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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 치고 난로 70개 피웠다…또 공사장 덮친 '죽음의 연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겨울철 건설현장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콘크리트 보온 양생을 할 때 밀폐된 환경에서 숯탄 난로 등을 피우다 벌어지는 비극이다. 일산화탄소는 무색·무취의 기체로, 갈탄이나 숯탄 등 연료가 불완전 연소할 때 다량 발생한다. 일산화탄소는 산소보다 먼저 헤모글로빈과 결합, 온몸에 산소운반을 방해하면서 산소 부족으로 인한 두통, 정신 혼란, 현기증 등의 증세를 일으키다 급성 중독 증세가 심각해지면 의식불명이나 사망에 이르게 한다.

지난 15일 오후 4시 55분쯤 경기도 파주시 동패동 운정신도시의 A 아파트 신축 현장 지하에서도 그랬다. 소방당국은 양생 작업 중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근로자 10명을 병원으로 이송했다. 중상 2명, 경상 8명이었다. 한때 의식이 없던 중상자 2명은 현재 회복해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16명은 현장에서 응급처치를 받은 뒤 귀가했다. 소방과 경찰 등 관계 당국은 구조대 등 인력 38명과 장비 17대 등을 동원하고, 구급대응 1단계를 발령했다가 같은 날 오후 6시 15분쯤 해제했다.

지난 15일 오후 경기 파주시 동패동의 한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사고로 관계자 1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고 직후 현장 모습. 사진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

지난 15일 오후 경기 파주시 동패동의 한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사고로 관계자 1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고 직후 현장 모습. 사진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

16명은 현장서 응급조치 받은 뒤 귀가

 경찰은 이날 사고가 콘크리트 양생 작업을 위해 지하 2층에서 숯탄 난로를 피우다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사고 현장에서는 영하 추위 속에 양생 작업 중 온도를 영상 5도 이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천막으로 작업장 주변을 막고 난로 70여 개를 피운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경찰과 소방은 이 때문에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일산화탄소가 근로자 다수가 있던 지상 2층까지 번져 인명피해가 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2층에선 21명이 작업 중이었다.

경찰, 소방, 파주시 등은 16일 정확한 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해 현장 감식 및 조사를 진행했다. 경찰은 공사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안전수칙 위반 여부를 조사할 계획이다. 현장에서 쓰러져 중상자로 분류돼 입원 치료 중인 맹모(50·여·중국 국적)씨의 남편 변모(52·중국 국적)씨는 “환기가 잘 안 됐다. (사고 현장에는 천막으로) 포장을 다 씌워놔서 (사람들이) 막 쓰러졌다. 저는 아내와 지상 2층의 멀찍이 떨어진 장소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하고 있었는데, 사람이 많은 데 있던 아내가 ‘머리 아프고 어지럽다’고 해 어젯밤에 병원에 왔다”며 “아내는 건강을 많이 회복한 상태”라고 말했다.

지난 15일 오후 경기 파주시 동패동의 한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사고로 관계자 1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고 직후 현장 모습. 손성배 기자

지난 15일 오후 경기 파주시 동패동의 한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사고로 관계자 1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고 직후 현장 모습. 손성배 기자

지난 1월엔 화성 공사 현장서 1명 사망, 1명 부상

겨울철 건설 현장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사고는 매년 반복되는 일이다. 지난 1월 14일 경기 화성시 아파트 공사 현장서도 1층 저수조 바닥 미장 작업 과정에서 콘크리트 양생을 위해 숯탄 난로를 사용하던 중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다쳤다. 지난 2019년 1월에는 경기 시흥시의 공사 현장에서 갈탄을 피우고 양생 작업을 하다 근로자 2명이 숨지기도 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2011∼2020년 10년간 일어난 건설업 질식 재해 25건 중 17건(68.0%)이 콘크리트 보온 양생 작업으로 발생했다.

지난 15일 오후 경기 파주시 동패동의 한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사고로 관계자 1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고 직후 현장 모습. 사진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

지난 15일 오후 경기 파주시 동패동의 한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사고로 관계자 1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고 직후 현장 모습. 사진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

전문가들은 다양한 선제 대책을 통해 일산화탄소 중독을 예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용재 경민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밀폐공간 내부로 들어가거나 작업 시에는 환기, 가스농도 측정 같은 필수 안전수칙을 지켜 산소 결핍 및 유해가스에 의한 질식 사고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며 “일산화탄소 중독사고를 막기 위해 비용이 더 들더라도 숯탄 대신 전기 열풍기를 사용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가스 농도 측정, 환기, 보호구 착용 등 반드시 지켜야  

 안전보건공단은 동절기 질식 재해 예방을 위해서는 가스 농도 측정, 환기, 보호구 착용 등 안전수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우선 작업 전 밀폐공간의 가스 농도를 측정해 산소 농도 18∼23.5%, 일산화탄소 농도 30ppm 미만, 황화수소 농도 10ppm 미만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이와 함께 출입 전이나 작업 중 환기 팬으로 지속해서 환기하거나 공기호흡기를 착용한 후 작업해야 한다.

일산화탄소 중독사고 예방 포스터. 사진 안전보건공단

일산화탄소 중독사고 예방 포스터. 사진 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공단 측은 질식위험 공간에서 안전작업을 위해서는 사업장 내 질식위험 장소를 파악해 ‘관계자 외 무단출입금지’ 경고표지를 설치하고, 밀폐공간 외부에 감시인을 배치해 안전하게 작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업장의 관리감독자는 공단 서비스를 활용해 적극적인 관리·감독을 하고, 근로자는 안전보건 수칙을 철저히 준수해줄 것도 요청했다. 안전보건공단은 질식 재해 예방을 위해 ‘질식예방 장비 무상대여’ 서비스(1644-8595)를 운영하고 있다. 산소 및 유해가스 농도측정기, 환기 팬, 송기 마스크(작업자에게 산소를 공급하는 호흡용 보호구) 등을 무상대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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