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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마스크맨 김태영 “마스크는 투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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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코뼈 골절상을 입어 타이거 마스크를 썼던 김태영. 그는 자신처럼 마스크를 쓰고 경기에 나서는 손흥민의 투지를 칭찬하며 격려했다. 강정현 기자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코뼈 골절상을 입어 타이거 마스크를 썼던 김태영. 그는 자신처럼 마스크를 쓰고 경기에 나서는 손흥민의 투지를 칭찬하며 격려했다. 강정현 기자

 “벌써 20년이 지났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팬들의 그 함성이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게 맴돌거든요.”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타이거 마스크’를 쓰고 그라운드를 누비던 선수가 있었다. 축구 대표팀 수비수 김태영(52·전 천안시 축구단 감독)이다. 50대의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당시를 회고했다. 카타르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원조 마스크맨 김태영을 만나 후배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들어봤다.

김태영은 한·일 월드컵 당시 포르투갈(조별리그), 이탈리아(16강), 스페인(8강) 등 세계적인 강호들의 공격수를 상대로 철통 방어를 펼치며 한국의 ‘4강 신화’에 일조했다. 김태영은 “월드컵 첫 경기를 일주일 앞둔 지금이 선수들에겐 가장 힘든 시기”라고 밝혔다.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타이거 마스크’를 쓰고 그라운드를 누비던 김태영. [뉴스1]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타이거 마스크’를 쓰고 그라운드를 누비던 김태영. [뉴스1]

그는 “예민한 선수들은 동료와 충돌하면 폭발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2002년 첫 경기였던 폴란드전을 앞두고 훈련하다 선배였던 (황)선홍이 형과 주먹다짐까지 할 뻔했다. 내가 실전처럼 수비하다 깊은 태클을 했는데 승부욕이 강한 선홍이 형이 피하지 않아 분위기가 과열됐다”며 “당시 선홍이 형과 나는 팀의 최고참급이었는데, 박항서 코치님이 중재해서 내가 사과하는 것으로 사건이 일단락됐다”고 설명했다.

김태영은 “그러나 첫 경기를 잘 풀어낼 경우엔 2, 3차전을 수월하게 치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태영은 “폴란드전을 2-0으로 이기면서 선수들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미국, 포르투갈을 상대로도 대등한 경기를 할 만큼 상승세를 탔다”고 밝혔다.

카타르월드컵에서 한국은 우루과이, 가나, 포르투갈과 함께 H조에 편성됐다. 첫 경기는 오는 24일 우루과이전이다. 김태영은 “당시 폴란드는 유럽 예선에서 도깨비 팀이라고 불릴 만큼 공격력이 좋은 팀이었다. 이번 월드컵에서 맞붙을 우루과이도 닮은 점이 많다. 후배들이 긴장하지 않고, 제 실력만 발휘한다면 충분히 넘을 수 있는 상대”라고 주장했다.

김태영은 한·일 월드컵에서 ‘타이거 마스크’로 불렸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상대 공격수 크리스티안 비에리의 팔꿈치에 안면을 가격당해 코뼈가 함몰되는 골절상을 당했다. 그는 나흘 뒤 스페인과의 8강전에 붉은색 안면 보호 마스크를 쓰고 나왔다. 김태영은 “아무도 뛰라고 강요하지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진통제를 맞고 마스크를 썼다. 월드컵 무대에서 뛸 수 있다면 통증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경기에 출전했다. 아마 지금 (손)흥민이도 그런 심정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영은 “내게 마스크는 투지였고, 투지는 마스크였다”고 덧붙였다.

한국 대표팀 주장 손흥민은 지난 2일 마르세유(프랑스)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상대 선수와 공중볼을 다투다 충돌해 안면 골절상을 당했다.

김태영은 “지금 흥민이의 마음을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안면 부위는 수술한 이후 심한 두통이 밀려온다. 그런데도 월드컵에 뛰겠다는 각오를 밝힌 손흥민이 대단하다. 그런 각오라면 곧 회복해서 그라운드에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영은 프로팀에서도, 월드컵에서도 등 번호 7번을 달고 뛰었다. 손흥민도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7번을 달고 뛴다. 손흥민은 여러모로 20년 전 김태영과 닮은 꼴이다. 김태영은 “20년 전 타이거 마스크를 쓴 한국의 7번이 세계적인 골잡이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고 자부한다. 올해 카타르월드컵에선 한국의 7번 흥민이가 마스크를 쓰고 골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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