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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당은커녕, 욕먹고 장렬히 산화해야"…재난부처 공무원 자조 [안전 국가, 길을 찾다]

중앙일보

입력

30일 언론 브리핑하는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의 손.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30일 언론 브리핑하는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의 손.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재난 부서는 시한폭탄이죠. 평소엔 속칭 ‘냄새나는 업무’를 하다가 대형 재난이 터지면 욕먹고 장렬히 산화해야 해요.”

익명을 요청한 방재안전직렬 공무원 A씨는 업무상 애로사항을 이렇게 표현했다. 주로 재난·안전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방재안전직렬(기술직)은 공무원 사회에서 기피 부서로 꼽힌다. 재난 특성상 비상근무가 잦고 업무가 몰리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다. 게다가 평소엔 ‘일 잘한다’는 평가를 받기 어렵다. 재난이 발생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고 나면 문책하는 문화 바꿔라”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이 경찰조사를 받기 위해 마포구 이태원 사고 특별수사본부로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이 경찰조사를 받기 위해 마포구 이태원 사고 특별수사본부로 출석하고 있다. 뉴스1

반면 재난이 발생하면 책임을 떠안는다. 실제로 이태원 참사 이후 온 나라는 책임 소재를 가리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양기근 원광대 소방행정학과 교수는 “한국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워서 마무리하고 사건을 수습하려는 문화가 있는데 이건 고쳐야 할 문제”라며 “누군가 책임지고 옷을 벗으면 사안은 잠잠해지지만, 사고를 유발 문제나 초기에 수습을 어렵게 했던 시스템은 그대로 남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똑같은 문제가 재발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화는 역량 있는 공직자가 재난 관리 부서 지원을 꺼리게 하는 요인이다. 섣불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등에서 재난 관리 업무를 맡았다가 사고가 나면 공직사회에서 ‘주홍글씨’가 찍힐 수 있어서다. 한 중앙행정기관의 공무원은 “재난 업무에 종사하는 동료들을 보면 저렇게 욕먹으면서 일하는 게 안쓰럽기도 하다”며 “분위기가 이런데 관련 공무원이 공직에 봉사할 동기를 찾으라는 건 지나친 요구”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재난시 ‘책임을 묻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호진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도한 처벌·감시·책임보다 적극적 행정에 대한 면책 제도를 도입·시행해 재난 담당 부서 공무원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한 높이고 승진·보직 우대해야

경찰청 특별수사본부 관계자들이 서울 용산구청에서 이태원 참사 관련 압수수색을 마친 뒤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 관계자들이 서울 용산구청에서 이태원 참사 관련 압수수색을 마친 뒤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재난 관리 공무원의 권한 확대와 인센티브 제공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재난안전관리 부서는 업무 강도는 세지만 수당이 거의 없는 편이다. 평소에 ‘성과’로 제시할만한 업무가 많지 않아서다. 하지만 중대본을 구성할 정도로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업무량이 급증한다. 재난 분야 공무원들이 “업무량·난이도에 비해 보상이 적다”고 인식하는 이유다.

특히 중앙행정기관에 종사하는 재난 관리 업무 공무원은 승진이나 보직에서 다소 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소수 직렬은 상대적으로 승진이 어렵기 때문이다. 행정직 공무원과 달리 순환 배치도 어려운 편이다. 한 자치단체 공무원은 “재난이 터지지 않으면 기관장이 관심도 없고 지원도 부족하다”며 “내부에서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업무라는 평가를 받아 승진하기도 어렵고 경력 개발 혜택도 받지 못하는 편”이라고 하소연했다.

재난 안전 관리 공무원의 전문성 향상을 위한 개선 방안. 그래픽 김현서 기자

재난 안전 관리 공무원의 전문성 향상을 위한 개선 방안. 그래픽 김현서 기자

김경우 부산대 공공정책학부 교수는 “재난 관리 공무원은 인사평가에서 형식적으로 일정 부분 가점이 있지만, 현장 업무 담당자는 적다고 느낀다”며 “방재안전직렬 공무원의 재난관리 전문성을 육성·관리하려는 정부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이들에게 보다 많은 권한이 주어져야 방재안전직렬 공무원의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재난 관련 업무가 다른 부처나 지방자치단체와 유기적 업무협조가 필요한데, 업무 권한이 적어 업무 협조가 어렵기 때문이다.

최호진 선임연구위원은 “권한 확대, 인사 가점, 승진지원 등 제도적 지원 시스템을 갖춰 재난 관리 부서가 선호부서로 자리매김해야 재난을 관리하는 공무원의 전문성 강화도 기대할 수 있다”며 “이태원 참사를 재난 관리 역량을 업그레이드할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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