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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설렁탕집, 엄빠 소개팅 카페도…우리동네 '미래유산' [소년중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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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화합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옛것이 없어지며 새로운 것들로 채워지죠. 하루아침에 추억이 담긴 장소가 사라지기도 하는데요. 현재 우리에게 가치가 있는 것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미래까지 남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언젠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문화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생긴 제도가 바로 '미래유산'입니다. 서울시가 서울시민의 삶을 담고 있는 근현대 유산이 훼손되기 전에 미래세대에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선정해 시민들과 그 가치를 공유하고자 2013년부터 시작했죠. 이렇게 우리 주변에는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중요한 의미를 가져 미래세대에 전해줄 만한 유산들이 존재합니다. 설날 연휴 혹은 아직 남은 겨울방학을 이용해 우리 곁에 오래도록 자리 잡고 있는 미래유산을 알아보고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관련기사] [소년중앙] 함께 울고 웃으며 쌓아온 기억·추억·감성의 가치 미래로 전해요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33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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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대학로 일대 미래유산 탐방

소중 학생기자단은 젊음과 문화‧예술의 역사적인 장소를 만날 수 있는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인근의 미래유산을 직접 탐방해보기로 했습니다. 안지영 역사해설가의 도움을 받아 미래유산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기로 했죠. “우리나라는 수백 년 된 궁궐 같이 오래된 문화재들이 많아서 근현대 문화유산을 좀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근현대 문화유산들이 보존이 잘 안 되다 보니 이걸 지켜야 하지 않냐는 의견이 많아졌고 서울미래유산이 생겼죠. 이후 다른 지역으로 확산 중이에요.”

김채량·박민아·오지효(왼쪽부터) 학생기자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인근의 미래유산을 탐방하며 미래세대에게 전달한 만한 문화유산에 대해 생각해봤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의인 한소제가 거주했던 가옥은 종로구청이 매입해 혜화동 주민센터로 사용 중이다.

김채량·박민아·오지효(왼쪽부터) 학생기자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인근의 미래유산을 탐방하며 미래세대에게 전달한 만한 문화유산에 대해 생각해봤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의인 한소제가 거주했던 가옥은 종로구청이 매입해 혜화동 주민센터로 사용 중이다.

안 해설가가 서울미래유산의 가치와 특징에 관해 설명했습니다. “일반적인 문화유산과 선정기준이 달라요. 물리적인 연대가 오래되었거나, 단 하나밖에 없거나, 특정 시대를 대표하는 중요도를 반드시 갖거나 하지는 않죠. 시간의 길이가 아닌 공유하는 기억의 무게로 그 가치를 결정합니다. 처음 영업을 개시한 설렁탕집, 가장 오래된 원두커피집,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머문 동네 서점과 같이 서울 시민의 추억이 담긴 곳들이 서울미래유산이 되죠. 그렇기에 시민이 직접 서울미래유산을 제안할 수 있다는 게 특징입니다.”

세월이 느껴지는 학림다방 내부 인테리어를 보고 있으면 1960~70년대로 시간여행을 온 느낌을 준다.

세월이 느껴지는 학림다방 내부 인테리어를 보고 있으면 1960~70년대로 시간여행을 온 느낌을 준다.

안 해설가는 대학로 일대는 서울미래유산이 따닥따닥 붙어 있는 곳 중에 하나고 중간중간 문화 유적지도 볼 수 있어 가족과 함께 당일 코스로 구경하기 좋은 곳이라고 추천했죠. 처음으로 만나볼 미래유산은 1956년 개업해 한자리를 지켜온 학림다방이에요. 삐걱삐걱 소리를 내는 나무 계단을 밟고 2층으로 올라가 문을 열면 빈티지한 분위기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세월이 느껴지는 소파와 테이블 등 내부 인테리어를 보고 있자니 60~70년대로 시간여행을 온 느낌을 주죠.

서울미래유산 학림다방을 방문한 소중 학생기자단이 그 시절 학림다방의 얘기를 들으며 우리 곁을 꾸준히 지킨 미래유산에 대해 알아봤다.

