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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 청년은 설거지도 무섭다"…고독사만큼 무서운 '고독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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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 7일 서울시 동작구 서울여성프라자에서 열린 청년정책 DIY 프로젝트 ‘청년정책 공작소’에 참석한 청년들이 ‘1인 가구’를 주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 국무조정실]

지난 7일 서울시 동작구 서울여성프라자에서 열린 청년정책 DIY 프로젝트 ‘청년정책 공작소’에 참석한 청년들이 ‘1인 가구’를 주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 국무조정실]

청년정책 공작소② : 1인 가구

박모(31)씨의 20대는 온통 은둔생활이었다. 학창시절 당한 집단 괴롭힘 등 좋지 않던 경험이 세상과 단절을 가져왔다. 집 밖에 나오지 않으면서 무기력증은 심해졌고 이를 닦는 것도, 심지어 청소·설거지도 그에겐 ‘공포’였다고 한다. 자격증을 7개씩 따며 세상 밖으로 나가길 시도했지만, 사람이 무서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생활비는 부모에게 손 벌렸다.

하지만 박씨는 지난 5월 우연한 계기로 은둔청년 지원회사인 ‘안무서운회사’와 인연이 닿았다. 현재는 셰어하우스에서 다른 청년들과 공동생활을 하며 조금씩 회복 중이다. 박씨는 “지금은 설거지가 귀찮을 수는 있어도 적어도 무섭진 않다”고 말하는 등 달라졌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1인 가구 세 집 중 한 집은 '청년' 

홀로 살아가는 청년 ‘고독생’ 문제가 심상치 않다. 은둔까진 아니어도 고립감을 느끼는 청년이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세심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당부한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전체 주민등록인구 중 1인 가구는 970만3699가구로 전체의 41%에 달한다. 1인 가구 중 20~30대 청년이 35.9%(2020년 기준)를 차지한다. 세 집 중 한 집이 청년세대인 셈이다. 이들은 비자발적 이유로 홀로족이 됐다. 여성가족부의 ‘2020 가족실태조사’를 보면 20대의 70%, 30대의 58.5%가 ‘학업’과 ‘직장’을 이유로 1인 가구가 됐다고 답했다. ‘혼자 살고 싶어서’라고 응답한 비율(20대 19.9%, 30대 25.8%)을 크게 웃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주거·미래 불안에 우울 위험 높아

문제는 청년들이 상대적으로 다른 연령대에 비해 외로움이나 불안 등 고립감을 더 느낀다는 점이다. 지난해 7월 발표된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울 위험군 중 20대(24.3%), 30대(22.6%)는 전체 평균(18.1%)을 넘어섰고, 극단적 선택을 생각했다는 비율도 20대(17.5%), 30대(14.7%)가 다른 세대(평균 12.4%) 대비 높은 상황이다. 청년세대의 사회적 관계 단절이 심각한 상황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단 의미다.

실제 1인 가구 비중이 높은 2030 청년들은 혼자 사는 삶에 대한 어려움을 많이 토로하는 게 현실이다. 지난 7일 국무조정실이 개최한 청년정책 DIY 프로젝트 ‘청년정책 공작소’엔 100여 명의 청년이 모여 ‘1인 가구’를 주제로 한 현실적인 어려움을 생생하게 전했다.

"취미, 대화 등 교류 창구 있어야"  

20대 청년 A씨는 “타지에 취직해 혼자 사는데 점점 외로움이 커진다”며 “주거비 등 경제적 상황까지 여의치 않아 부담감이 크다”고 말했다. 또 다른 청년 B씨는 “회사 사정이 점점 나빠져 노후에 뭘 해야 할지, 인생 계획은 어떻게 세워야 하나 고민이 많다”며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 범죄나 고독사 뉴스를 보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청년정책 공작소에 참석한 청년들은 고독감을 해소하고 정서적인 안정감을 형성할 수 있게 하려면 1인 가구를 위한 ‘커뮤니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화하고 물물을 교환하는 등 생활 전반에서 교류할 수 있는 창구를 말한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정재욱 도시혁신그룹 무브먼트 대표는 “1인 가구를 위한 정책이나 공간을 만들 땐 지역 내에서 다양한 세대, 직업, 공간이 서로 연결되는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며 “그래야 이들이 고립되지 않고 폭넓게 활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좋은 공간이 있어도 사람이 없으면 무의미하고, 콘텐트가 있어도 공간과 이용하는 커뮤니티가 없으면 시너지를 내기 어렵다”며 “공간-콘텐트-커뮤니티의 조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전문가들은 청년층의 고독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거와 세제, 일자리, 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들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세심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송경원 국무조정실 청년정책조정실장이 정부의 청년정책 방향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국무조정실]

송경원 국무조정실 청년정책조정실장이 정부의 청년정책 방향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국무조정실]

"일자리·복지 등 다각적 검토를"

유경한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많은 청년이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스스로 고립돼 간다”며 “청년세대의 외로움을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서는 통계 자료에 나타나는 숫자를 분석하는 것 이상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유 교수는 “어떤 정책을 만들기에 앞서 청년을 둘러싼 사회·정치·경제·문화적 환경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가 선제 돼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상담코칭학 교수는 “외로움으로 세상을 등진 청년들의 숙소에서 취업 관련 서적이 발견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며 “청년을 노동력을 제공하는 자원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이 개성을 지닌 인격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문제 해결의 시작점이 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역시 2030 청년층을 위한 정책 대안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내년도 예산안에 역세권 청년주택 등 1인 가구 청년을 지원하는 정책을 담았다. 국무조정실 청년정책조정실과 청년정책조정위원회를 통해 정부와 지자체의 청년정책을 중점 관리할 계획이다.

송경원 국조실 청년정책조정실장은 “정부는 종합적으로 청년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속도감 있게 이행하고자 한다”며 “또 청년의 목소리를 생생히 듣고 반영하기 위한 참여제도를 활성화하는 것은 물론 정책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역량 기반 마련에도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청년정책 공작소의 세부 일정과 주제, 참가 신청방법은 청년포털(2030.go.kr), ‘청년정책 사용설명서’ SNS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중앙일보·국무조정실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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