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여건속의 농정 방향(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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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추곡 「차액보상제」는 신중 기해야
우리 농정이 안고 있는 가장 큰 고민 중의 하나는 그동안 추진해온 주곡증산 정책의 결과 이제는 오히려 쌀이 남아 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재고미의 누증이 재정부담의 가중 등 경제운용에 역기능으로 작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증산을 위해 유지해온 제도들을 함부로 손질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에 있다.
그것은 통일벼 보급·2중곡가제 실시 등의 증산정책이나 제도가 농가의 소득보장과 직결돼 있고 이같은 정책이나 제도의 후퇴가 농가의 소득감소를 결과하게 된다는 점 때문이다.
더욱이 그동안 여소야대의 정국 아래서 이 문제가 농정의 장기적 비전 아래 단계적으로 조정돼야 할 기회를 상실하고 오히려 인기위주의 소득보장정책으로 흐름으로써 문제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정부는 재정부담의 한계와 우루과이라운드의 출범이라는 외부적 압력에 의해 뒤늦게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려 하고 있으나 최근 1∼2년간 정치권에 이끌려 다니며 그르쳐 놓은 관행의 굴레와 우루과이라운드 출범을 앞둔 농민들의 불안심리의 증폭이라는 어려운 여건 때문에 운신의 폭이 어느 때보다 좁다고 할 수 있다.
이번의 추곡수매가 정부안 결정은 이같은 배경 아래 정부의 수매제도 개선의지와 정치권의 인기위주 논리가 대립한 끝에 정치권의 주장이 더 많이 수용된 타협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내년부터 통일벼의 수매가격을 동결하고 수매량을 1백50만섬으로 줄였다가 93년부터는 생산을 아예 중단키로 한 것이나 93년부터 2중곡가제를 폐지하겠다고 밝힌 것 등은 농정에 대한 정부와 정책전환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추곡수매물량을 여당이 요구한 1천만섬에서 7백50만섬으로 줄이는 대신 나머지 2백50만섬에 대해 차액보상제를 실시키로 한 것은 정치권의 논리에 정부가 양보한 것으로 보아 무방할 것이다.
수매가와 수매량,그리고 새로 도입된 차액보상제에 대해서는 농민들로부터 불만이 제기될 소지가 없지 않으나 쌀이 남아 돌아 더이상 재정이 소득보장을 위한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사정을 이해하고 농민들 스스로도 여건 변화에 대응한 자구책을 강구해 나가지 않을 수 없는 추세다.
다만 이 자리에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새로 도입된 차액보상제도가 내포하는 문제점을 과소평가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차액보상제도는 1천만섬 수매요구에 모두 응하지 못하는 데 대한 편법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정부 수매제도와는 논리적 근거를 전혀 달리하는 것으로 수매라는 절차에 의한 소유권 변동없이 정부가 쌀재배 농가에 무상지원을 하는 것이다. 이같은 무상지원은 농가지원 방법으로는 수매제보다 더 직접적인 것이며 자칫 농민들에게 소득보장 방법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
이같은 직접 지원방식은 우루과이라운드에서 금기로 여기는 가장 핵심적인 것인데 앞으로 쌀의 증산책을 재검토하겠다는 정부가 이같은 방식을 도입한다는 것은 정부의 농정방향에 어긋날 뿐 아니라 국내외적으로 더 큰 마찰의 소지를 남겨 놓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주고 있다.
또 차액보상 대상이 되는 2백50만섬의 보상가액 결정에서 산지가격이 지역마다 다르고 배정대상 농가 선정에서도 농민들 사이에 적지 않은 분란의 소지가 있다.
보상대상이 결과적으로 생산량이 많은 농가에 집중되는 경우 형평의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있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될 현실적 문제다.
이같은 여러 문제들을 고려할때 차액보상제의 도입에는 충분한 검토와 보완책이 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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