서울미래유산 학림다방을 방문한 소중 학생기자단이 그 시절 학림다방의 얘기를 들으며 우리 곁을 꾸준히 지킨 미래유산에 대해 알아봤다.

예술계 인사들의 사랑방이자 1980년대 대표적 공안 사건인 학림사건의 시발점이 된 학림다방.

예술계 인사들의 사랑방이자 1980년대 대표적 공안 사건인 학림사건의 시발점이 된 학림다방.

‘별에서 온 그대’ 등 인기 드라마 촬영지이자 레트로한 가게로 매스컴에 많이 나온 학림다방은 중년층뿐만 아니라 젊은 층에도 인기 있는 장소입니다. 평일 낮인데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찾죠.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소중 학생기자단도 자리에 앉을 수 있었어요. 대표 메뉴는 커피 위에 부드러운 휘핑크림을 얹은 ‘비엔나커피’이지만 학생기자단은 훗날을 기약하며 셰이크를 주문했죠. 학림다방은 음악‧미술‧문학 등 예술계 인사들이 모여 소통하던 사랑방 역할을 했고, 1981년 민주화운동단체인 전국민주학생연맹이 첫 회합을 가진 장소로 1980년대의 대표적 공안사건인 이른바 ‘학림사건’의 시발점이기도 해요. 이청준‧김승옥‧김지하‧황지우‧이덕화‧김민기 등 수많은 작가와 연극인‧화가‧음악인들이 젊은 시절 꿈을 키우던 곳입니다. 시인 김지하는 문단 데뷔 당시 자신의 주소로 학림다방을 썼을 정도죠.

서울미래유산 학림다방을 방문한 박민아(왼쪽)·오지효·김채량 학생기자가 그 시절 학림다방의 얘기를 들으며 우리 곁을 꾸준히 지킨 미래유산에 대해 알아봤다.

서울미래유산 학림다방을 방문한 박민아(왼쪽)·오지효·김채량 학생기자가 그 시절 학림다방의 얘기를 들으며 우리 곁을 꾸준히 지킨 미래유산에 대해 알아봤다.

대표 메뉴는 커피 위에 부드러운 휘핑크림을 얹은 ‘비엔나커피’이지만 소중 학생기자단은 훗날을 기약하며 셰이크를 주문했다.

대표 메뉴는 커피 위에 부드러운 휘핑크림을 얹은 ‘비엔나커피’이지만 소중 학생기자단은 훗날을 기약하며 셰이크를 주문했다.

“이렇게 오래된 카페 중에 지금도 이렇게 활발하게 운영되는 데가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예전에 서울대학교 캠퍼스가 있어서 이 동네를 대학로라고 이름 붙였죠. 서울대학교 강의실이 스물네 개인데 ‘문리대학 제25강의실’로 불릴 만큼 학생들이 많이 찾았어요.” 서울대학교 문리대학의 옛 축제인 ‘학림제’도 ‘학림다방’의 이름에서 유래됐죠. 세월이 흘러 서울대학교가 관악구로 이전한 뒤, 개발 바람에 막걸릿집이 호프집으로 바뀌고 찻집 대신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이 들어섰지만, 학림다방은 옛 모습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1946년 경성제대 의학부와 경성의전이 통합·설립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으로 의료근대화의 산실인 서울대학병원.

1946년 경성제대 의학부와 경성의전이 통합·설립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으로 의료근대화의 산실인 서울대학병원.

다음으로 향한 미래유산은 서울대학병원이에요. 대한의원에 뿌리를 둔 곳이죠. 1907년 정부는 광제원을 계승하고 의학교 및 부속병원, 대한국적십자병원을 하나로 통합하여 대한의원을 개원했어요. 1910년 일제강점으로 총독부의원이 되었다가, 1926년 그 부속기관이던 의학강습소가 경성제국대학에 편입되면서 대학병원으로 개편됐고, 경성제대 의학부와 경성의전이 광복 이후 1946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으로 통합되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이 되죠. 1954년 서울대학교병원에 주둔 중이던 미군 측으로부터 병원을 인계받고 정식 개원했어요. “의학발전을 선도해 온 의료 근대화의 산실이며 우리나라 의학 역사의 상징이에요.”

