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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북한 무인기에 당한 군의 안이함과 무책임의 끝은 어딘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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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승겸(왼쪽) 합참의장이 2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북한 무인기 관련 현안보고를 하고 있다. 우리 군의 무인기 부실 대응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 질타를 받았다. 김성룡 기자

김승겸(왼쪽) 합참의장이 2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북한 무인기 관련 현안보고를 하고 있다. 우리 군의 무인기 부실 대응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 질타를 받았다. 김성룡 기자

합참, 3대 정보 전파·공유 시스템 ‘먹통’ 확인

장성도 예외 없이 엄정 문책해 군 기강 세워야

북한 무인기가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수도 서울의 상공을 휘젓고 다닌 과정에서 우리 군이 보여준 안이함과 무책임한 행태가 양파 껍질 벗기듯 끝없이 드러나고 있다. 도대체 이렇게 군 기강이 해이해지고 대응 역량이 부실한 군을 어디까지 신뢰해야 할지 불안하고 걱정스럽기만 하다.

지난해 12월 26일 북한 무인기 5대가 우리 영공을 침투해 그중 1대가 서울 상공을 정찰하고 유유히 돌아간 사건의 충격은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다. 당시 우리 군은 무인기를 제대로 요격도, 격추도 하지 못했고 KA-1 경공격기가 비상 출동 와중에 추락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

이 때문에 합동참모본부 전비검열실이 최근까지 무인기 대응 실태를 총체적으로 점검했으나 그 결과가 더욱 충격적이다. 어제 국회 국방위에 보고된 내용을 보면 무인기 대응을 위한 우리 군의 3대 정보 전파·공유 시스템이 모두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북한의 도발 상황을 전후방 각급 부대 지휘관들에게 즉각 전파하는 긴급통신망인 방공부대의 고속지령대, 대응 작전 실행을 위한 상황 전파망인 고속상황전파체계, 북한 도발 정보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대응하는 통합정보처리체계(MIMS)까지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북한 무인기에 철저하게 농락당한 것이 이상일 게 없어 보이는 대목이다.

그동안 북한군 노크 귀순(2012년), 삼척항 북한 목선 입항 사건(2019년) 등 북한의 도발이나 침투에 번번이 구멍뚫릴 때마다 국방부와 군은 디지털 역량 강화를 외쳤고, 그때마다 엄청난 예산을 투입했다. 하지만 무인기 도발 상황에서 드러난 것처럼 첨단 디지털 장비나 시스템은 제 기능을 하지 못했고 뒤늦게 사람이 유선전화로 상황을 전파했다. 급박한 상황에서 멀쩡한 고속도로를 놔두고 시골길을 달렸다는 황당한 변명과 다르지 않다.

전비 검열 이후 국방부와 군 일각에서 “지휘관 징계는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논리로 장성급 문책을 미적거린다니 이 와중에도 제 식구 감싸기가 아닌가. 초기 상황 판단 잘못과 늑장 보고 및 전파 부실 책임을 영관급 장교 등 실무자 몇 명을 문책하는 것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최전방 1군단장, 수도방위사령관, 공군작전사령관, 지상작전사령관은 물론 김승겸 합참의장까지 이번 사태에 대한 총괄적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난다고 할 수 있겠는가.

물론 문재인 정부 5년간 제대로 된 훈련이 부족했고, ‘평화 타령’만 하는 와중에 군의 기강과 사기가 저하된 정치적 요인이 없지 않다. 그러나 문제가 드러났는데도 덮어서는 안 된다. 신상필벌의 원칙을 다시 세워 국민의 안전을 확실히 보장해 줄 군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