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나경원 사태’는 여권의 치부 드러낸 집단 참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당 대표 불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당 대표 불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불출마 나경원 “질서정연한 무기력함” 비판

무리수로 얼룩진 경선, 제 궤도 찾는 계기로

20여 일간 여권을 뒤흔든 ‘나경원 사태’가 본인의 전당대회 불출마로 일단락됐다. 나 전 의원은 어제 회견에서 “당의 분열과 혼란에 대한 국민적 우려를 막고 화합과 단결로 돌아올 수 있다면 저는 용감하게 내려놓겠다”고 말했다. 사태의 1차적 책임은 나 전 의원에게 있다. 저출산위 부위원장직과 기후환경대사직을 유지하면서 대표 출마를 저울질하는 듯한 태도가 발단이었다. 조율되지 않은 대출 탕감 발언이나, “해임 결정이 대통령 본의가 아닐 것”이란 말을 주워 담는 과정도 베테랑답지 못했다. 불출마 결심까지의 우유부단함, 불출마에 따른 정치적 타격 등 본인이 감당해야 할 짐이 가볍지 않다.

‘나경원 사태’는 동시에 여권 내 부조리와 치부를 드러낸 집단적 참사였다. 나 전 의원이 회견에서 “포용과 존중을 절대 포기하지 마시라. 질서정연한 무기력함보다 무질서한 생명력이 필요하다”고 쏘아붙인 여권의 민낯이 이번 사태 전 과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질서정연한 무기력함’이란 표현대로 나 전 의원에 대한 여권의 대응은 일사불란했다. “(출마로) 마음을 굳히고 있다”는 발언 뒤에 대통령실의 파상공세가 시작됐다. 당에선 ‘김-장 연대’로 특정 후보 대표 만들기에 나섰던 ‘윤핵관’이 선봉에 섰다.

친윤계 중심의 초선 의원 50명은 사실상 나 전 의원의 출마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당 내에서도 “집단 린치이자 뺄셈 정치”(윤상현 의원), “깡패들도 아니고 참 철없다”(이재오 상임고문)는 비판이 나왔다. 심지어 공직 인사 검증 때 불거졌다는 나 전 의원의 은밀한 재산 문제까지 공공연하게 흘러다녔다. 앞서 당원 100% 투표로의 룰 변경, ‘윤핵관 맏형’ 권성동 의원의 불출마도 대통령의 뜻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여야 대립이 첨예한 한국 정치 현실에서 국정 안정을 위한 대통령과 여당의 코드 맞추기를 비판만 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 등장한 무리수들은 도를 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연초 “총선에서 여당이 다수당이 되지 못하면 식물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내년 총선에 정권의 운명이 걸려 있다. 역대 총선에선 선거를 이끄는 리더십의 건강함이 승패와 무관치 않았다. 국민의힘 입장에선 ‘진박 감별사’ ‘옥쇄 들고 나르샤’로 리더십이 붕괴됐던 2016년의 예상 밖 패배, 대표와 공천관리위원장의 갈등 속에 공천이 산으로 갔던 2020년의 역사적 참패가 생생하다. 총선 승패는 국민 전체의 선택으로 갈린다. 당원들만의 투표로, 게다가 윤핵관의 일방적 옹립이나 배제로 세워진 리더십에 국민들이 매력을 느끼고 박수를 칠 수 있을까. 도를 넘는 무리수라면 당 주류가 미는 후보에게도 도움이 안 될 것이다. 나경원 사태를 전기로 ‘윤심’과 ‘윤핵관’만 보였던 여당 대표 경선이 부디 제 궤도를 찾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