서울대학병원 주요 건물은 지상 2층의 대한의원 건물입니다. 대한의원 본관은 1907년 3월 착공돼 1908년 11월 준공되었으며 적벽돌과 화강암을 주요 자재로 사용해 정면과 후면이 각각 완전 대칭으로 건축됐죠. 고전주의 양식에 충실하고 정교한 벽돌조와 섬세한 장식수법으로 그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받아요.

마로니에공원은 대학생들이 사회 부조리에 대한 개혁을 요구하는 장소로서 구심점이 되었고, 대학 캠퍼스로서 낭만과 추억이 담긴 장소이기도 하다.

마로니에공원은 대학생들이 사회 부조리에 대한 개혁을 요구하는 장소로서 구심점이 되었고, 대학 캠퍼스로서 낭만과 추억이 담긴 장소이기도 하다.

서울대학병원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또 다른 미래유산인 마로니에공원입니다. 서울대학교가 혜화동에 있을 때 정원으로 사용하던 곳으로 마로니에 나무 세 그루가 있었던 것에서 유래하여 ‘마로니에공원’이란 이름이 되었죠. 마로니에공원은 서울대학교라는 국립대학이 설립되면서 교육 환경 조성과 동시에 대학생들이 사회 부조리에 대한 개혁을 요구하는 장소로서 구심점이 되었고, 대학 캠퍼스로서의 낭만과 추억이 담긴 장소이기도 합니다.

마로니에공원 광장 중앙에 있는 ‘서울대학교 유지기념비’는 과거 서울대의 본부·문리과대학·법과대학이 있었던 자리임을 알려준다.

마로니에공원 광장 중앙에 있는 ‘서울대학교 유지기념비’는 과거 서울대의 본부·문리과대학·법과대학이 있었던 자리임을 알려준다.

“조선시대 지명을 보면 OO방 이런 게 많이 나와요. 여기 동네 이름은 성균관대학교 때문에 배움을 숭상하는 지역이라고 숭교방이라고 했어요. 그 숭교방에서 살짝 동쪽이 여긴데 그래서 동숭동이라고 이름이 붙여졌죠. 서울의 중심이니까 중요 인물들이 많이 살았겠죠. 조선시대 시인인 고산 윤선도 생가가 근처라 시비에 ‘고산 윤선도 생가의 터’라고 새겨져 있어요.”

마로니에공원을 둘러보면 붉은 벽돌 건축물을 볼 수 있습니다. 1975년 서울대 캠퍼스가 관악구로 이전하자, 문예진흥원이 서울대 본부 건물을 사용하게 되었고, 마로니에공원에는 1979년 5월 전시공간인 아르코 미술관, 1981년 4월 아르코 예술극장 등이 설립됩니다. 아르코 예술극장의 개관으로 명동‧광화문 등 시내 중심가에 있던 공연장들이 동숭동으로 이동, 현재 동숭동 일대에는 97개의 극장이 들어서 대한민국 공연예술의 중심지로 성장했어요.

아르코 예술극장의 개관으로 명동·광화문 등에 있던 공연장들이 동숭동으로 이동하며 대한민국 공연예술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아르코 예술극장의 개관으로 명동·광화문 등에 있던 공연장들이 동숭동으로 이동하며 대한민국 공연예술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두 건물은 마로니에공원을 중심으로 예술가의 집과 함께 ‘ㄷ’자 구도로 배치되어 있어요. 둘 다 대학로의 랜드마크가 되는 건축물로 우리나라 대표적인 근대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했죠. “벽돌로 건축하는 걸 굉장히 즐겼고, 아르코 미술관의 경우 벽돌이라는 소재로 입체적으로 보이게 만들었죠. 평소 ‘건축은 빛과 벽돌이 짓는 시다’라고 얘기했는데 햇빛의 변화와 그림자에 따라서 건물의 외관이 변하는 것처럼 보여주려고 저렇게 튀어나온 벽돌을 만들었다고 해요. 그는 담쟁이덩굴을 좋아해서 여름에는 여기에 담쟁이덩굴이 다 올라오게 했어요.”

