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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그림·조각부터 베개·장롱까지…행복 바라는 마음 곳곳에 새겼죠

중앙일보

입력

우리는 매년 1월 1일이나 설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주고받죠. 여기서 말하는 복(福)이란 삶에서 누리는 좋고 만족할 만한 행운, 또는 거기서 얻는 행복을 뜻해요. 예나 지금이나 행복은 우리 모두의 관심사죠. 현대를 사는 우리도 이러한 복을 누리길 소망합니다. 특히 옛사람들은 복을 기원하기 위해 행운의 상징을 일상생활 곳곳에 두었는데요. '좋은 상징을 곁에 두어 길한 일이 일어나길 바라는 행위'를 길상(吉祥)이라 해요. 과연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길상을 다뤘을까요. 권도준·정해원 학생기자가 이를 알아보기 위해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을 찾았어요.

관직을 얻는다는 의미의 길상인 잉어 모양의 연적.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관직을 얻는다는 의미의 길상인 잉어 모양의 연적.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이곳에서는 오는 3월 2일까지 길상을 주제로 한 특별전 '그 겨울의 행복'이 열려요. 생활 속에서 바라는 좋은 일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길상 관련 소장품 200여 점을 만날 수 있는 전시죠. 국립민속박물관 전시운영과 이주홍 학예연구사가 소중 학생기자단을 그림·가구·도자기 등 다양한 예술품이 빼곡한 전시실로 안내했어요. 도준 학생기자가 "길상이라는 단어가 처음에는 생소했어요. 그 유래는 무엇인가요?"라고 물었죠. "길상이라는 말 자체는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흘러들어와 쓰이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행복을 바라는 마음 자체는 원래 인간에게 있는 것이죠."

이주홍(맨 왼쪽)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사가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길상의 종류와 각각의 의미에 관해 설명했다.

이주홍(맨 왼쪽)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사가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길상의 종류와 각각의 의미에 관해 설명했다.

그럼 옛사람들이 행복을 바라는 마음을 생활 속에 어떻게 녹여냈는지 살펴볼까요.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별전(別錢)이에요. 조선 후기에 많이 보이는 동전 형태의 장식품인데요. 별전 표면에는 문자·동물·식물·인물 등 각자 고유한 의미를 가진 다양한 무늬와 형태를 새겼죠. 예를 들어 다섯 마리의 박쥐를 뜻하는 한자인 오복(五蝠)은 옛사람들이 행복으로 여겼던 다섯 가지 복인 오복(五福)과 음이 같아 오복을 기원하는 문양으로 쓰였어요. 이렇게 여러 문양을 새긴 별전은 비단으로 묶어 열쇠패로 만들어서 혼수품으로 많이 썼는데, 안방에 장식해 복이 오길 바랐죠.

문자·동물·식물·인물을 길상으로 새긴 별전을 비단으로 묶어 장식한 열쇠패.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문자·동물·식물·인물을 길상으로 새긴 별전을 비단으로 묶어 장식한 열쇠패.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장수(長壽)와 관련된 길상도 살펴볼까요. 이 학예사가 소중 학생기자단을 여러 마리의 고양이가 두 마리의 까치가 함께 있는 그림인 '전 조지운필 유하묘도(傳 趙之耘筆 柳下猫圖)' 앞으로 이끌었어요. "장수(長壽)와 부부의 해로(偕老)를 기원하는 그림이에요. 고양이의 한자인 묘(猫)와 70세 노인을 일컫는 모(耄)의 중국어 발음이 ‘마오’로 같아서 고양이가 장수를 의미하게 됐죠. 또 까치는 예로부터 기쁜 소식을 전해준다 하여 희작(喜鵲)이라고 불렸어요. 그림에 표현된 한 쌍의 까치는 부부가 해로하여 기쁨을 누린다는 뜻이에요."

