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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푸틴의 ‘한·러 관계 파탄’ 위협 가당찮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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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7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열린 발다이 클럽 회의에서 발언 중인 푸틴 러시아 대통령. [TASS=연합뉴스]

27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열린 발다이 클럽 회의에서 발언 중인 푸틴 러시아 대통령. [TASS=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한국을 향해 상식 밖의 위협 발언을 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7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전문가 모임 ‘발다이 클럽’ 회의 연설에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탄약을 제공하기로 결정한 것을 알고 있다”며 “그리되면 한·러 관계는 파탄 날 것”이라고 말했다. 40여 개국 전문가 앞에서 한국을 콕 집었다.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뜬금없는 언동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주권과 한국민의 자존심을 훼손하는 대단히 부적절한 외교적 결례다.

우리 정부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서방의 요청에도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러시아의 침공 피해국인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연대를 표명하면서도 한반도 안보 상황 등을 신중히 고려한 조치였다. 그간 헬멧, 천막, 모포 등 비무기체계 군수물자와 인도적 차원의 의료물자를 지원했다.

푸틴은 또 “러시아가 (군사 분야에서) 북한과 협력을 재개하면 한국은 어떤 반응을 보일 건가. 당신들은 기쁘겠나”라고 했다. 연설 뒤 질의응답 과정에선 “북한이 미국과 핵 프로그램 관련 합의에 도달했으나 미국이 입장을 바꾸고 제재를 가했다”고 주장했다. 국제사회를 기만하며 핵미사일 개발과 도발을 일삼은 북한을 옹호하고 한국에 대해선 북핵 카드로 압박한 셈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8개월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는 폴란드에 대한 한국의 무기 수출을 경계하고, 우회로라도 지원하지 못하도록 사전 경고하는 차원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주권국에 대한 부적절한 위협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출근길에 이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살상 무기나 이런 것을 (우크라이나에) 공급한 사실이 없다. 그렇지만 (공급 여부는) 어디까지나 우리 주권의 문제”라고 단호하게 밝힌 것은 시의적절했다.

지난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국제사회를 혼돈으로 빠뜨린 건 다름 아닌 푸틴이다. 8개월 동안 참혹상이 펼쳐졌다. 우크라이나의 자포리자 원전을 점거하고 전술핵 사용 가능성을 거론한 푸틴은 이 회의에선 “러시아는 핵무기 사용에 대해 절대 언급한 적이 없다”고 강변했다. 국제사회는 일치단결해 우크라이나와 함께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러시아가 이성을 찾아 전쟁을 멈추길 촉구한다. 푸틴의 이번 발언은 향후 북·중·러 대 서방으로 확고히 재편되는 국제질서를 염두에 두고 한국을 길들이려는 차원일 수 있다. 우리 정부의 지혜롭고 정교한 외교적 대응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