소중 학생기자단이 안지영(왼쪽) 역사해설가의 도움을 받아 미래유산에 대해 제대로 알아봤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안지영(왼쪽) 역사해설가의 도움을 받아 미래유산에 대해 제대로 알아봤다.

김수근 건축가에 대한 평은 조금 엇갈리기도 하는데요. 일본에서 유학해 초창기 건물들은 너무 일본풍이라며 비판받았고, 독재정권 시기에 활동하다 보니까 남영동 대공분실처럼 고문을 하는 건축물을 만들어 정권에 편입한 건축가라며 욕을 먹기도 했죠. “안 좋은 건물을 짓고 스스로도 약간 부채감을 가지고 있었는지 대학로에는 플러스가 되는 건물을 만들었죠.” 젊은 학생들이나 예술가들이 모이는 장소니까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게 1층은 광장처럼 아래를 통과할 수 있고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형태로 설계했어요. 대학로에는 이런 공공의 목적을 실천한 김수근 건축가의 또 다른 건축 미래유산 ‘공공일호(구 샘터사옥)’도 있습니다.

월간지 『샘터』의 사옥 의뢰를 맡은 김수근은 빈 장소에 온전히 건축가의 상상으로 여러 개의 문을 만들고, 건물 앞뒤의 길을 연결하면서 그사이에 조그마한 마당이 있는 지하 2층, 지상 4층의 붉은 벽돌 건물을 1979년 준공하죠. 기업 사옥으로 지어졌지만, 공공영역에 대한 배려가 담겨 있는 공간으로도 유명했는데 1~2층까지가 필로티(piloti) 형식으로 비어 있는 광장 역할을 했죠. 대로변과 이면도로를 이어 아무나 지나갈 수 있었고,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갑작스럽게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 활용은 대학로를 찾은 모두를 위해 열린 공간이 되었습니다. 2018년 공공그라운드 회사에 인수된 이후에도 ‘중앙광장을 열어놓고 시민들에게 개방한다’는 가치가 계속 유지되어 시민과 소통하는 장소로 이어져 오고 있어요.

1953년 개업 이래 같은 장소에서 계속 운영 중인 동양서림은 폐업 위기도 이겨내고 독립서점 열풍을 이끌었다.

1953년 개업 이래 같은 장소에서 계속 운영 중인 동양서림은 폐업 위기도 이겨내고 독립서점 열풍을 이끌었다.

혜화동로터리에 있는 ‘동양서림’을 찾아가자 서점 앞에 서울미래유산 현판이 붙여져 있는 게 보였죠. “이 마크는 가게 주인이 원하면 부착하고, 원하지 않으면 안 붙여요.” 1953년 9월 1일, 역사학자 이병도 박사의 맏딸이자 장욱진 화백의 부인인 이순경씨가 현 위치에서 동양서림을 개업했죠. 그는 1968년 책방경영자로서 최초로 출판유공자표창을 받았는데요. 당시 규모에 비해 종업원이 많고 종업원들을 모두 대학‧고교 등에 보내 공부시키기로 유명했죠. 점원이었던 최주보씨가 1980년 동양서림을 인수해 2대 대표가 되었고, 2000년에는 그의 딸이 사업자가 되어 함께 운영하다가 2007년부터 현재까지 3대 대표가 직접 운영하고 있죠.

미래유산 ‘동양서림’을 방문한 소중 학생기자단이 옛 서점에서 현재 트렌드에 맞춰 변화한 모습을 살펴봤다.

미래유산 ‘동양서림’을 방문한 소중 학생기자단이 옛 서점에서 현재 트렌드에 맞춰 변화한 모습을 살펴봤다.

“폐업하려고 했을 때 혜화동 주민들이 서점이 없어지면 안 된다고 얘기를 해서 계속 유지하다가 리모델링을 하고 작은 서점을 부흥시키는 캠페인이 진행되며 여러 곳에 소개되고 지금은 꾸준하게 사람들이 찾아오죠.” 작가들과 북 토크를 진행한다든지 단순히 책만 파는 곳이 아니라 문화 공간으로도 활용이 되고, 독립 서점 열풍을 이끈 곳입니다. “옛날 서점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지금 트렌드에 맞춰서 운영되는 곳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박민아·오지효·김채량(왼쪽부터) 학생기자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인근의 미래유산을 탐방하며 미래세대에게 전달한 만한 문화유산에 대해 생각해봤다.

