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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릴까봐 무서워" 지옥철 된 퇴근길…한밤 노사협상 극적 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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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울 지하철이 노사 간 협상 타결로 파업 돌입 하루 만인 1일 오전 첫차부터 정상 운행된다. 서울교통공사와 양대 노동조합(서울교통공사노조·통합노조)은 30일 심야 협상에서 극적 합의에 도달했다. 노사는 30일 오후 8시쯤 서울 성동구 본사에서 임단협 본교섭을 재개했다.

이에 앞서 30일 퇴근시간 소셜미디어에는 “지하철, 지옥철이에요. 살려줘요” “떠밀려서 넘어질 것 같아. 무서워” “교통카드도 못 찍을 정도로 사람이 밀려 있어” 등 발 디딜 틈 없는 지하철과 역사 내부 소식을 전하는 글이 쏟아졌다.

실제로 사무실이 밀집한 2호선 강남역의 경우 퇴근시간인 오후 6시부터 플랫폼과 계단까지 사람이 들어차 개찰구를 지나가는 것 자체가 어려울 정도였다. 사정은 신도림역·충무로역 등 다른 주요 역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극심했던 혼잡은 오후 8시를 지나서야 서서히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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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 노조는 이날 오전 6시30분 파업에 돌입했다. 파업 소식을 전해 들은 시민들은 평소보다 출근길을 서둘렀다. 오전 7시쯤부터 서울역과 잠실역, 홍대입구역 등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역에는 평소보다 많은 시민이 몰렸다. “파업으로 열차가 늦게 와 지각할 것 같다”는 우려에서였다. 더구나 이날 서울의 아침기온은 영하 6.8도, 체감온도는 영하 12.5도까지 떨어졌다. 첫 한파 경보에 시민들은 두꺼운 외투에 목도리, 장갑 등으로 중무장했다. 경기도 오산에서 서울 종로구로 출근하는 고모(26)씨는 “파업한다고 해 지각할 것 같아 머리도 못 감고 나왔다”고 말했다.

지하철 파업이 시작된 이날 오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은 4호선 삼각지역에서부터 지하철 탑승 시위를 열겠다고 예고했고, 실제로 시위를 벌였다. 30대 직장인 여성 김모씨는 “교통공사도, 전장연도 다 각자의 권리를 찾겠다니 이해는 하겠다만 시민의 권리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지었다.

“대란까진 아니다”는 반응이 나왔던 출근길과 달리 퇴근길은 상황이 급변했다. 퇴근시간 승객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승하차가 지연됐고, 지하철 운행도 연달아 늦어졌다. 강남역에서 한 승객은 “열차 세 대를 보내고 나니 40분이나 지났다”며 버스를 타러 역사를 빠져나갔다. 대학생 이모(23)씨는 “다음 주부턴 시험 기간이라 걱정된다”고 말했다.

공사 측의 인력 감축 계획에 반발해온 양대 노조는 전날(29일) 노사 간 임금·단체협약 협상이 결렬되자 파업에 나섰다. 그러다 퇴근길 지옥철 논란이 불거진 30일 오후 7시 노사 양측은 본교섭을 재개하고 협상을 이어갔다.

민노총 간부 다녀간 뒤, 서울교통공사 노조 협상결렬 선언

 서울 지하철 1~8호선을 관리하는 서울교통공사 노조가 파업을 시작한 30일 충무로역. 퇴근시간대 열차 운행이 지연되면서 큰 혼잡이 빚어졌다. 승강장뿐 아니라 개찰구와 계단까지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들로 가득 찼다. 서울교통공사 노조의 파업은 2016년 9월 이후 6년 만이다. [연합뉴스]

서울 지하철 1~8호선을 관리하는 서울교통공사 노조가 파업을 시작한 30일 충무로역. 퇴근시간대 열차 운행이 지연되면서 큰 혼잡이 빚어졌다. 승강장뿐 아니라 개찰구와 계단까지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들로 가득 찼다. 서울교통공사 노조의 파업은 2016년 9월 이후 6년 만이다. [연합뉴스]

서울 지하철 파업은 박원순 전 시장 재임 때인 2016년 9월 이후 6년 만이다. 파업 중인 노조는 민주노총 소속 서울교통공사노조(조합원 1만200명)와 한국노총 소속 통합노조(조합원 2500명)의 연합체다.

앞서 지난 9월 공사 측은 업무 효율화 등을 통해 2026년까지 직원 1539명을 줄이는 방안을 제시했다. 노인 무임승차, 낮은 요금 등에 따른 재정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감축 대상은 공사 인원의 10%다. 사측은 “이 인원을 해고하는 게 아니라 자회사 이관 등 소속을 바꾸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통공사 부채 규모는 지난해 기준 6조6072억원이다. 당기순손실은 2019년 5865억원, 2020년 1조1137억원, 2021년 9644억원이다.

일각에선 노조가 7일째 파업 중인 화물연대에 힘을 실어 현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정치적’ 파업을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날 임금·단체협약 5차 본교섭이 마무리되지 못한 게 현정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위원장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불거졌다. 현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오후 4시40분 교통공사 본사에 와서 30분 정도 머물다 떠났다.

29일 오후 2시 5차 본교섭에서 사측은 “인력 감축안을 일정 기간 유보하겠다”는 대안을 구두로 제시했다. 이에 노조는 “구두가 아닌 문서로 달라”고 해 막힌 협상에 물꼬가 트이는 분위기였다. 이때만 해도 서울교통공사 제2노조인 통합노조는 사측 제안을 수용할 의사가 있었다고 한다. 교섭위원은 민주노총 8명, 한국노총 4명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협상은 오후 10시 넘어 결렬됐다. 사측 관계자는 “정회 후 협상장을 나갔던 노조위원 분들이 돌아오지 않았고, 현장에 있던 분들마저 갑자기 나가더니 ‘결렬’을 선언했다”고 전했다.

한국노총 소속 공사 노조 관계자는 “(우리보다) 민주노총 위원들이 (사측 안에) 반대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소속 공사 노조 관계자는 현 위원장 관련 의혹에 대해 “사실관계가 다르다”고 부인했다. 이어 “공사 안과 관련해 사측보다는 (공사에 출자금을 지원하는) 서울시 쪽에서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봤고, 우리가 오히려 현 위원장에게 지원을 요청한 것”이라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30일 “서울 지하철 파업은 정치적인 파업으로 개념 정의를 하고 싶다”며 “노조에서 표면적으로는 구조조정 철회 등을 내세우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지금 본격화하는 화물연대 파업과 배경으로 연결돼 있다는 게 서울시 판단”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공사 내 젊은 직원 중심인 ‘올바른노조’는 “명분이 떨어진다”며 파업에 동참하지 않았다. 올바른노조는 양대 노조의 인력 감축안 철회 주장에 반대하고 있다. 2018년 공사가 기존 협력·계약업체 소속인 승강안전문 관리나 구내식당·이발사·목욕탕·매점 등의 종사자 1285명을 공사 소속 일반직(정규직)으로 신분을 전환했는데, 이후 재정이 더 악화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송시영 올바른노조 위원장은 “전환 당시 능력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데다 전환 대상자 중 15%가량은 재직자와 친인척 관계였다는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1일 파업을 예고했던 대구지하철노조는 30일 대구교통공사와 막판 교섭에서 합의점을 찾고 파업을 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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