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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의 인프라] “70년대 공장법 고수하나? 노동분야선 진보가 수구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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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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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고용노동 관련 학계에서 그는 진보 진영의 좌장급으로 평가받는다. 그래서인지 일부 보수 정치인은 그를 ‘빨갱이’라는 극단적 표현으로 깎아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노동시장의 고비마다 등장해 민감한 법·제도 정비에 나서곤 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주52시간제 도입으로 산업현장이 어려움을 겪자 탄력근로제 확대로 숨통을 틔워준 것도 그다. 노사를 설득해 합의를 끌어내면서다. 이철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65)다.

그런 그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뒤에는 조용했다. 최근 그의 소식이 들려온 건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장관급)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면서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최종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개의치 않고 “내가 할 일이 있다”고 했다. 그를 아는 한 정치인은 “급격한 노동시장의 변화 국면에서 한국만 방치 상태로 놔둘 수 없다는, 일종의 학자로서의 사명감 같은 것”이라고 했다.

‘좌장급 진보학자’ 이철수 교수

선진국은 진보 정부가 노동개혁
한국 진보진영은 시대변화 외면
과반 노조가 대표성 독점 말아야
직무·부서 따라 부분대표제 인정을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9월 서울 중구 1928아트센터에서 MZ세대 노조 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 장관은 “근로시간 조정도 필요하지만, 3명 중 2명은 근로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없다고 답변해 현재 노동관련 제도를 바꿨으면 하는 바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사진 고용노동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9월 서울 중구 1928아트센터에서 MZ세대 노조 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 장관은 “근로시간 조정도 필요하지만, 3명 중 2명은 근로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없다고 답변해 현재 노동관련 제도를 바꿨으면 하는 바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사진 고용노동부]

그에게 “현 노동법을 어떻게 보느냐”고 했더니 그는 대뜸 “계급적 동질성에 기초한 것이다. 시대에 안 맞다”고 잘라 말했다. “안 맞으면 고쳐야 하는데, 그걸 가로막는 게 소위 말하는 진보·좌파진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노동개혁 반대는 기득권 지키기

어느 정부나 노동개혁이 화두다. 윤 정부도 다르지 않다.
“법·제도는 늘 시대에 뒤처지기 때문이어서 그런 것이다. 글로벌 시장이 크게 요동치고, 4차 산업혁명의 거센 물결로 근로 형태도 다양한 모습으로 출현하고 있다. 노동·경영환경이 급격히 바뀌는데, 법·제도는 공장시대에 쓰던 것 그대로니, 노동과 생산시스템이 삐걱댈 수밖에 없지 않은가. 노동개혁이라니까 거창해 보이는데, 따지고 보면 변화에 맞추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진영 논리를 떠나 모든 정부가 노동개혁을 얘기할 수밖에 없다. 변화에 못 따라가 나타나는 부작용을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진보 진영은 노동개혁이라면 저항하지 않는가.
“진보의 진은 ‘나아갈 진(進)’이다. 변화에 맞춰 걸어가야 한다는 뜻 아닌가. 그렇다면 변화를 거부하고 반기만 드는 행동을 진보라고 볼 수 있을까. 독일 등 선진국에선 진보·좌파 정부에서 노동개혁을 더 확실하고, 강하게 하지 않는가. 그런 면에서 노동에 관한 한 일부 진보 진영과 노동단체는 87년 체제를 답습하는 수구적 행태를 보인다. 거대한 전환의 시기에 아집으로 1970년대 공장법을 그대로 고수하려는 게 기득권만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노동개혁을 하려면 사회적 대화가 필요한데, 민주노총은 거부한다.
“민주노총이 대화를 꺼리는 이유는 그들에겐 대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대화하다 보면 논리와 내부 조직의 취약성이 드러난다. 그러니 투쟁이 효과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대화에 참여하지 않으면 그에 따른 권리도 누릴 수 없다는 걸 명확하게 인식하고,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탄력근로제를 확대한 뒤 공격을 많이 받았는데.(이 교수는 2019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장을 맡아 탄력근로제 확대와 그에 따른 노동자 건강권 확보 방안 등에 대한 노사정 합의를 끌어냈다. 이후 진보 진영으로부터 ‘근로기준법을 누더기로 만든 개악’ 등의 비판을 받았다.)
“당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에서도 그런 소리를 하더라. 민변에 따졌다. ‘과로사를 조장한다고 비판했는데, 합의문의 어느 내용이 그런가. 합의문을 읽어보기는 했는가’라고. 대답을 제대로 못 하더라. 그래서 ‘민변에 대한 우호적 시선을 이 시간부터 거둔다’고 한 적도 있다. 획일적 제도로 인해 산업현장의 숨이 막히면 그 숨통을 터줘야 하지 않는가. 밀어붙이면 근로자에게 무조건 좋은 것인가. 건강을 챙기기 위해 노사정이 어렵게 마련한 건강권 확보 방안은 그들 눈에만 보이지 않는 것인가.”

노사관계에 승자·패자 없어

이철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그는 노동분야 진보 학계에서 좌장급으로 평가받는다. 그런 그가 "노동시장의 변화에 기득권 지키기로 일관하는 진보진영은 수구세력으로 전락했다"고 평했다.

이철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그는 노동분야 진보 학계에서 좌장급으로 평가받는다. 그런 그가 "노동시장의 변화에 기득권 지키기로 일관하는 진보진영은 수구세력으로 전락했다"고 평했다.

그렇더라도 노조가 반대하면 임금체계 개편이나 근로시간 개선이 어렵지 않겠는가.
“전통적인 노사 이분법이 안 통하는 시대다. 노조가 현실에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때 다른 대안은 반헌법적 발상으로 비난받아야만 하는가. 노조가 대표적인 단체교섭 담당자라는 점은 맞지만, 그렇다고 노조만이 단체교섭의 담당자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독일의 종업원 평의회처럼 노조가 아니라도 대표성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노조 조직률이 15%도 안 되는 상황에서 이른바 대표없는 노동 집단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과반수 노조라 하여 왜 비조합원의 발언권을 봉쇄해야 하는지에 대한 원리적 정당성을 찾기 힘들다. 과반수 노조가 대표성을 독점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재검토가 시급하다. 때로는 직무나 부서의 성격에 따라 부분별 의사를 존중하는 제도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들에게 맞는 임금체계나 복지제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윤 정부의 노동정책을 두고 논란도 많다.
“노동정책에는 늘 논란이 있게 마련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윤 대통령은 취약계층에 대한 연민의 정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대우조선해양 사태 당시 곧바로 원·하청 이중구조 개선을 직접 지시한 것도, 누가 써 준 것이 아니라 그의 철학이다. 그런 철학 토대 위에서 노동정책의 개선이 이뤄지길 희망한다.”

이 교수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얘기했다. “노사관계 또는 노사 협상을 승·패로 보는 것 자체가 갈라치기다. 노사관계에는 승패가 없다. 합리와 상식, 보편타당성이 있을 뿐이다. 그게 기준점이 되면 모두가 승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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