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추곡/농민 뜻 반영폭 놓고 진통/수매가­양 결정 당정협의 줄다리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작년 양 만큼” 당 “절반 이하로” 정/평민 등원 후 국회서 격돌예상
정부와 민자당이 추곡수매가와 수매량을 놓고 진통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목소리를 내지 않던 농민들이 정부ㆍ여당의 미온적 태도에 대해 집단행동으로 반발하고 나섬으로써 추곡수매 문제는 예년에 볼 수 없던 심각한 양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추곡수매에 따른 당ㆍ정ㆍ농민간의 갈등은 87년 이후 계속되는 연례행사이기는 하지만 금년들어 유난히 심각한 양상으로 확대되는 것은 정부측이 전체 경제운영계획상 한자리 수 물가억제,재고미와 보관창고 능력의 한계 등을 이유로 들어 수매가와 수매량을 작년보다 급격히 줄이려는 데서 비롯됐다.
정부측이 내놓은 금년도 추곡수매가는 ▲통일벼 3%,일반벼 6∼8% 인상 ▲수매량은 통일벼 4백50만섬을 포함 6백만섬으로 이는 통일벼 12%,일반벼 14% 인상에 1천2백만섬을 수매했던 지난해와 비교하면 수매가와 수매량 모두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
정부측은 이같은 급격한 감축정책을 펼 수밖에 없는 이유로 ▲기존의 쌀 재고가 이미 전 국민의 4개월반 식량에 해당하는 1천3백12만섬에 달했고 ▲수요가 거의 없는 통일쌀이 1천만섬을 상회,재고의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정부양곡 보관창고 능력이 이미 한계에 달했고 ▲양곡 1백만섬 저장비가 연간 3백40억원이 소요되는만큼 1천만섬을 수매할 경우 저장비로만 3천4백억원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또 페르시아만사태ㆍ수출부진 등으로 인해 국가경제가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고 그동안 수매가와 방출가의 차이로 인한 양특적자가 89년말까지 3조7천억원에 이르며 이중 2조9천억원을 일반회계에서 부담할 만큼 재정적 부담이 엄청나고 물가에 미치는 파급효과 등을 따져 보더라도 추곡수매정책의 과감한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민자당은 산지 쌀값이 수매가에 못 미쳐 농민들의 추곡수매에 대한 압력이 가중되고 있고 특히 우루과이라운드협상에 따른 심리적 불안요인까지 겹쳐있는만큼 수매가는 다소 융통성을 발휘하더라도 수매량 만큼은 지난해 수준인 1천만섬 이상을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대신 일반벼와 통일벼의 가격차이를 지난해 2%에서 5% 이상 늘려 정부의 재정부담을 줄이자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일반벼 인상률은 작년 수준보다 약간 못 미치는 12∼14% 선에서 유지하되 통일벼는 지난해 절반수준인 5∼6%만 인상하면 평균가중치가 한자리 수를 넘지 않으므로 정부측 입장도 세울 수 있고 재정적 부담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13일 열린 당정회의에서 정부측은 일반벼와 통일벼의 가격차를 5% 이상 확대하는 데는 찬성하되 수매량은 양곡유통위의 건의수준인 7백50만섬을 마지노선으로 제시하며 난색을 표명했다. 이 과정에서 『여당이 설득되지 않는 추곡수매가 동의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킬 수 있겠느냐』 『그렇지 않아도 인기가 없는 민자당을 전농민의 적으로 만들려느냐』는 등의 고성이 오가는 심한 진통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자당 의원들이 현지에서 맞닥뜨리고 있는 농민들의 불만은 더욱 크다.
이들은 그동안 정부가 미곡위주 정책,특히 증산제일주의 정책을 펴 오다가 공급과잉이 되자 이제 수매량을 줄이고 쌀값을 내리겠다는 것은 일관성 없는 태도라고 비난하고 있다.
농촌의 구조조정을 장기간 추진해 농촌이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는 정부의 보조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특히 물가안정을 이유로 내세워 쌀값부터 잡겠다는 것은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일뿐 아니라 추곡수매정책을 갑자기 바꾸면 가뜩이나 어려운 농촌현실을 파탄지경으로 몰고갈 우려가 있다는 것이 농민들의 항의다.
최근 농민을 대상으로 한 진보적 그룹의 영향력확대 등으로 농민들의 정부 불신은 더 높아지고 있는 형편이다.
앞으로 평민당이 등원하게 되면 그들은 농촌중심의 호남지역을 대변해야 하므로 추곡수매에 대한 압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여 앞으로 국회심의과정에서 또 한차례 진통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문일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