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물가의식한 「짜깁기안」/추곡수매 차액보상제 배경과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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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부미 재고·재정부담 더는 2중 효과/산지쌀값­배정량 기준없어 혼란 우려
19일 확정된 추곡수매에 관한 정부안은 재정부담과 물가를 우려한 정부의 경제논리와 표밭을 의식한 여당인 민자당의 정치논리를 짜깁기한 절충형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른바 차액지급제를 도입,형식상으로는 1천만섬을 수매,민자당에 명분을 주면서 실제로는 7백50만섬을 사들여 정부의 당초 의도를 그대로 살린 것이 이번 정부안의 골자다.
○올 2백50만섬 적용
이와 관련,조경식 농림수산부 장관은 『정부의 직접 수매량은 7백50만섬(통일벼 4백50만섬,일반미 3백만섬)으로 하되 추가로 일반벼 2백50만섬에 대해 『수매가격과 산지가격과의 차액을 지급,총 1천만섬의 수매효과를 갖도록 했다』고 말하고 『특히 2백50만섬에 대한 차액지급액은 6백70억원으로 직접 수매자금 5천억원에 비해 재정부담이 훨씬 줄어든다』고 강조했다.
민자당이 의식해야 하는 농민들의 주장을 대폭 받아들이면서 정부의 재정부담도 줄일 수 있는 다목적용이 아니냐는 얘기다.
쌀 생산은 10년연속 풍작을 이뤘으나 국민 1인당 쌀소비량은 해마다 줄고 있고 지난 2년간 수매가 및 수매량을 대폭 인상한 결과 정부미 재고는 날이 갈수록 늘어 이에 따른 재정부담이 골칫거리로 등장했다.
양곡회계연도를 마감하는 10월말 현재 정부미 재고는 1천3백만섬으로 적정재고수준(7백만섬)을 훨씬 웃돌고 있고 추곡수매와 정부미 재고관리에 비용을 대는 양곡관리 특별회계의 올 한해 적자는 7천억원으로 연평균 적자수준 4천억원의 두배 가까이 달하고 있다.
게다가 작년에는 수매량을 1천1백70만섬으로 대폭 늘려 시중에 쌀 재고가 바닥이 나면서 올해 물가에 악영향을 미쳤다.
이 때문에 정부는 올해 추곡수매에 대해 「인상률 한자리수,수매량 6백만섬」 방침을 여러차례 밝혔고,노태우 대통령도 이같은 정부정책을 강조하는 배수진을 쳤던 것이다.
○내년 선거 고려한 듯
그러나 딱하기는 민자당도 마찬가지였다.
우루과이라운드(UR),농산물시장개방 등으로 불안을 느끼고 있는 농민들이 추곡수매에 대해 유례없이 날카로운 반응을 보여 일부 지역에서 수매거부등 집단행동이 일었다.
게다가 여야 합의로 지방자치제 선거가 내년에 실시될 것이 확실해짐에 따라 농촌 선거구를 의식해야 하는 민자당으로서는 대통령에게 압력을 넣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놓였다.
이 때문에 당정협의가 난항을 거듭했고 결국 차액지급제라는 묘수를 찾았다. 정부는 차액지급제가 올해 반응이 좋을 경우 이를 내년부터 더욱 확대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절충안은 앞으로 더많은 문제점을 야기시킬 우려가 있다.
정부는 추곡수매를 시작한 11월1일의 산지쌀값(9만2천원)과 수매가 차액 1만5천원 내외를 해당 농민들에게 지급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지역마다 쌀값이 틀려 기준을 정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배정확대 요구 가능
또 차액지급액 배경을 작년도 수매실적,올해 생산실적,농가별 경지 및 식부면적 등을 다각적으로 고려,마을 영농회가 정하도록 했으나 농사를 많이 짓는 사람이 돈을 더많이 받는 현상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데다 배정을 공평하게 할 수 있는 기준이 아직 마련되지 않아 농촌에 자칫 분란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
또 배정에서 소외된 농민들이 차액지급물량을 늘려달라고 요구할 경우 새로운 논란의 불씨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번에 민자당이 정부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 만큼 앞으로 국회동의 과정에서 평민당도 야당 지분을 요구할 경우 또한차례 진통이 예상된다.
농촌관계자들은 이같은 정치적 논리 때문에 UR,농산물 시장개방에 대비,정작 절실한 농촌구조 조정사업이 뒷전에 밀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구조조정사업이 워낙 장기적 과제라 농민들에게 즉각적인 효과를 보여줄 수 없고 이 때문에 보상차원에서 추곡수매가 해마다 논란을 거듭할 염려가 있다는 것이다.<한종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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