박민아·오지효·김채량(왼쪽부터) 학생기자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인근의 미래유산을 탐방하며 미래세대에게 전달한 만한 문화유산에 대해 생각해봤다.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은 성균관과 우암 송시열 집터, 장면 가옥 등 유서 깊은 장소가 많은 동네입니다. 이곳에는 소설가 한무숙이 40년간 거주하며 삶의 흔적을 남긴 미래유산 한무숙 문학관이 있어요. 한무숙은 처음에 화가를 지망하여 일본인 아라이(荒井筏久代)에게 사사하였으나 결혼 후 소설로 전향, 1942년 잡지 ‘신시대’에 장편소설 『등불 드는 여인』이 당선되어 등단하고, 광복 후 1948년 ‘국제신보’에 장편소설 『역사는 흐른다』가 당선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죠.

한무숙 문학관은 소설가 한무숙이 40년간 거주하며 삶의 흔적을 남긴 곳으로 그의 자취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장소다. 대문을 밀고 들어가면 예쁜 정원이 눈에 띈다.

한무숙 문학관은 소설가 한무숙이 40년간 거주하며 삶의 흔적을 남긴 곳으로 그의 자취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장소다. 대문을 밀고 들어가면 예쁜 정원이 눈에 띈다.

한무숙 문학관은 소설가 한무숙의 창작 산실이자 문학적 자취를 되새겨볼 수 있는 곳이다.

한무숙 문학관은 소설가 한무숙의 창작 산실이자 문학적 자취를 되새겨볼 수 있는 곳이다.

93년 타계 후 집을 문학관으로 개조했고, 현재 한무숙의 아들 부부가 기거하며 관리합니다. 인터넷 사전 예약을 하거나 당일 전화로 방문 여부를 확인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어요. 소설가 한무숙의 창작 산실이자 문학적 자취를 되새겨볼 수 있는 곳입니다. 골목길로 들어서자 밝은색의 담장과 기와지붕이 눈에 띄는 한옥이 보였어요. 대문을 밀고 안으로 발을 들이자 예쁜 정원이 반갑게 맞아줍니다. 제1전시실에는 한무숙 작가가 쓴 작품들과 지인들로부터 받은 편지 등을 볼 수 있죠. 현재는 ‘문학과 예술이 있는 공간’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어요.

제2전시실은 작가가 생전에 국내외 문인과 많은 손님을 대접하던 응접실을 재현한 곳으로 붉은색 카펫 위로 서양식 테이블과 의자, 서까래가 드러난 한옥 지붕이 조화를 이룬다.

제2전시실은 작가가 생전에 국내외 문인과 많은 손님을 대접하던 응접실을 재현한 곳으로 붉은색 카펫 위로 서양식 테이블과 의자, 서까래가 드러난 한옥 지붕이 조화를 이룬다.

집필실에는 한 작가가 사용하던 책상·필기구·생활용품과 함께 전문자료·문학서적들이 빽빽하게 꽂힌 책장이 양옆에 나란히 놓였다.

집필실에는 한 작가가 사용하던 책상·필기구·생활용품과 함께 전문자료·문학서적들이 빽빽하게 꽂힌 책장이 양옆에 나란히 놓였다.

박현숙 학예사는 “소설가지만 화가이기도 했다는 걸 부각하기 위해 전시를 했다”고 밝혔죠. 제2전시실은 작가가 생전에 국내외 문인과 명사 등 많은 손님을 대접하던 응접실을 재현한 곳으로 붉은색 카펫 위로 서양식 테이블과 의자, 서까래가 드러난 한옥 지붕이 조화를 이뤄요. 안채는 한옥에 양옥으로 된 3층짜리 건물을 올린 특이한 형태였죠. 거실 한쪽에는 2층으로 연결된 나선형 계단이 있고 이곳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한무숙 작가의 집필실이 나와요. “저희 문학관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에요. 양쪽 책장에는 집필에 필요한 전문자료, 문학 서적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고 사용하시던 책상과 필기구, 일상생활용품이 전시되어 있어요.”

