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추억] 43년 그리던 조국 땅에 잠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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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포병 소위 조창호. 국방장관님께 무사히 귀환한 것을 신고드립니다."

국군포로 조창호(사진) 예비역 중위가 북한을 탈출한 뒤 1994년 10월 25일 국군수도통합병원에 위문 온 당시 이병태 국방장관에게 첫 신고하던 모습이다.

94년 국군포로로는 처음으로 북한을 탈출한 조씨가 19일 분당 서울대 병원에서 지병인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76세. 그는 북한에 500여 명의 국군포로가 생존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렸다.

고인은 1950년 연세대 교육학과 1학년 재학 중 한국전쟁이 터지자 자원 입대, 육군본부 직속 포병 101대대 관측담당 소위로 참전했다. 이듬해 강원도 인제 전투에서 중공군 포로가 돼 43년간 북한에 억류됐다.

그는 '반동분자'로 낙인이 찍혀 아오지.덕천.서흥.함흥 등지의 수용소와 중강진 구리광산 등에서 노역을 했다. 94년 10월 4일 북한을 탈출, 중국 다롄에서 어선을 타고 16일 만에 인천항에 도착했었다.

조씨는 한국에 귀환한 뒤 중위로 진급해 전역했다. 이후 국군포로 송환과 국군포로 자녀 돕기에 열심이었다. 2005년 미국 의회를 방문해 북한에서의 체험을 증언하는 등 국군포로 송환 촉구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였다.

유족으로는 귀환한 뒤 만난 부인 윤신자(68)씨와 북에 두고 온 자녀 셋이 있다. 조씨의 장례는 재향군인회가 향군장(장례위원장 박세직 재향군인회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발인은 21일 오전 7시30분이며 같은 날 오후 4시30분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납골당에 안치된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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