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한·미 공중연합훈련인 '비질런트 스톰(Vigilant Storm)' 연장에 즉각 반발한 배경을 놓고 "'최고존엄'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한·미가 훈련 기간 연장을 결정한 직후인 3일 오후 군서열 1위인 박정천 노동당 비서 명의의 담화를 낸 데 이어, 즉각 동해상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스커드-C 추정) 3발을 쏘고 80여 발의 포병사격을 진행하는 등 과민 반응을 보였다.
군 당국에 따르면 이번 훈련엔 공군의 F-35A 스텔스 전투기, F-15KㆍKF-16 전투기, KC-330 공중급유기 등 140여대와 미군의 F-35B 스텔스 전투기, EA-18전자전기, U-2 고고도 정찰기, KC-135 공중급유기 등 100여대 등 총 240여대가 참여하고 있다.
반면 북한의 주력은 수십 년 된 노후 전투기다. 한·미가 보유한 최신예 항공전력에 맞대응할 수 없는 대표적 불균형 전력으로, 북한 입장에선 항공전력은 가장 큰 위협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이 때문에 북한은 유독 공군 전력을 동원한 한·미의 움직임에 대해선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비질런트 스톰 훈련 중이던 지난 2일 오후 북한이 동해상으로 지대공 미사일을 발사한 것도 공군 훈련에 대한 극도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란 평가다. 박용한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은 4일 통화에서 "현실적으로 북한이 공중전에서 한·미에 우위를 점하기는 어렵다"며 "이 때문에 북한이 미사일을 통해서라도 대공 방어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려 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북한은 미국 국방부가 지난주 핵태세검토보고서(NPR)에서 '김정은 정권의 종말'을 명시한 데 이어, 3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열린 제54차 한·미 안보회의(SCM) 공동성명에서 처음으로 "김정은 정권의 종말"이란 문구가 공식적으로 언급된 것에 대해서도 강력히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은 이날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전술핵을 포함, 미국이나 동맹국, 우방국에 대한 북한의 어떠한 핵 공격도 용납할 수 없다"며 "이는 김정은 정권의 종말을 초래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은을 직접 겨냥한 공식 경고에 가까운 표현이다.
SCM 공동성명은 한·미 동맹의 현안을 결산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담은 사실상의 '외교문서'다. 이러한 공식 성명에 '김정은 정권의 종말'을 명시한 배경에 대해 외교가에서는 "북한에 가장 위협을 줄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배치한 면이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결사옹위'하는 것을 국가를 지키는 것과 동일시하는 북한에게 김정은을 명시한 성명 자체가 절대적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최근 연이은 북한의 도발에 대한 한·미의 대응 과정에서도 반영됐다는 해석도 있다.
군은 지난 2일 북한이 북방한계선(NLL) 이남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에 대응해 F-15K, KF-16 전투기를 출격시켜 슬램(SLAM)-ER 등 공대지미사일 3발로 NLL 북쪽 지점을 '정밀사격'했다. 슬램-ER의 사거리는 280㎞다. 속초 상공에서 발사하더라도 김정은이 있는 평양의 지휘부나 군사시설을 정밀 타격할 수 있다.
미국 역시 최근 일본 오키나와 가데나 기지에 F-22 '랩터'를 순환 배치했다. 또 '침묵의 암살자'라고 불리는 무인 공격기(드론) MQ-9 '리퍼'를 운영하는 미군 319원정정찰대대(ERS)를 일본 가고시마현에 있는 가노야 항공기지에 재출범시켰다. 모두 김정은에게 직접적인 위협될 수 있는 무기다.
북한은 실제로 최근 김정은의 경호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인 스팀슨센터의 마이클 매든 객원연구원은 지난 8월 위성사진을 분석한 보고서에서 "북한이 참수작전 등을 우려해 김 위원장의 집무실(15호 관저) 일대에 지하시설을 확충하는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은 또 지난 9월에 채택한 '핵무력 정책' 법령에 "국가핵무력에 대한 지휘통제체계가 적대세력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하는 경우 적대세력을 괴멸시키기 위한 핵타격이 자동적으로 즉시에 단행된다"고 명시했는데, 이는 김정은에 대한 위협이 고조될 경우 핵을 자동으로 발사한다는 의미다. 김정은에 '참수작전' 등이 실제로 발생할 가능성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위원은 "과거에도 북측에 '한·미가 수뇌부 제거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비공식 채널을 통해 명시하면서 김정은을 두렵게 만드는 압박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정보당국의 보고서가 정식 보고된 적이 있었다"며 "최근 북한 도발의 이면에는 '최고존엄'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작용한 면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