서울미래유산을 탐방하다 보면 서울미래유산으로 등록된 문화유산임을 나타내기 위한 현판을 만날 수 있다.

서울미래유산을 탐방하다 보면 서울미래유산으로 등록된 문화유산임을 나타내기 위한 현판을 만날 수 있다.

소중 학생기자단은 젊음과 문화·예술의 역사적인 장소를 만날 수 있는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인근의 미래유산을 탐방하며 미래세대에게 전달한 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에 대해 직접 생각해봤다.

소중 학생기자단은 젊음과 문화·예술의 역사적인 장소를 만날 수 있는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인근의 미래유산을 탐방하며 미래세대에게 전달한 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에 대해 직접 생각해봤다.

대학로에서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혜화동 주민센터(구 한소제 가옥)입니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수도 서울의 심장부인 종로의 특성을 살려 한옥에 입주한 첫 주민센터죠.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의인 한소제가 거주했던 한옥이에요. 한소제는 일본 도쿄여자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전주와 신의주, 서울 등지에서 의료활동을 펼쳤으며, 1946년 한국걸스카우트의 전신인 대한소녀단의 창설을 주도한 인물입니다. 한소제는 대한부인회장, 대한YWCA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한 후 1961년 미국으로 이주했죠. “2005년 종로구청이 한소제 구옥을 매입, 리모델링 후 혜화동 주민센터로 사용 중이에요.”

광장시장 2층에 위치한 한복 주단부에서는 다양한 원단과 한복들을 만나볼 수 있다.

광장시장 2층에 위치한 한복 주단부에서는 다양한 원단과 한복들을 만나볼 수 있다.

소중 학생기자단은 미래유산 탐방의 마지막 코스로 대학로에서 멀지 않은 서울 종로구 예지동에 있는 광장시장을 방문했어요. 1905년 7월 설립된 ‘광장주식회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시장 경영회사로, 조선 후기 서울의 3대 시장 중 하나인 이현시장에 뿌리를 둔 오랜 역사와 시민들의 삶의 모습이 담긴 미래유산입니다. 자본과 운영진, 상인 등이 대부분 조선인으로 이루어진 주식회사로서 의미를 가지며, 개항기 외국 상인의 침투로 조선인 상권이 위기에 처하자 이현 일대 상인들이 모여 1905년 7월 10일경 ‘광장회사’를 설립하고 오늘날 예지동 4번지에 광장시장을 건립했죠.

서울미래유산 ‘광장시장’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한복과 포목 전문 도매시장이다.

서울미래유산 ‘광장시장’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한복과 포목 전문 도매시장이다.

빈대떡·호떡·김밥 등 여러 음식을 파는 먹자골목도 유명해 시장 곳곳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빈대떡·호떡·김밥 등 여러 음식을 파는 먹자골목도 유명해 시장 곳곳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광장시장은 일제 강점기를 거쳐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한복과 포목 전문 도매시장인데요. “우리나라 전체 한복 시장의 원단 70% 정도가 여기서 다 공급해요. 한복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얼마 남지 않은 곳 중에 하나고, 결혼할 때 한복 맞추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이 아직 많죠.” 2층에 위치한 한복 주단부에서는 다양한 원단과 한복들을 만나볼 수 있어요. 빈대떡‧호떡‧김밥 등 수많은 음식을 팔고 있는 먹자골목도 유명합니다. 한복을 살펴보고, 빈대떡 냄새를 정신없이 맡다 보니 설 명절 기분이 제대로 났죠.

미래유산 Q&A

탐방을 끝낸 소중 학생기자단이 안지영 역사해설가에게 미래유산에 대해 궁금한 점을 질문했습니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안지영(오른쪽) 역사해설가에게 미래유산에 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안지영(오른쪽) 역사해설가에게 미래유산에 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채량미래유산으로 선정되면 정부 지원이나 보호를 받을 수 있나요.
일반적인 문화재와 달리 선정되더라도 강제적인 규제를 받지 않기에 금전적인 지원 역시 받을 수 없습니다. 다만, 서울시에서 소규모 수리나 환경개선 정도는 지원해요. 미래유산의 훼손 정도와 공공자산으로서의 활용가치 등을 판단해 대상을 선정하며, 2018년부터 68건(중복 포함) 이상의 미래유산을 지원했죠. 직접적인 지원 혜택이 있는 건 아니지만, 서울시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서울미래유산을 알리는 홍보사업을 진행해 미래유산의 인지도를 높이기 때문에, 개발을 막거나 보존의 필요성을 인지시킬 수 있다는 효과가 있습니다.