오래 사는 열가지를 소재로 불로장생에 대한 꿈을 담은 '십장생도'.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오래 사는 열가지를 소재로 불로장생에 대한 꿈을 담은 '십장생도'.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해원 학생기자가 "십장생도 장수를 상징하는 길상이라고 들었어요"라며 '전 조지운필 유하묘도' 근처에 있던 '십장생도(十長生圖)'를 가리켰어요. "맞아요. 십장생도는 오래 사는 열 가지를 소재로 불로장생(不老長生)에 대한 꿈과 희망을 표현한 대표적인 길상화예요. 해·달·구름·산·물·돌·소나무·대나무·영지·거북·학·사슴·복숭아 등 열세 가지 중에서 조합해 표현해요." 동물과 식물 외에 글자도 길상으로 활용돼요. 목숨 수(壽)자와 복 복(福)자를 자수로 수놓아 큰 복과 장수를 기원한 '자수 수복문자도 병풍'이 그 예죠.

딱딱한 껍질을 가진 게를 그려 장원급제를 뜻하는 갑등을 의미하는 '해도'.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딱딱한 껍질을 가진 게를 그려 장원급제를 뜻하는 갑등을 의미하는 '해도'.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출세하여 이름을 세상에 떨치는 입신양명(立身揚名)을 기원하는 길상도 있어요. 전시실 한켠에는 여러 마리의 게가 갈대 사이에서 움직이는 모습이 담긴 '해도(蟹圖)'가 걸려있었어요. "갈대와 게를 그린 그림은 장원급제하여 출세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어요. 게는 딱딱한 등갑을 가졌기 때문에 갑등(甲等), 즉 장원급제를 뜻해요. 특히 두 마리의 게는 과거시험인 소과와 대과에서 급제하는 걸 의미하죠."

원숭이 모자와 벌을 그려 출세를 의미하는 '봉후도'.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원숭이 모자와 벌을 그려 출세를 의미하는 '봉후도'.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등나무 위에 앉은 원숭이 모자와 벌을 그린 '봉후도(封侯圖)'도 출세와 관련 있는 길상이에요. '봉후도'를 살펴보던 소중 학생기자단이 "모기인 줄 알았는데 벌이었네요"라며 까르르 웃었습니다. 벌과 원숭이가 출세를 뜻하는 길상인 이유는 발음의 유사성 때문이에요. 벌과 원숭이를 한자로 쓰면 봉후(蜂猴)인데, 제후(관직)에 봉해진다는 뜻의 봉후(封侯)와 발음이 같죠. 귀여운 동물들이 그려진 그림에 이렇게 다양한 의미가 담겨있는 줄은 몰랐네요.

화목한 부부와 가정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긴 길상도 있어요. 사극이나 시대극에서 전통 혼례식 장면을 보면 나무로 만든 기러기가 등장하죠. 기러기는 암컷과 수컷이 사이가 좋다고 알려져 부부금슬을 상징해요. 그래서 부부가 되어 한평생을 사이좋게 지내고 즐겁게 함께 늙는다는 의미의 백년해로(百年偕老)를 맹세하기 위해 혼례에 사용합니다. 또 서로 짝을 이뤄 정답게 노니는 한 쌍의 나비와 새도 화목하고 평안한 관계를 유지하는 부부를 뜻해요.

씨앗이 많은 포도를 그려 다산을 기원하는 길상인 '포도도'.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씨앗이 많은 포도를 그려 다산을 기원하는 길상인 '포도도'.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남녀가 혼례를 올리고 부부가 되면 자식을 낳길 바라죠. 농경시대에는 많은 자녀를 두는 게 집안에 큰 복이었습니다. 무사히 많은 자녀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길상들도 전시됐어요. "포도·석류·오이 등 많은 씨앗과 열매를 가진 식물이 아이를 많이 낳는 다산(多産)을 기원하는 길상으로 많이 쓰여요." 이 학예사가 탐스러운 포도송이가 그려진 '포도도(葡萄圖)'를 가리켰죠. 그 옆에는 고슴도치가 오이를 이고 달아나는 모습을 그린 '자위부과도(刺蝟負瓜圖)'도 걸려있었어요. 이 학예사의 설명처럼 오이는 씨가 많기 때문에, 고슴도치 또한 많은 가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러 명의 아이를 낳고 싶다는 소망을 반영합니다.

