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선2035

김건희 여사의 사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성지원 기자 중앙일보 기자
성지원 정치부 기자

성지원 정치부 기자

수습기자 시절 동기들 사이에서 ‘사진 찍는 법’이 화두가 된 적이 있다. 사건 현장에 급파된 수습기자들은 급한 대로 사진을 직접 찍어 기사에 쓰는 일이 적지 않았다.

때론 열 줄 글보다 한 장 사진의 반향이 컸다. 사건 현장, 집회 현장을 잘 담은 사진이 때로는 변화를 불러왔다. 동기끼리 “이 각도가 낫냐”, “너무 어둡지 않냐”며 찍은 사진을 서로 봐 주곤 했다. 반드시 휴대폰은 가로로 들고 찍어야 하고, 카메라 줌을 당기기보다는 직접 다가가 찍어야 한다는 것도 익혔다. 화질이 좋지 않은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기사에 넣었다가 “원본 맞느냐”는 선배의 질문에 주말에 휴대폰을 바꾸는 열정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현장에선 어떻게 해도 좋은 사진 찍는 법을 알 수 없었다. 주로 우는 사람이 있는 현장이었다. 터전이 붕괴돼서, 가까운 사람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서, 억울해서 우는 사람 앞에서 이 아픔의 제삼자인 양 카메라를 들고 구도를 잡을 용기가 잘 나지 않았다. 때론 그런 사진도 담담히 찍어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이 사진이 대체 세상의 무엇을 나아지게 할까’ 망설임이 앞섰다.

김건희 여사가 10일 이대목동병원 중환자실에서 이태원 참사로 뇌사 판정을 받은 국군 장병의 장기기증을 결정한 가족들을 위로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김건희 여사가 10일 이대목동병원 중환자실에서 이태원 참사로 뇌사 판정을 받은 국군 장병의 장기기증을 결정한 가족들을 위로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경비원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한 오피스텔에서 동료 경비원이 근무 중인 경비실을 찾아 용기 내 휴대폰 카메라를 꺼낸 적이 한 번 있다. 카메라도, 인터뷰도 조용히 손으로 무른 그 동료는 그날 밤늦게까지 현장에 있는 내게 바나나를 건네며 고생 많다 했다. 기사에 쓸 사진은 없었지만, 앞으로 이런 기사를 쓰지 않게 해달라는 그 날의 일기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였다.

지난 한 달간 김건희 여사의 사진 세 묶음이 화제가 됐다. 11월 2일, 대통령실은 이태원 참사로 사망한 고등학생의 빈소에서 유족을 안고 위로하는 김 여사의 사진을 공개했다. 11월 10일, 대통령실은 병원 중환자실에서 이태원 참사로 뇌사 판정을 받은 국군 장병의 장기 기증을 결정한 가족들을 위로하며 우는 김 여사의 사진을 공개했다. 11월 12일, 대통령실은 캄보디아에서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소년을 안고 위로하는 김 여사의 사진을 공개했다. 김 여사의 표정이 잘 드러난 잘 찍은 사진들이었지만, 구태여 그 사진 공개가 유족에게, 혹은 캄보디아 소년에게 어떤 위로가 됐는지는 알 수 없었다.

사진을 찍는 것은 구도를 잡는 것이며, 구도를 잡는 것은 무언가를 배제하는 것이다. 예술평론가 수전 손택의 말이다. 2일과 10일 사진 너머에 아직 참사에 적극적 책임을 지지 않은 정부가, 12일 사진 너머에 대선 때 각종 구설에 ‘조용한 내조’를 말했던 김 여사의 약속이 배제돼 있다. 어떤 것이 위로가 되는, 잘 찍은 사진인가. 사진 찍는 법을 아직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