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은식이 고발한다

소아과 최악 미달, 돈만 문제 아니다…또다른 배경, 부모갑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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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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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의 한 병원에서 지난 10월 소아 환자와 보호자가 대기하는 모습(연합뉴스). 그래픽=김현서 기자

서울 성북구의 한 병원에서 지난 10월 소아 환자와 보호자가 대기하는 모습(연합뉴스). 그래픽=김현서 기자

주요 대학병원을 포함해 전국 수련병원의 2023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레지던트) 지원율이 16.6%에 그쳤다. 정원(199명)의 16.6%(33명)만 채웠다는 얘기다. 이미 기피 과로 소문났던 지난 2019년 당시에도 80%였던 지원율이 사상 처음으로 10%로 뚝 떨어진 최악의 결과를 기록한 것이다. 극적인 반전이 없다면 소아 진료 인프라 붕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미 전국 대학병원 가운데 24시간 소아 응급진료가 가능한 곳은 36%밖에 되지 않고, 대학병원 네 곳 중 세 곳은 당직 서는 전공의가 부족해 교수가 당직을 선다. 지방만 따로 떼서 보면 더욱 심각하다. 전북대병원·충북대병원을 제외하면 지역 거점 병원에 전공의 1년 차가 단 한 명도 없다. 보호자가 한밤중 진료 보는 의사를 찾아 헤대다가 아픈 아이의 상태가 악화하는 사례가 최근 빈번하게 보고되는 이유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산부인과·외과 등 생명과 직결한 바이털 과의 인기가 점차 떨어지고 있지만 새내기 의사들의 소아과 기피는 유독 두드러진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원인은 저출산으로 인한 진료 수요의 감소다. 하지만 올해 산부인과 지원율이 지난해(70%)보다 오른 79%인 걸 고려할 때 이게 전부는 아니다. 이보다는 미국의 10분의 1 정도로 낮게 책정된 수가체계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성인과 달리 아이는 의사의 진찰에 협조적이지 않아 진료 시간이 더 길 뿐만 아니라 아이를 잡아주는 역할을 해줄 보조 인력 채용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성인보다 약물의 투여 용량이 작아 병원으로선 약제 매출이 적다. 각종 검사 장비 사용 빈도도 높지 않다. 한마디로 진료 시간과 인건비는 많이 들지만 매출이 적다. 국가적으로는 매우 중요하지만 의사 개개인으로선 굳이 소아과를 택할 유인이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저수가를 개선하기는커녕 과거 비급여였던 예방백신들을 2013년 급여화하면서 현행 수가의 70% 정도만 받도록 했다. 심지어 신생아 필수접종인 로타바이러스 백신 같은 경우 현행 수가의 40%만 받도록 했다.

돈이 전부는 아니다. 자녀 수가 준 만큼 부모가 소아 진료에 갖는 기대치가 지나치게 높아진 것도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령 아이를 빨리, 혹은 제대로 봐주지 않는다고 의료진에게 폭언, 심지어 폭행하는 사례가 늘었다. 맘카페 갑질도 무시 못 할 기피 요소다. ‘애가 먹을 건데’라며 없는 메뉴나 공짜 서비스를 요구한 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별점 테러를 일삼아 식당 사장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갑질 사례가 SNS에 자주 등장한다. 소아과 병원에선 ‘애가 아픈데’ 버전으로 바뀌어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영향력 있는 맘카페 회원이라며 좋은 후기를 대가로 진료비를 공짜로 해달라는 등 이런저런 요구를 하다 거절당하면 거꾸로 악성 포스팅을 올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실제로 이런 피해 탓에 소아과를 아예 닫아야 했던 사례를 주변에서 목격하기도 했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은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사명감으로 진료 현장을 지키던 의료진 이탈을 가속화했다. 결국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암 투병을 하며 미숙아를 돌보던 의료진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구속되는 모습을 보면서 다들 '나도 언젠가는 죄인 취급을 받을 수 있다'는 공포를 느꼈다. 천안의 대학병원 소아응급실에서 근무하는 한 소아과전문의는 "환아 상태가 안 좋아질 때마다 죄 없이 법적 처벌을 받을까 봐 두렵다"고 했다.