표면뿐 아니라, 문 안쪽 면에도 산수화·백동자도·꽃과 나비·새 등 층층이 다른 길상으로 장식한 삼층 자개농.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표면뿐 아니라, 문 안쪽 면에도 산수화·백동자도·꽃과 나비·새 등 층층이 다른 길상으로 장식한 삼층 자개농.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지금까지 장수·출세·부부금슬·다산과 관련된 길상이 사용된 그림·조각을 주로 살펴봤는데요. 이러한 예술품 외에도 길상은 옛사람들의 생활용품 곳곳에 사용됐어요. 도준·해원 학생기자는 광채가 나는 자개 조각을 표면에 여러 모양으로 박아넣고 붙인 나전칠기로 장식한 가구들이 모여있는 전시실로 걸음을 옮겼어요. 겉면을 다양한 무늬로 장식한 삼층 자개장롱이 눈에 들어왔죠. "이건 겉면은 나전칠기, 안쪽 면은 산수화, '백동자도', 꽃과 나비·새 등으로 장식한 '삼층 자개농'이에요. 여기 그려진 문양들은 각자 고유한 의미가 있어요. 예를 들어 많은 아이가 그려진 '백동자도'는 다산을 기원한다는 뜻이죠. 이렇게 자개농 안쪽에 그림이 그려진 형태는 흔하지는 않아요."

이외에도 관직을 얻는다는 의미를 가진 잉어 모양으로 만든 연적, 부부의 앞날을 축하하는 의미를 담은 글귀와 십장생·모란·연꽃·봉황 등의 무늬를 수놓은 활옷(혼례의상), 부부화합을 의미하는 원앙·나비를 새긴 베개 등 일상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생활용품에 길상이 장식돼 있었죠.

행복을 기원하는 행위는 길상 외에 여러 형태가 있다. 새가 점괘를 뽑아 주는 ‘새점 치기’를 체험한 소중 학생기자단.

행복을 기원하는 행위는 길상 외에 여러 형태가 있다. 새가 점괘를 뽑아 주는 ‘새점 치기’를 체험한 소중 학생기자단.

전시품을 찬찬히 살피던 도준 학생기자가 "신분에 따라 길상 문양을 사용하는데 제한이 있었나요?"라고 말했어요. "아주 날카로운 질문입니다. 하하. 기본적으로 길상을 포함해 문양이 들어간 물건은 장인의 손길이 필요하기 때문에 귀했고, 가격도 비쌌어요. 그래서 신분이 높고 부유한 사람들이 문양이 들어간 물건을 주로 썼어요. 하지만 조선 후기에 이르면 부를 축적한 평민이 많아지면서 문양이 들어간 물건도 전보다 많이 쓰이게 됐죠."

"다른 문화권에도 우리나라처럼 길상 개념이 있나요?" 이 학예사의 설명을 듣던 해원 학생기자가 궁금해했어요. "물론이죠. 좋고 행복한 일을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갖고 있으니까요." 마지막 전시실로 발걸음을 옮기자 바로 중국·일본·인도·러시아 등 여러 나라에서 사용하는 길상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일본에서 복을 부른다는 의미로 여겨지는 고양이 인형 장식품, 중국에서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복을 가져온다는 의미로 집·상점에 거는 홍등, 인도에서 행운과 부를 상징하는 코끼리 모양으로 만든 장식품, 큰 인형 속에서 작은 인형이 계속 나오게 만들어 다산·다복·행운을 의미하는 러시아 인형 장식품 등이 그 주인공입니다.

