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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성탁 논설위원이 간다

일본은 "엄마처럼 살고 싶다" 한국은 "엄마처럼 안 살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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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한·일 비교 일본 사회학자의 진단

"젊은 여성 '압축적 고학력화'…사회·직장 문화는 그대로"

김성탁 논설위원

김성탁 논설위원

최근 저출산 정책이 화제로 떠올랐다. 나경원 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신혼부부 전세·주택구입자금 저리대출에 더해 출산과 연계해 원금을 탕감하는 방안을 언급한 것이 계기였다. 헝가리의 대책을 거론한 이후 나 전 부위원장은 해임됐고, 그의 국민의힘 당대표 출마 논란으로 번졌다. 정작 한국 경제를 나락으로 빠뜨릴 요인으로 꼽히는 저출산 문제는 조명받지 못했다.

 2021년 국내 합계출산율(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자녀 수)은 0.8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다. 일본은 2005년 1.26명에서 소폭 올라 1.3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출산율 꼴찌였던 일본보다 한국의 출산율 감소가 가파른 이유는 무엇일까. 사사노 미사에 일본 이바라키대 현대사회학과 교수는 일본 대학 졸업 후 서울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에서 15년 동안 살며 양국 상황을 비교했다. 지난해 서울대 일본연구소에서 ‘한국과 일본의 저출산 원인은 어떻게 다른가’를 주제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22일 본지와 화상인터뷰를 하고 있는 사사노 미사에 일본 이바라키대 교수

지난 22일 본지와 화상인터뷰를 하고 있는 사사노 미사에 일본 이바라키대 교수

 일본의 출산율이 서서히 하락한 반면 한국은 급락했다. 출생아 수에서 한국과 일본은 1980년에서 2000년 사이 25%정도 감소했다. 양국이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2000년부터 2020년 사이 한국은 57.2%나 준 데 비해 일본의 감소폭은 29.5%로 상대적으로 적었다. 사사노 교수에 따르면 한국은 일본에 비해 저출산 예산을 훨씬 많이 투입했다. 하지만 효과가 없었다.

엄마 비해 딸 세대 대학 교육 급증…일본보다 더 급격한 변화
'자녀 어렸을 때 엄마가 돌봐야' 질문에 미·영보다 반대 많아
'자녀 꼭 필요 없어' '결혼하지 않는 게 좋다'  반응도 많아져
"남녀 육아 분담, 직장 내 젠더 평등 정착 없이는 회복 어려워"

 사사노 교수는 젊은 여성의 ‘압축적 고학력화’와 관계가 있다고 분석한다. 한국에서 여성이 대학 이상 교육을 받은 비율은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에서 큰 차이가 난다. 2020년 기준 국내 55~64세 여성이 고등교육을 받은 비율은 18% 수준인데, 25~34세 여성은 77% 정도다. 한국 남성들은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 간 대학 교육 차이가 30% 포인트 정도인 반면 여성들은 60% 가까이나 된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딸 세대의 고학력화가 이뤄진 것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사사노 교수는 “한국 젊은 여성의 가치관 변화를 파악해야 출산율 급감 등을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 내각부에서 5년마다 한국과 일본,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 7개국 13~29세 젊은 세대의 가치관을 비교 조사한 자료를 분석했다.

7개국 젊은이 가치관 조사했더니 

이에 따르면 한국의 젊은 여성 세대는 매우 독특한 위치에 있다. 2018년 조사에서 ‘남자가 돈을 벌고 여자는 가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한국 젊은 여성은 90%를 웃도는 반대 의견을 밝혔다. 남녀 평등 지향적이라고 알려진 서구 국가보다도 단연 높다. ‘자녀가 어렸을 때는 어머니가 자녀를 돌봐야 한다’는 항목에 대해서도 미국과 영국의 젊은 여성은 절반 정도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 한국 젊은 여성은 조사 대상 국가 중 가장 높은 반대 의견을 보였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결혼에 대한 가치 비교에서도 한국 여성의 차별화가 확인됐다. ‘결혼해야 한다’는 응답은 한국 여성이 가장 적었는데, 더 특이한 점은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응답을 한국 젊은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골랐다. 사사노 교수는 “자녀 가치 항목에선 더 큰 변화가 포착됐는데, 젊은 한국 여성 사이에서 자녀가 꼭 필요하지 않다는 집단이 늘어난 반면 일본 젊은 여성 사이에서는 자녀 선호가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전했다.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하느냐는 질문에서 다른 나라의 경우 가족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았지만 한국에선 가족보다는 일과 사회, 나 자신 등을 고른 비율이 이전 조사 대비 크게 상승했다.

