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 소녀에 술·혼욕 강요"…넷플릭스가 놓친 日마이코의 비극 [도쿄B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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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의 [도쿄B화]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너무 다른 일본. [도쿄B화]는 사건사고ㆍ문화콘텐트 등 색다른 렌즈로 일본의 뒷모습을 비추어보는 중앙일보 도쿄특파원의 연재물입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의 한 장면.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드라마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의 한 장면.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에서 연초부터 방영 중인 일본 드라마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舞妓さんちのまかないさん)'은 아오모리(青森)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마이코(舞妓)가 되기 위해 교토(京都)로 온 두 소녀, 키요와 스미레의 이야기입니다. 일본의 전통 연회 자리에서 춤과 노래, 악기 연주 등을 선보이는 여성을 게이코(芸妓·게이샤)라고 하는데, 마이코는 게이코가 되기 위해 합숙하며 기예를 익히는 보통 15~17세의 '연습생'들을 말하죠. 같은 마음으로 교토에 왔지만 재능이 출중한 스미레와는 달리 예체능에 소질이 없다는 걸 발견하는 키요, 마이코들의 합숙소인 오키야(置屋)에서 요리를 담당하는 '마카나이상'으로 자신의 진짜 꿈을 찾아갑니다.

인기 만화 원작에 영화 '어느 가족'으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 감독이 연출한 이 작품은 무척 귀엽고 따뜻합니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선량하고, 소녀들은 엄격한 생활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죠. 교토의 무형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전통거리 하나마치(花街)의 독특한 분위기에 소박한 음식 이야기가 어우러져 "모처럼 일본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 나왔다"는 호평도 이어집니다.

2018년 7월 일본 교토 기온에서 열린 '기온 축제'에 마이코 분장을 하고 참석한 여성. EPA=연합뉴스

2018년 7월 일본 교토 기온에서 열린 '기온 축제'에 마이코 분장을 하고 참석한 여성. EPA=연합뉴스

"손님과 술 마시기, 혼욕 등 강요당했다"  

한편으론 이 드라마를 계기로 그동안 '전통'이란 이름의 베일에 가려져 있던 마이코라는 존재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게이코는 일본의 여러 도시에 아직 존재하지만, 마이코는 교토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라고 하죠. 주로 의무 교육인 중학교를 마친 여자아이들이 연예기획사와 비슷한 오키야에 소속돼 낮에는 춤과 노래 등을 배우고, 나머지 시간엔 허드렛일을 합니다. 드라마에도 나오듯 마이코는 휴대전화 사용도 금지되고, 철저한 규칙 하에 도제식 교육을 받게 되죠. 계약서도 없이 한 달에 소액의 용돈만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이코 출신의 한 여성이 자신의 트위터에 ″마이코 시절, 음주 등을 강요받기도 했다″며 올린 글. 트위터 캡처

마이코 출신의 한 여성이 자신의 트위터에 ″마이코 시절, 음주 등을 강요받기도 했다″며 올린 글. 트위터 캡처

지난해 6월엔 실제 마이코 출신인 한 여성이 자신의 경험을 트위터에 공개하면서 파문이 일기도 했습니다. 16세였던 2015년부터 2016년 사이 마이코로 일했다는 기리타카 기요하(桐貴清羽)가 "당시 미성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손님과 술 마시기 게임을 하거나, 혼욕을 강요받는 등의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폭로한 겁니다. 이 여성은 손님과 양주 단숨에 마시기 게임을 하는 사진 등을 트위터에 올리며 "이것이 마이코의 실태"라고 적었습니다.

법적으로 마이코나 게이코의 성매매는 금지돼있고, 이들을 금전적으로 지원하는 후원자제도도 사라졌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합니다. 하지만 원칙과는 달리 술자리에서 손님들을 상대하는 일인 만큼 성희롱 등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게 폭로의 내용이었죠. 이 여성의 트윗이 확산되면서 마이코들이 다양한 형태의 불법 행위와 인권 침해에 노출돼있다는 보도가 슈칸분슌(週刊文春) 등 주간지를 중심으로 이어졌습니다.

"닫힌 문을 열어야 할 때" 

고토 시게유키(後藤茂之) 당시 후생노동상은 기자회견에서 "마이코나 게이코가 노동기준법상의 노동자로 간주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일괄적으로는 말할 수 없다"고 확답을 피하면서도 "게이코나 마이코 분들이 적절한 환경 하에서 활동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견해를 밝혔죠. 이어 "18세 미만의 노동자는 법적으로 밤 10시 이후의 심야 영업이나 술자리 등의 업무에 종사시키는 것이 금지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의 한 장면.

넷플릭스 드라마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의 한 장면.

당시 이 문제를 취재했던 슈칸분슌은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마이코와 게이코가 등장하는 연회는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이 즐기는 고급스러운 것이란 이미지가 강하다. 기업 사장이나 대학 관계자, 연예 관계자 등 사회적 지위가 높은 손님이 많아 비밀은 단단히 지켜지고, 마이코들에게는 휴대전화를 갖지 못하게 하는 등 외부와의 접촉 수단을 제한하고 있어 내부 사정은 좀처럼 전해지지 않는다."

교토를 가본 사람이라면 백색 화장에 화려한 기모노 차림을 하고 옛날의 풍광이 그대로 남아있는 거리를 종종걸음으로 걷는 마이코나 게이코를 본 적이 있을 겁니다. 드라마의 인기가 보여주듯 이런 제도가 일본의 소중한 문화 자산이라는 데 동의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교토에는 지금도 일본의 전통춤 5개 유파가 그대로 전해지고 있고, 마이코와 게이코는 이 문화를 후대에 전승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죠.

하지만 전통이란 이름으로 계속돼온 비합리적인 시스템은 현대의 법적·도덕적 규정에 맞게 고쳐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SNS에는 "18세부터 법적 성인으로 인정받게 된만큼, 마이코도 18세 이상만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 등의 의견이 올라옵니다. 마이코의 실태를 폭로한 여성도 이런 바람을 밝혔습니다. "마이코라는 직업을 없애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좋은 방향으로 재건축해 주었으면 한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전통 문화를 지켜갔으면 좋겠다. 지금까지는 닫힌 세상이었지만, 이젠 오픈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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