권도준(오른쪽)·정해원 학생기자가 국립민속박물관 길상 특별전 '그 겨울의 행복'을 찾아 길상에 대해 알아봤다. 돌 쌓기도 좋은 일을 기원하는 행위 중 하나다.

권도준(오른쪽)·정해원 학생기자가 국립민속박물관 길상 특별전 '그 겨울의 행복'을 찾아 길상에 대해 알아봤다. 돌 쌓기도 좋은 일을 기원하는 행위 중 하나다.

이와 함께 한 주류 브랜드의 마스코트인 두꺼비 모양의 캐릭터 상품과 빨간 돼지 저금통도 볼 수 있었는데요. 두꺼비는 재물을 불러온다는 의미이며, 복(福)자를 새긴 돼지는 복과 함께 부(富)를 상징하죠. 현대를 사는 우리의 일상 곳곳에도 길상이 녹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어요. 이렇듯 삶에서 누릴 수 있는 여러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은 시대를 불문하고 인류가 공통으로 소망하는 것이죠. 소중 독자들도 새해를 맞아 자신의 소망을 담은 길상을 마음 한쪽에 품어보는 건 어떨까요. 여러분에게 새해 다짐을 상기시킬 좋은 매개가 될 거예요.

길상 특별전 '그 겨울의 행복'
장소: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1
기간: 3월 2일(목)까지
관람 시간: 1·2월 오전 9시~오후 5시, 3월 오전 9시~오후 6시
휴관일: 설 당일 1월 22일(일)
입장료: 무료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길상 특별전 ‘그 겨울의 행복’을 취재하기 위해 국립민속박물관을 방문했어요. 길상이라는 단어가 생소해서 내용이 어려울 것 같았는데, 이주홍 학예사님의 설명을 들으니 쉽게 이해가 됐어요. 길상은 좋은 일이 일어날 징조를 말해요. 옛날부터 장수·출세·다산·화목·부를 기원하기 위해 오복과 관련된 문양들을 사용했는데, 저는 여러 무늬가 있었던 별전 열쇠패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고양이와 까치가 함께 있던 '전 조지운필 유하묘도'도 기억에 남는데, 고양이가 장수를 의미하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전시실에는 현대에서 행복을 기원하는 물건들도 볼 수 있었는데, 과거부터 현대의 길상에 관한 물건들을 보니 꼭 행복이 찾아올 것 같았어요. 저에게 이번 취재는 한 해를 시작하며 행복을 기원하게 된 특별한 경험이었죠.

권도준(서울 구룡초 4) 학생기자

국립민속박물관 '그 겨울의 행복'은 코로나19 때문에 지친 현대인들을 위해 기획된 길상 특별전이에요. 현대 사람들이 모두 행복을 바라는 것처럼 우리 조상들도 지금 시대 못지않게 행복을 빌었대요. 취재 전에는 길상이라는 단어가 낯설었는데, 전시회 관람 및 이주홍 학예사님과의 질의응답을 통해 길상의 의미를 되짚어 보고 옛사람들이 생각한 길상의 의미에 대해 정확하게 알 수 있었어요. 우리 조상들은 인생에서 다섯 가지 복인 오복을 바랐어요.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서는 십장생이라고 하는 오래 사는 생물들의 그림을 예술품이나 생활용품 곳곳에 새겨두었대요. 전시된 옛사람들의 물건을 보고 얼마나 그들이 장수를 바랬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복(福)자를 한 땀 한 땀 자수로 써넣은 '자수 수복문자도 병풍' 또한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마지막 전시실에서는 현대인의 행복을 상징하는 물건들을 봤어요. 소중 친구들도 길상 특별전 '그 겨울의 행복'을 관람하면서 가까이 있지만 멀게만 느껴지는 ‘행복’에 대한 생각에 잠겨 보시길 바랍니다.

정해원(서울 중대초 4)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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