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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추억] 한일협정 주도한 외교계 큰 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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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동원(사진) 전 외무장관이 18일 별세했다. 80세. 고인은 혈관질환으로 석 달가량 입원해 투병하다 폐렴 등의 합병증으로 숨을 거뒀다.

고인은 박정희 정권의 기반을 다지는 데 기여한 인물이다. 5.16 쿠데타 이듬해인 1962년 서른여섯의 나이에 청와대 비서실장에 발탁됐고, 64년에는 외무장관을 맡았다.

함경도 북청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고인은 58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국방대학원에서 강의를 했다. 이때 군 실세들과 인연을 맺었고, 이것이 박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고인은 박 전 대통령에게 5.16 쿠데타 발발 한 달 전에 "국민의 지지를 받는 쿠데타가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박 전 대통령이 집권한 뒤 최측근 인사가 됐다. 육영수 여사가 고인에게 "대통령과의 술자리를 자제해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박 전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전 장관은 63년 박 전 대통령이 '군정 5년 연장'을 선언해 한.미 관계가 악화되자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미 행정부와의 중재와 조율에 앞장서 사태를 원만하게 봉합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후 태국 대사를 거쳐 외무장관에 임명돼 65년 한.일 기본관계 조약에 서명하는 등 한.일 국교정상화를 주도했다.

고인은 회고록 '행동하는 자에게 불가능은 없다'를 통해 당시 협상에서 시나 에쓰사부로(椎名悅三郞) 일본 외상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쓰시마(對馬島) 영유권 주장으로 맞받아 물리친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고인은 2년 반의 외무장관 재직 시절 베트남 파병, 한.미 행정협정 체결, 아스팍(ASPAC.아시아태평양 각료회의) 창립 등의 업적을 남겼다.

이후 국회로 진출해 4선(7.8.10.15)에 걸쳐 전국구 의원을 지냈다. 공화당 핵심 세력이었던 고인은 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끄는 국민회의에 입당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이에 대해 정대철 열린우리당 상임고문은 "정권 교체가 국가 발전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김 전 대통령을 도왔다"고 설명했다.

고인은 81년 한영학원을 인수해 한영중.고를 운영했다. 그 뒤 한영외고와 동원대를 설립해 교육사업에 전념했다. 유족은 부인 이경숙(77) 한영학원 이사장과 딸 이정은(47) 동원대 학장, 아들 이정훈(45) 연세대 국제교육교류원장이 있다. 장례는 외교통상부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22일.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12호실(02-3410-6912).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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