2017년 말에 일어난 이대목동병원 영아 사망 사건으로 구속됐던 주치의. 사진은 2018년 1월 그가 경찰에 출석할 때의 모습. 이후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됐으나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연합뉴스

2017년 말에 일어난 이대목동병원 영아 사망 사건으로 구속됐던 주치의. 사진은 2018년 1월 그가 경찰에 출석할 때의 모습. 이후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됐으나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연합뉴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19로 소아과 진료가 40%나 감소하자 소아과의원의 폐업이 속출했다. 새내기 의사들이 개원도 여의치 않은 과를 지원할 리 없고, 그렇게 지원이 줄면서 병동 및 응급실 당직 업무를 교수가 떠안게 됐다. 학생 때 우러러보던 나이 지긋한 교수마저 밤 당직을 서며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더더욱이 소아과 지원을 할 수 없다. 악순환은 또 다른 악순환을 낳는다. 급기야 근무하던 소아과 전공의와 교수도 병원을 떠나면서 중증치료를 전담하는 많은 대학병원에서 24시간 소아과 진료가 불가능해졌다.

더 이상 소아 진료 인프라가 붕괴하지 않도록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 소아 진료 인프라가 붕괴하면 당장 안타까운 어린 생명을 잃게 되는 것도 문제지만, 한 번 붕괴하면 재건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등 의료 현장에서 나오는 대안은 대략 이런 것들이다. 먼저 소아 가산 수가를 적용해 저수가를 개선하는 것이다. 입원 진료는 100% 인상하고 특히 중증 질환일수록 가산율을 높인다. 전공의 부족으로 대학병원의 진료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입원전담전문의 인건비 지원도 필요하다. 의료붕괴가 이미 시작된 지방에서는 지역 가산 수가를 신설한다. 재원이 문제라는 건 안다. 하지만 MRI 검사 등 비급여진료를 급여화해 건강보험 재정 고갈을 불러온 지난 문재인 정부의 문케어를 중지해 낭비를 막는 등 일부 조정만으로도 일정 부분이나마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동네의원이 안심하고 중환을 의뢰할 수 있는 지역 거점 병원 육성도 빼놓을 수 없다.

다음으로 의료진이 고의적 위해를 가한 게 아니라면 구속수사 및 형사책임을 면제하는 법 제정이 필요하다.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피해자를 위한 보상재원을 정부가 100% 부담해 분만의료기관의 부담을 줄이는 걸 골자로 하는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이 최근 통과됐다. 소아과도 여기 포함되면 좋겠다.

일각에서는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행 체제에서는 소아과 전문의를 취득하고도 다른 진료를 하는 의사가 이미 부지기수다. 대한민국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약 2.5명으로 일본 2.5명, 미국 2.6명과 비슷하다. 오스트리아(5.3명)나 폴란드(4.8명)에 비해선 적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에서의 기대수명이나 암, 뇌 심장질환 사망률 등 주요 의료 지표는 훨씬 앞서있다. 단순히 의료인 숫자만 늘려서 의료 질을 향상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모두 힘든 시기에 상대적으로 돈 잘 버는 의사를 지원해달라는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기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진료비를 의사 마음대로 정할 수 없는 현 건보 체제에선 어쩔 수 없다. 추후 수가 조정을 다시 하더라도 급한 불은 꺼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아무도 소아과 의사를 하지 않으려는 지금의 상황은 코로나보다 더한 위기상황이다. 그야말로 나라가 소멸할 수 있다. 근본적인 초저출산에 의한 인구절벽만큼이나 귀한 아이를 돌볼 수 없는 인프라 붕괴를 그대로 두면 대한민국은 망한다. 나라를 지킬 사람이 없는데 국방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대한민국 사람이 소멸하고 있는데 이념이고 정당이고 다 무슨 소용인가? ‘망해야 정신 차린다’는 말은 그만하자. 어떻게 세우고 발전시킨 나라인가. 또 얼마나 소중한 어린 생명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