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재명 "법인세 수용" 2시간뒤…주호영 "효과 의문" 퇴짜놨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23년도 예산안이 15일 예정됐던 국회 본회의에 오르지 못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법인세 최고세율 1%포인트 감면’ 등 중재안을 제시하며 시도한 막판 타협이 실패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오후 중재안 수용 의사를 밝히면서 협상에 물꼬가 트이는 듯했으나, 국민의힘은 “법인세 1%(포인트) 낮추는 건 언 발에 오줌 누기”(주호영 원내대표)라며 부정적인 의사를 밝혔다.

김진표 국회의장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5일 국회 의장실에서 열린 내년도 예산안 협상을 위한 국회의장 주재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김진표 국회의장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5일 국회 의장실에서 열린 내년도 예산안 협상을 위한 국회의장 주재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2차 협상 시한이던 이날까지 합의 도출에 실패하면서 국회 예산안 처리는 안갯속으로 빠져들게 됐다. 국회는 이미 예산안 법정처리 시한(12월 2일)을 어기고, 정기국회 종료일(9일)을 엿새나 넘긴 상태다. 예산안을 연내에 처리하지 못하면 한국판 ‘셧다운(shutdownㆍ정부 폐쇄)’이라 할 수 있는 준(準)예산 사태가 발생한다. 헌정 사상 초유의 야당 단독 수정안 통과 가능성도 있다.

쟁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정부는 영업이익 3000억원 초과 법인에 적용되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행 25%에서 22%로 낮출 것을 주장했으나, 민주당은 이를 ‘초부자 감세’라며 반대했다. 또 기존 정부안의 대통령실 이전 관련 비용,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 비용 등에 대해 민주당은 삭감을 주장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이날 오전 주호영(국민의힘)ㆍ박홍근(민주당) 원내대표를 불러 직접 중재안을 제안했다. 중재안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1%포인트만 내려 정부(3%포인트 인하)와 민주당(인하 반대) 주장을 절충한 게 골자였다. 아울러 행정안전부 경찰국 등 예산은 민주당 요구대로 삭감하되 일단 예비비로 기관을 운영할 수 있도록 부대의견을 채택하는 방안도 내놨다.

중재안이 나온 지 5시간여 만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격 수용 의사를 밝혔다. 이 대표는 “민주당은 고심 끝에 대승적 차원에서 의장의 뜻을 존중하고 중재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며 “중재안이 민주당 입장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려운 민생 경제 상황을 고려해 이같은 결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대표가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회의실에서 예산안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대표가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회의실에서 예산안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특히 최대 쟁점인 법인세 인하를 일부 수용한 데 대해선 “여야 간 입장 조율이 더이상 진척이 안 되고 있다”며 “어린 아이의 팔을 양쪽에서 잡고 가짜 엄마와 진짜 엄마가 서로 당길 경우에는 결국 진짜 엄마가 손을 놓아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이 중재안을 받아들인 건 “‘거대 야당의 발목잡기’ 프레임에 걸릴 수 있다”는 당내 우려 때문이었다. 또 감액 중심으로 반영된 민주당 수정안으론 ‘이재명표 예산’ 등의 증액이 어려워 “밀어붙여도 실익이 크지 않다”는 평가도 있었다. 예산안 정국에 막혀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가 공전 중인 점도 감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대표 발표 후 2시간여 만에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이 진행한 ‘국정과제 점검회의’ 참석 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난 주 원내대표는 “외국 자본 유치 투자 경쟁에서 법인세 1% 포인트 인하가 어떤 효과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후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도 “의장 중재안 수용 여부 판단 보류”로 의견이 모였다. 주 원내대표는 의총 후 “(법인세 등 외에도) 쟁점이 있는 항목이 6~7개가 더 있다”며 “(민주당과) 나머지 협상을 계속해서 최종 의견을 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왼쪽)와 주호영 원내대표가 15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국정과제점검회의에 참석해 회의가 시작하기 전에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추경호 경제부총리(왼쪽)와 주호영 원내대표가 15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국정과제점검회의에 참석해 회의가 시작하기 전에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예산안을 집행하는 정부 측에서도 중재안에 부정적 기류가 강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법인세 인하와 관련해 “기업의 투자와 일자리를 늘려 민간 중심의 경제 활력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번에 반드시 처리돼야 한다”고 말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TSMC가 있는 대만의 법인세는 대한민국보다 10%포인트나 낮다"며 "법인세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한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진표 중재안’이 무위로 돌아가면서 예산안 협상 교착상태는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저녁 의원총회에서 “싸움이 원점이 됐다”며 “예산안 정국이 연말까지 갈 거 같다”고 말했다.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우리가 양보했음에도 정부ㆍ여당이 무책임한 자세로 나온다”며 “이 상태가 지속되면 민주당 수정안을 단독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또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예산안 야당 단독 처리엔 명분이 중요한 만큼 속도를 내기보단 일종의 냉각기가 현재로선 필요하다"며 "기존 야당 수정안에 김 의장이 제안한 법인세 1%포인트 인하 등을 반영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