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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관대한 음주공화국] 하루 14명꼴 알코올 질환으로 사망…음주폐해,예방·치료책 수립 서둘러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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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7호 13면

SPECIAL REPORT

안타깝고 억울하지 않은 죽음이 있을까?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의 잘못으로 어린아이가 목숨을 잃었다면? 음주운전은 개인, 가족을 넘어 사회 전체 안전성을 깨는 심각한 범죄다. 윤창호법 등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은 강화됐지만, 우리나라의 음주운전 사망사고 발생률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강력한 처벌에도 왜 음주운전이 줄지 않을까? 음주운전은 “음주운전을 하면 사고가 날 수 있고, 처벌을 받는다”는 전두엽의 이성적 판단보다, “더 기쁘고 즐겁기 위해 술을 마시고 싶어”라는 감정 뇌의 욕구가 클 때 발생한다. 음주운전 재범률은 45%에 이른다. 음주운전자의 절반 가까이는 이미 전두엽이 변연계를 이길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강력한 처벌은 음주운전 예방에 큰 효과가 없다. 처벌 강화뿐만 아니라 의무적으로 치료를 받게 하는 공중보건정책이 동반돼야 음주운전 사고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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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은 일반적 상품이 아니다(No Ordinary Commodity)』 세계적인 보건사회학자인 토마스 바버 등이 쓴 ‘알코올정책의 바이블’격인 책의 제목이다. 우리나라 음주운전 교통사고 사망자는 감소하고 있지만, 알코올 관련 질환 사망자는 2020년 처음으로 5000명을 넘어섰다. 알코올성 간 질환, 알코올사용 장애 등 100% 알코올에 의해 발생하는 질환으로 하루 평균 14.1명이 세상을 떠난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알코올은 합법적으로 생산, 판매되는 상품이다. 그러나 조절해서 사용하지 않으면 뇌의 전두엽 기능을 약화하고, 감정 뇌 기능을 불안정하게 만들어, 충동조절능력을 떨어뜨린다. 또한 각종 암을 유발하는 알코올은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1군 발암 물질이다. 그러나 주류회사는 이런 사실을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주류회사가 “더 마셔라”고 쓰는 주류 광고마케팅비는 수천억 수준이지만, 국가가 “조심해서 마셔라”고 예방사업을 하는데 투자하는 예산은 15년째 연 14억원이다. 이러한 불균형 속에 술을 마시는 국민은 영문도 모른 채 알코올 질환으로 사망하고 있다.

알코올은 이성적 판단을 담당하는 뇌의 전두엽 기능을 약화해 주취폭력, 음주운전 사고와 같이 가족이나 불특정 다수에게도 2차 폐해를 유발한다. 알코올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청소년도 예외는 아니다. 비율은 낮아졌지만, 여전히 10명 중 한 명의 청소년(10.7%)은 현재 음주 중이다. 음주 청소년 중 과음을 하는 비율은 최근 70% 수준까지 오히려 증가했다. 글로벌 아이돌 스타를 동원한 주류광고는 노골적으로 청소년과 젊은 여성의 음주를 부추긴다. 청소년의 음주는 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기쁨을 느끼기도 전에 손쉽게 뇌에 직접 작용하는 기쁨의 단추를 누르게 만든다. 국가의 장래를 어둡게 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이렇듯 알코올은 일반적인 상품이 아니다. 많은 선진국이 주류산업의 이해와 소비자의 건강할 권리를 공정하고 균형 있게 보장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이유다. 음주 폐해를 예방하는데 효과가 입증된 알코올정책을 시행하고, 알코올사용 장애나 간 질환처럼 이미 발생한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치료 재활 인프라에 투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알코올정책 수준은 OECD 국가 30개국 중 24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이웃 나라 일본은 우리나라만큼 음주를 즐기는 나라다. 그러나 일본은 의료인들이 시민사회와 함께 의회를 설득해 2013년 ‘알코올건강장해대책기본법’을 제정했다. 이후 2016년 국가대책을 수립하고 음주 폐해를 예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정책투자를 하고 있다.

미국은 음주 폐해 예방과 감소를 위한 연구에만 매년 5000억원 이상을 투자한다. 또한 미국의 주류회사는 자체적인 규정을 마련해 청소년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를 광고모델로 쓰지 않는다. 이러한 알코올정책과 주류회사의 사회적 책임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음주운전 사고로 자식을 잃은 엄마들의 모임’, ‘태아알코올증후군 엄마들의 모임’과 같은 시민사회단체가 강력히 음주 폐해 예방정책 수립을 촉구하고, 전문가들이 이에 연대하고 옹호해 국가와 주류회사가 응답한 결과였다.

우리가 음주 폐해를 예방하고 감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바로 살 수 있는데 죽어가는 환자를 살리는 일, 영문도 모른 채 뇌와 마음을 병들게 하지 않도록 하는 일,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의 잘못으로 발생하는 죽음을 막는 일, 세상의 기쁨보다 알코올의 보상 효과를 먼저 알도록 하지 않게 하는 일이고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의 안전·행복·건강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해국 가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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