민아외국에도 미래유산과 비슷한 사례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서울미래유산처럼 대상이 다양하지는 않지만, 외국에도 문화유산의 가치를 시민들에게 알려줌으로써 시민들의 관심과 자발적인 보전을 유도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프랑스의 20세기 유산 인증제도, 일본의 근대화 산업유산 인정제도, 영국의 블루 플라크 등이 대표적이죠.

지효미래유산 중 미래세대에 꼭 알려야 할 곳은 어디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각각 갖는 가치가 다양해 하나만 꼽기가 참 어렵습니다만, 투어 프로그램으로 시민들과 함께 미래유산을 찾아보며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장소들이 있습니다. 바로 ‘업사이클링’에 관련된 미래유산이죠. 용도가 다한 낡은 시설이나 건물을 활용하는 것이 업사이클인데, 서울미래유산 중에는 재생공간이면서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의미 있는 메시지를 발산하는 장소들이 있어요. 특히 폐정수장을 친환경 생태공원으로 꾸민 선유도공원과 1970년대 석유를 비축하던 마포의 석유비축기지가 그렇습니다. 화학약품 냄새로 가득했던 이 황량한 장소가 말끔한 자연‧문화공간으로 바뀐 모습이 참 인상적입니다. 또, 미래세대에게 초록의 환경을 남겨주고자 노력한 지금 우리의 마음을 미래세대에게 전해주고 싶기도 하고요.

안지영 역사해설가는 학생들이 미래유산을 찾고 알리는 행위 자체가 문화유산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라고 말했다.

안지영 역사해설가는 학생들이 미래유산을 찾고 알리는 행위 자체가 문화유산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라고 말했다.

채량우리 곁을 오래 지켰다는 것만으로도 미래유산으로 선정될 수 있나요.
서울미래유산에 선정된 장소나 기념물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문화유산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울광장이나 광화문 지하보도 등은 특별히 문화재가 아니지만, 우리 일상을 함께하고 역사를 만들어진 공간이기에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것이거든요. 오랫동안 함께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이들의 감성과 기억이 머문 곳이고, 이미 그것만으로 보존해야 할 가치가 충분합니다.

지효개인적으로 미래유산에 선정되면 좋겠다고 생각한 곳이 있나요.
마포석유비축기지‧서울화력발전소‧선유도공원처럼 업사이클링과 관련된 장소들이 보다 더 많이 발굴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이런 공간 중에는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모든 세대를 아우르며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장소들이 많죠. 서울의 경우 지난 10년간 미래유산이 기성세대의 추억과 향수를 자극하는 ‘유산’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앞으로는 미래세대와 청년세대가 지켜나갈 수 있는 ‘미래’에 초점을 맞춘 미래유산이 많이 발굴되고 선정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민아서울미래유산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나 소중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미래유산은 폐업이나 멸실을 막을 수 있는 만능 제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시민 스스로가 미래유산의 기억을 더 오래 간직하는데 동참하고, 잊히는 속도를 조금이나마 늦추는 데 기여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죠. 시간의 길이가 길지는 않지만 우리가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문화유산이에요. 미래유산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허물어질 오래되고 낡은 건물, 너무 가까이 늘 지나쳐 소중함을 몰랐던 거리와 길, 공원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답니다. ‘지금’ 우리와 함께하는 것들이 ‘미래’에도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바로 미래유산 자체죠. 여러분들이 여기를 보고 찾고 알리는 행위 자체가 이 문화유산의 가치를 높이는 게 된다는 걸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채량 학생기자가 제안하는 미래유산

김채량 학생기자

김채량 학생기자

1986년 서울아시아경기대회와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를 목적으로 건설된 올림픽공원. 현재는 체육‧문화‧예술 등을 목적으로 한 종합공원이 되었지만, 역사적으로도 한성백제 몽촌토성이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보존되는 공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간송미술관은 1938년 문화보국을 건립이념으로 유명한 미술 수집가이신 전형필 선생님이 일제강점기부터 문화유산을 지키며 지으신 곳이죠. 마지막으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는 여러 전시‧패션쇼‧발표회‧포럼 등 행사들이 진행되는데요. 서울 대표 관광지이자 앞으로도 디자인‧패션 콘텐트의 중심지가 될 것 같아 미래유산으로 지정하고 싶습니다.

