입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미 국무부 관계자는 “러시아가 사찰 활동을 거부하는 것은 조약에 따른 미국의 중요한 권리 행사를 막고, 양국 간 핵무기 통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말했다.

2026년 뉴스타트 중단 위협

미국은 러시아의 핵사찰 거부가 사실상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노골적인 반발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러시아 측이 사찰 거부는 물론 최근 들어선 뉴스타트의 폐기 가능성까지 내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은 지난달 26일 코메르산트와 인터뷰에서 뉴스타트 재연장 협상과 관련해 “미국이 러시아에 대한 적대적이고 안보 위협을 키우는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원하는 것을 이루기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양국이 지난 2021년 뉴스타트를 5년간 연장한 상황에서 오는 2026년 협정을 그대로 종료할 수 있다는 위협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러시아의 이같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새로운 무기 지원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 정부가 ‘지상발사형 소구경 폭탄(GLSDB)’을 22억 달러(약 2조 7000억원) 규모의 추가 무기 지원 계획에 포함시키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지난달 31일 전했다.

정밀 유도 폭탄인 GLSDB는 사거리가 150㎞에 이른다. 앞서 미국이 우크라이나군에 제공한 다연장로켓인 고속기동포병로켓체계(HIMARSㆍ하이마스)보다 사거리(약 80㎞)가 두 배 가까이 길어서 우크라이나 동부 국경지대에서 러시아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무기체계로 평가된다.

미국이 사거리 150㎞의 정밀 유도 폭탄인 '지상발사형 소구경 폭탄(GLSDB)’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로이터 통신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사진은 GLSDB 발사를 묘사한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 사진 사브

미국이 사거리 150㎞의 정밀 유도 폭탄인 '지상발사형 소구경 폭탄(GLSDB)’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로이터 통신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사진은 GLSDB 발사를 묘사한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 사진 사브

이에 대해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GLSDB는 탄두 중량이 적어 살상 반경은 크지 않으나 정밀 유도로 러시아군 기지를 타격할 수 있다”며 “서방의 전차들(M1 에이브럼스, 레오파르트2)과 GLSDB 등 신규 지원 무기가 올봄부터 본격 투입되면 러시아군 입장에선 상당히 곤혹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민 우크라 지원 여론 식어

다만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F-16 전투기 지원 요청에 대해선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우크라이나의 F-16 지원 요청에 찬성하느냐는 질문에 “아니다(No)”라고 단호히 답했다.

한편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라 미국의 지원 규모가 계속 늘어나는 것에 대해 미국민들의 반응은 갈수록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미국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기지에서 워싱턴DC로 가는 대통령 전용기를 타기 위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걸어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우크라이나의 F-16 전투기 요청에 대해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AP=연합뉴스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미국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기지에서 워싱턴DC로 가는 대통령 전용기를 타기 위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걸어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우크라이나의 F-16 전투기 요청에 대해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AP=연합뉴스

미 퓨리서치센터가 지난달 31일 공개한 여론조사(지난 18~24일, 미국 성인 5152명 대상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26%가 ‘우크라이나에 너무 많이 지원한다’고 답했다. 이같은 응답은 지난해 3월 조사 당시 7%에서 12%(지난해 5월), 20%(지난해 9월)로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반면 이번 조사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는 응답은 20%로 지난해 3월 조사 결과(42%)보다 크게 줄었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전쟁 대응에 대해선 ‘지지’(43%)가 ‘반대’(34%)보다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 대선 출마를 준비 중인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선 이같은 미국 내 여론 동향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바이든 행정부가 공언한 것과 달리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규모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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