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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민석의 살아내다

몇달 안치실에 방치해놓고, 병원은 수백만원 청구서 내밀었다

중앙일보

입력

김민석 나눔과나눔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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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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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장례는 삼일장으로 치러진다. 고인이 장례식장이나 병원 안치실에 머무는 기간은 길어봐야 사나흘 정도라는 얘기다. 하지만 무연고 사망자는 다르다. 병원이 아닌 곳에서 사망한 변사자는 경찰이 수사부터 먼저 해야 하고, 설령 병원에서 사망했다 하더라도 연고자 파악과 시신 인수 의사를 묻기까지 어쩔 수 없는 행정 소요가 발생하는 탓에 훨씬 길어진다. 이 모든 절차를 밟고 나면 무연고사망자의 안치 기간은 평균 한 달이다. 그 기간 고인은 계속 차가운 안치실에 있어야 한다.

더 안타까운 건 한 달 정도면 그래도 꽤 준수한 편이라는 점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 보니 고인을 애도하고자 하는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은 행정처리가 끝날 때까지 기약 없는 기다림을 겪는다. 안치실에 방치된 고인을 생각하며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끼지만, 남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실제로 이런 장례에 참여했던 사람들 말을 빌리자면 "참으로 피 말리는 시간"이다.

가끔 안치 기간이 상상을 초월해 길어지기도 한다. 한두 달 정도가 아니라 심지어 연 단위로 안치실에 방치되어 있었던 고인의 공문을 받으면 그 아득한 시간에 아찔함까지 느껴진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경찰 수사나 행정 절차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순 있어도 언젠가 끝이 난다. 경찰이든 지자체든 고인의 존재를 인지하는 한 가능한 한 빨리 장례를 치르고 싶어하기에 수개월까지 방치되긴 어렵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민원 발생 우려가 커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까지 안치 기간이 길어지는 것일까? 아예 고인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할 때 이런 일이 벌어진다.

겨울 초입에 사망해 봄에 화장된 고인이 딱 그런 경우였다. 병원에서 숨을 거둔 고인은 그대로 병원 장례식장에 안치되었다. 보통의 절차대로라면 병원과 장례식장이 고인의 연고자 파악과 시신인계를 위해 지자체에 공문을 보내야 했다. 그래야 담당 주무관이 상황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행정 절차를 진행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병원과 장례식장은 공문을 보내지 않았다.

고인이 안치실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세 들어 살던 집의 집주인 덕분이었다. 고인은 매일 같이 술을 마시던 사람이었다. 집주인은 그런 고인의 건강상태를 걱정했다.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자 병원에 입원시킨 것도 집주인이었다. 치료를 받고 나면 몸을 회복해 집으로 돌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퇴원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집주인은 기다리다 못해 병원에 찾아갔다.

집주인은 병원으로부터 황당한 부고를 들었다. 고인은 이미 수개월 전 사망했고, 어떠한 조치도 취해지지 않은 채 안치실에 방치되어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집주인은 지자체에 부고를 알렸다. 가족이 아니기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다. 담당 주무관은 뒤늦게 연고자 파악을 시작했다. 알고 보니 고인에게는 별거 중인 아내가 있었다. 아내는 당장은 떨어져 살지만 고인과 언젠가 재결합할 것을 생각할 정도로 애정이 남아있었기에 당연히 장례를 치르고자 했다.

그런 아내에게 병원이 내민 건 수백만 원에 달하는 안치료 청구서였다. 수개월 간의 안치료를 모두 지불해야 장례를 시작할 수 있다는 말에 아내는 시신 위임서를 작성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발생한 안치료에 장례비용을 더한다면 1000만원은 우습게 넘었을 거다. 도저히 아내 혼자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폴란드 작가 조제프 체르멘토브스키(1833~76)이 그린 '소작농의 장례식'(1862).

폴란드 작가 조제프 체르멘토브스키(1833~76)이 그린 '소작농의 장례식'(1862).

“사망 사실을 빨리 알았다면 장례를 치렀을 거예요. 병원과 장례식장은 왜 가족을 찾지 않았을까요? 말씀 들어보니까 본인들이 찾을 수 없으면 지자체에 요청하면 되는 거잖아요. 이해가 안 돼요. 그 오랜 시간 동안 안치실에 방치한 이유가 뭘까요? 안치료로 이미 수백만원이 깔렸는데 제가 뭘 할 수 있겠어요?”

아내는 공영장례에 참여해 울분을 토했다. 고인이 설마 죽었으리라곤, 심지어 안치실에 방치되어 장례를 치러줄 수도 없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고. 아이들이 모두 자라고 나면 언젠가 다시 합치리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꿈꿀 수 없는 미래에 황망해 하며 아내는 오열했다.

병원과 장례식장이 고인을 왜 그토록 오래 방치했는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안치실 사용료는 하루 평균 10만원 이상 청구된다. 바로 가족이 나타나지 않는 고인이 한 칸을 차지하고 있으면 차지한 시간만큼 손해가 발생하고, 그 손해는 고스란히 장례식장의 몫이 된다. 그래서 안치실의 상황판에는 고인이 언제 들어왔고 언제 나가는지 표시돼 누군가 늘 체크하게 되어 있다.

가장 유력한 추측은 이렇다. 고인이 안치되어 있던 곳은 커다란 부지를 가진 한 종합병원 장례식장이었다. 이곳은 작은 장례식장과는 달리 안치실의 규모가 커 빠른 회전에 굳이 에너지를 쏟지 않았을 수도 있다. 만약 그런 거라면 상황판에 들어온 날짜가 적힌 뒤로 고인은 천천히 잊혔을 것이다.

아마도 병원과 장례식장은 그렇게 고인을 '깜빡'한 것 같다.

그동안 이 일을 하면서 모종의 이유로 오랫동안 안치된 고인을 여럿 만났다. 국가는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살아있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있지만, 그것으로 충분한 것일까?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있다. 우리사회는 청구되지 않은 죽음을 어떤 태도로 대할 것인가? 뜻하지 않게 남편을 무연고로 보낸 아내의 오열이 귓가에 맴돈다.

“왜 바로 가족을 찾지 않은 걸까요? 도무지 이해가 안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