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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야당 예산안 단독 처리가 초래할 도미노 효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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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10일 오전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내년도 예산안 협상을 벌이고 있다.[연합뉴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10일 오전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내년도 예산안 협상을 벌이고 있다.[연합뉴스]

야당 계획 따라 정부가 살림 살아야 할 초유의 사태

극한 대립으로 2024년 총선까지 국회 올스톱 우려도

김진표 국회의장이 새해 예산안의 국회 본회의 처리를 공언한 15일이 밝았지만 국회는 아직도 안갯속이다. 핵심 쟁점인 법인세 인하 등에 대한 입장 차로 여야 협상에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다.  하루 전인 14일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와 여당의 양보가 없을 경우 자체 예산안 수정안을 제출해 밀어붙이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국회를 행정부의 들러리쯤으로 여기는 윤석열 대통령은 정부·여당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국회의 자율적 협상 공간을 없애버렸다”며 “정부·여당이 ‘윤심’을 따르느라 ‘민심’을 저버린다면 초부자 감세 저지와 국민감세 확대를 위해 자체 수정안을 내일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정부 동의 없이 예산을 증액할 수 없는 야당이 기존 정부 제출 예산안에서 자기들이 깎고 싶은 감액분만 반영한 예산안이다. 또 대기업에 적용되는 법인세 최고세율(25%) 인하에 반대하는 민주당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중소·중견기업 법인세 인하 등만 담긴 예산부수법안의 처리도 다짐했다. 세출(예산안), 세입(예산부수법안) 모두를 야당 마음대로 처리하겠다는 뜻이다. 헌정사에서도 유례가 없었다.

“법인세 개정안은 반드시 처리돼야 한다”는 윤 대통령의 의지를 고려하면 여당의 태도에 극적인 변화를 기대하긴 힘들다. 따라서 김 의장이 15일 처리 입장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설마했던 야당 예산안 단독 처리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상임위와 예결위에서 어렵사리 도출된 예산안 조정의 성과는 물거품이 된다. 야당 단독으로 짠 계획에 따라 정부가 살림을 살아야 하는 황당한 상황 속에 조만간 정부가 제출할 추가경정예산안을 놓고 여야가 또 옥신각신하는 국가적 체력 낭비도 불 보듯 하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른 데엔 사법리스크에 몰린 거대 야당의 폭주, 협상과 양보에 인색한 여당의 실력과 태도, 양쪽 모두 협상파보다 강경파가 득세한 여야 내부 사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더 큰 문제는 예산안 야당 단독 처리라는 희대의 사태가 부를 초유의 정치적 후폭풍이다. 여야 모두가 끔찍한 도미노 효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최근 시동이 걸린 윤석열표 노동시장 개혁과 건강보험 개혁도 결국 국회 입법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여야 합의라는 예산 처리 공식까지 무러뜨린 야당이 대통령의 개혁을 입법적으로 뒷받침할 거라 상상하긴 어렵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169석의 힘으로 처리한 법안들이 여당이 위원장인 법사위의 벽에, 윤 대통령이 행사할 거부권의 벽에 줄줄이 막혀 좌초될 수 있다. 예산에 이어 법안 처리 기능까지 올스톱되는 식물 국회 상황이 2024년 총선 때까지 이어질지도 모른다. 예산안 단독 처리라는 위험한 방아쇠가 당겨지지 않도록 극적인 타협의 반전을 여야에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