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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90분 축구 아니다…한국 찬스, 후반 35분 이후 올 수 있다 [이천수의 호크아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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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재 한국 축구대표팀의 심정을 잘 안다. 20년 전 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2002 한·일월드컵 16강에서 한국은 이탈리아를 만났다. 당시 이탈리아는 지금의 브라질 못지 않은 강팀이었다. 알레산드로 델피에로, 크리스티안 비에리, 프란체스코 토티(이상 공격), 파울로 말디니, 잔루카 잠브로타(이상 수비), 잔루이지 부폰(골키퍼) 등 전 포지션에 걸쳐 세계 올스타급 선수들이 포진했다.

그때 우리가 이탈리아를 넘을 확률은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한국이 브라질을 이길 확률 못지 않게 낮았다. 한마디로 한국이 이길 가능성은 0에 가깝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한국은 그 모든 예상을 뒤엎고 이겼다.

2002년 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 당시 이천수(가운데). [중앙포토]

2002년 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 당시 이천수(가운데). [중앙포토]

전 세계가 '미쳤다' '반전이다' 등 감탄사를 지르며 놀랐지만, 선수단 내 분위기는 생각보다 차분했다. 이긴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한번 들이대자'는 식의 즐기는 마음가짐으로 임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가 두렵다는 생각은 '1'도 하지 않았다. 정말 상대가 무서웠다면 한국의 막내였던 내가 이탈리아 주장이자 수퍼스타인 말디니를 '테러'하는 사건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후배들도 2002년 당시 선배들처럼 즐기는 마음으로 브라질을 상대했으면 좋겠다. 부담은 오히려 강자인 브라질의 몫이다. 진부한 얘기지만 공은 둥글다. 전문가와 팬의 예상은 어디까지나 예상이다. 브라질이 특급 공격수 네이마르가 뛰고 세계 랭킹 1위에 올라있는 강팀이긴 하나, 승패는 90분이 지나봐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공격수 비에리를 사력을 다해 막는 한국 수비수들. [중앙포토]

이탈리아 공격수 비에리를 사력을 다해 막는 한국 수비수들. [중앙포토]

한국이 잊지 말아야 할 건 딱 한 가지다. 축구의 정규시간은 90분이지만, 카타르월드컵은 다르다는 것이다. 이번 대회만 놓고 보면 축구는 더는 90분이 아닌 100분 경기라고 부를 만하다. 후반 추가 시간이 10분 주어지는 건 흔한 일이다. 전후반 추가 시간을 더하면 15분을 훌쩍 넘기는 경우도 있다. 말그대로 쉰 만큼 더 뛰는 '리얼 타임' 월드컵이다. '100분 축구'를 이해하고 활용하면 강호도 무너뜨릴 수 있다.

지금까진 후반 35분, 즉 경기 시간의 80분이 지나면 경기를 앞선 팀은 지키기에 돌입하는 경우가 많다. 신체적으로는 물론이고 정신적으로도 무척 힘든 상태이기 때문이다. 특히 월드컵 같이 큰 무대에선 평소보다 더 피로가 빨리 온다. 무리해서 앞으로 나아가기 보단 물러서게 된다. 그건 브라질 같은 팀이라고 해도 예외일 순 없다. 우승을 노리는 팀은 이후 8강, 4강, 결승 등을 대비해 체력 소모를 최소화해야 한다. 한국은 이 틈을 노리면 승산이 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막판에 강했다. 뉴스1

한국은 역사적으로 막판에 강했다. 뉴스1

한국은 전통적으로 뒷심이 강한 팀이다. 역사적으로 한국이 국제 무대에서 크게 앞섰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늘 후반 막판까지 사력을 다해 뛰는 한국 만의 특유의 전통이 있다. 다른 말로는 '투혼'이 살아있는 팀이다. 2002년 이탈리아와의 16강에서도 0-1로 패색이 짙던 후반 막판 설기현이 동점골, 연장서 안정환이 골든골로 승리를 확정했다. 한국은 최근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터뜨린 7골 중 4골을 후반 정규시간을 마친 뒤 터뜨리는 드라마를 썼다.

2018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멕시코전에서 0-2로 뒤진 후반 추가시간에 손흥민이 추격의 골을 넣었고,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독일전에선 김영권과 손흥민이 후반 추가 시간에 연속으로 골망을 흔들며 당시 세계 1위 팀 독일을 쓰러뜨렸다. 카타르에서도 한국은 추가 시간에 강했다. 조별리그 H조 마지막 경기 포르투갈전 1-1로 맞선 후반 46분에 황희찬이 천금 같은 결승골을 터뜨리며 짜릿한 2-1 역전승을 일궜다. 브라질을 상대로 손흥민, 황희찬, 나상호 등 빠르고 위협적인 공격수들이 후반 막판 순간적으로 공격 시도하면 상대 골문을 열 득점 찬스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들이 돌파 후 한 타이밍 빠른 크로스를 올려 조규성이나 황의조의 머리를 노리는 방법도 시도해 볼만하다. 한국에 주어진 시간은 많고, 기회는 반드시 올 것이다.

이천수는 "브라질은 한국이 카타르월드컵에서 펼칠 기적 쇼'의 시작"이라고 했다. 뉴스1

이천수는 "브라질은 한국이 카타르월드컵에서 펼칠 기적 쇼'의 시작"이라고 했다. 뉴스1

다시 묻고 싶다. 20년 전 한국이 이탈리아를 이길 줄 알았나. 8강에서 '무적 함대' 스페인을 승부차기로 제압할 줄은 예상했나. 하지만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것이 한국 축구의 힘이다. 그러니 이렇게 생각하자. "브라질은 한국이 펼칠 '기적 쇼'의 시작에 불과하다. 우린 4강에서 리오넬 메시의 아르헨티나도 이겨야 하니까. 대한민국 축구 화이팅!"

※2002 한·일월드컵 4강 주역이자, 2006 독일월드컵 토고전 프리킥 골의 주인공인 이천수가 2022 카타르월드컵 주요 인물 및 경기 분석을 중앙일보에 연재한다. '호크아이(Hawk-Eye)'는 스포츠에서 사용되는 전자 판독 시스템의 이름이다. 축구 지도자 자격증 중 가장 급수가 높은 P급 자격증 취득을 앞둔 이천수는 매의 눈으로 경기를 분석해 독자에게 알기 쉽게 풀어드린다. 촌철살인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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