민아 학생기자가 제안하는 미래유산

박민아 학생기자

박민아 학생기자

롯데월드타워(서울스카이)가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서울 하면 생각나는 곳, 즉 랜드마크로 가장 먼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롯데타워는 현재 세계에서 6번째로 높은 건물로 전 세계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기 때문에 미래유산으로 지정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지효 학생기자가 제안하는 미래유산

오지효 학생기자

오지효 학생기자

제가 제안하고 싶은 미래유산은 성남에 있는 ‘모란민속5일장’인데요. 매월 4일‧9일‧14일‧19일‧24일‧29일에 장이 열리죠. 볼거리가 정말 다양해요. 맛있는 먹거리뿐 아니라 진한 분장을 하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춤을 추고 신나는 노래를 부르는 각설이 품바 공연도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전통시장이에요. 앞으로도 찾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재래시장이 더 활성화되어 미래유산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라봅니다.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처음 취재 주제를 들었을 때 ‘미래유산’은 조금 생소한 단어였어요. 학림다방부터 광장시장까지 돌아다니며 미래유산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고 장소마다 얽혀있는 역사를 배울 수 있어서 좋았죠. 특히 학림다방은 옛 물건들로 꾸며져 빈티지한 감성이 물씬 느껴졌어요. 한무숙 문학관과 주민센터는 한옥으로 지어져 더욱 멋스러웠죠. 해설가 선생님께서는 이런 취재와 같이 미래유산에 대해 배우고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행동이 미래유산의 가치를 더 높이는 일이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이 인상 깊었어요. 현재 등록된 문화유산도 훼손되지 않도록 소중히 보존하며, 근현대 자산들도 중요하게 여기는 주인 의식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김채량(서울 석촌중 1) 학생기자

취재를 하고 나니 미래유산은 미래에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한 가치가 있는 유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경복궁과 같이 역사적인 곳이 아니어도 우리나라의 첫 번째 치킨집처럼 오래 우리 곁을 지키고 친숙하며 추억이 있는 곳도 지정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죠.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던 별것 아니라고 여겨지던 곳이 미래유산으로 지정되니 조금은 다르게 보였어요. 보존할 가치가 있는 곳은 다른 곳보다 더욱 관심을 갖고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카페같이 흔한 곳은 얼핏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아 보였는데 그곳에 숨어있는 역사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단지 카페가 아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조선시대에나 있었다고 생각한 한옥이 서울 한복판에 있는 것도 너무 신기했죠. 새롭고 재미있는 정보를 알게 되어 정말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박민아(서울 버들초 6) 학생기자

대학로 하면 연극이나 공연을 자주 보러 갔던 곳이라서 소극장과 마로니에공원이 제일 먼저 떠올랐죠. 그런데 이번 취재를 통해 이렇게 많은 미래유산이 있다니 새삼 놀라웠어요. 취재를 위해 제일 처음 가 본 곳은 ‘학림다방’인데요. 레트로한 분위기에서 마시는 음료가 더 달콤했죠. 대학로의 터줏대감이라 불리는 ‘동양서림’도 간판은 새로 고쳐진 모습이었지만, 내부에서는 아날로그 감성을 느낄 수 있었어요.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호떡‧꽈배기‧떡볶이 등 저의 후각을 자극하여 취재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는 먹거리가 가득한 광장시장이었죠. 한복집에 들려 직접 누에고치로 만든 실크 느낌의 견 섬유를 만져봤어요. 무엇보다 앞으로 미래유산이 잘 보존되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어요.

오지효(경기도 이매중 1)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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