 경제위기 때 남녀 모두 일자리 불안 

 사사노 교수는 그 원인으로 경제 위기 이후 노동 시장의 변화를 꼽았다. 한국은 남성과 여성이 동시에 불안정해진 데 반해 일본은 상대적으로 여성의 일자리가 더 불안해졌다. 일본 경제단체가 남성 정규직 근로자를 보호하는 쪽을 택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노동 시장에서 남녀가 모두 불안해지다보니 젠더 간 경쟁이 심화했다는 분석이다.

 여성의 고학력화에 따라 한국은 남녀 대학 진학률에서 차이가 없어졌지만, 일본은 여전히 아들의 대학 진학률이 딸에 비해 월등히 높다. 사사노 교수는 “한국이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성 할당제 등을 도입한 데에서 보듯 여성의 전문직 진출이나 여성 정책 수립 등이 활발하다”며 “한국 여성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혁명적 변화가 이뤄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급격한 변화는 특정 여성 세대에서만 일어났을 뿐 나머지 기성 세대나 사회 및 직장 시스템은 뒤따라오지 못해 마찰이 일어나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런 차이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한국 젊은 여성들이 결혼이나 출산을 미룬다는 것이다. 저출산 관련 예산을 많이 투입하더라도 남녀 육아 분담이나 직장 내 젠더 평등적 문화 등이 서둘러 변하지 않으면 출산율 높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결혼·출산? 경력부터 쌓은 뒤 고려"

 실제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이런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마친 김모(26)씨는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지만 괜찮은 사람을 만나면 할 수도 있는데, 지금은 아니다”고 말문을 열었다. 출산에 대해서도 그는 “아이가 있는 여성은 ‘시간을 뺏기겠구나’라고 직장에서 생각하지 않느냐”며 “동등하게 양육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하는데, 빨리 될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이를 키우려면 적당한 집을 마련해야 하고, 사교육비도 많이 드는 등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며 “취직도 못했는데 어떻게 애를 낳나 싶어 여성들의 결혼 연령이 높아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대학 재학 중인 김모(22)씨도 “결혼할 생각이 있더라도 경력부터 쌓은 뒤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며 “출산에서도 돌보는 문화나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남성보다 여성의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가정에서 엄마가 고생한 것을 본 딸들은 결혼과 출산에 적극적이지 않은 경우가 있다”며 “출산 후 문제 없이 복귀할 수 있는 직장 문화도 정착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사사노 교수는 “탈물질주의가 진행되면서 출산율이 낮아졌던 서구와 달리 한국은 물질주의가 계속되는 와중에 출산 기피가 일어나는 현상을 보인다”며 “SNS 등의 영향으로 자신을 위한 소비 경향이 나타나는 것도 출산율 저하의 배경”이라고 진단했다.

"딸 전문직 권하고 며느리 남편 내조 기대, 한국 사회 여전히 보수적"

사사노 교수(사진)는 지난 22일 본지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일본 젊은 여성들은 ‘엄마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반면 한국 젊은 여성들은 ‘엄마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제 위기 이후 한국에서 남녀 일자리가 모두 불안해진 것이 저출산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는데 일본과 무엇이 달랐나.

“일본에선 남성 정규직 보호하느라 비정규직 여성이 많아졌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아버지가 돈을 벌고 어머니는 살림하는 형태다. 지금도 맞벌이가 많지만, 여성 일자리는 파트타임이 많다. 가정 경제에서 모자란 부분을 보강하는 정도로 일하는 것을 딸 세대도 받아들이는 경향이다.”

-일본 젊은 여성들의 출산 의사가 최근 증가했다는데.

“자녀를 갖고 싶어 하는 것은 출산을 통해 가정 내 지위를 확보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젊은 여성이 대학을 많이 가고 커리어를 쌓는 건 긍정적인 것 아닌가.

“일본 여성계도 한국을 주목한다. 그런데 한국은 일부 여성에서만 변화가 빨랐고 기존 사회 제도나 다른 세대의 생각 등이 여전히 보수적이다. 엄마 세대가 딸에게 전문직으로 가라면서도 며느리에겐 시댁에 와 음식 장만하라고 하고 남편에 대한 내조를 기대한다.”

-집값 폭등 등 경제적 여건도 원인 아닌가.

“싱가포르는 주택을 국가가 주는 데도 출산율이 낮다. 유교 문화권인 홍콩, 대만도 출산율이 낮은 것을 보면 경제적 요인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한국이 단기간에 출산율 회복이 가능할까.

“어려우니 이민을 받아 함께 사는 사회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또 굳이 대기업을 가지 않고 아파트에 살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도 해봤으면 좋겠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