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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1200명 동원 '촛불' 외쳤다…원내·외 동시 투쟁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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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앞 야외 계단에서 ‘민생파탄ㆍ검찰 독재 규탄대회’를 열고 “국민을 믿고 오로지 국민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싸우자”고 외쳤다. “우리 국민은 가녀린 촛불을 들고 그 강력해 보이던 정권까지 끌어내린 위대한 국민 아니냐”며 한 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불을 지핀 ‘촛불 집회’가 이 대표의 입에서 나온 건 지난 24일 검찰의 민주당 중앙당사 압수수색 이후 이틀만이다. 정치권에선 “조여오는 검ㆍ경 수사에 조급해진 이 대표가 장외 투쟁에 돌입하려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26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민생파탄,겸찰독재 규탄대회'에서 이재명 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26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민생파탄,겸찰독재 규탄대회'에서 이재명 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김대중ㆍ노무현 묵념으로 시작해 “검찰 독재 막자”로 마무리

전날 본청 안 로텐더홀에서 규탄대회를 연 이 대표는 이날 야외로 장소를 옮겼다. 이 대표 곁엔 169명의 민주당 의원과 보좌진, 전국의 지역위원장 등 약 1200명(민주당 추산)이 함께했다. 국회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이래, 국회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운집한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국민의례와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묵념으로 막을 연 행사에서 이 대표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지금 정부ㆍ여당은 상대방을 압박하고 무력으로 지배하고 자신들의 이익에만 급급하다”며 “민생 파탄과 국가적 위기를 외면하고, 국가 역량을 야당 탄압과 정치 보복에 허비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소리쳤다.

26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민생파탄,겸찰독재 규탄대회'에서 이재명 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26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민생파탄,겸찰독재 규탄대회'에서 이재명 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이어 “역사와 국민의 심판은 결코 피할 수 없다는 진리를 잊지 말길 바란다”며 “선배ㆍ동료 의원, 당원동지 여러분 함께 힘을 모아 저 정권의 폭력을 이겨내자”고 외쳤다. 그의 발언은 대중연설처럼 군데군데 “참으로 한심한 정권 아닙니까”, “야당 말살을 위한 정쟁이 중요합니까” 같은 의문문이 포함됐고, 그럴 때마다 참석자들도 “아닙니다”를 외치며 호응했다.

박홍근 원내대표의 연이은 투쟁 발언 등 총 40여분간 이어진 행사는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의 검찰 독재와 공안 통치를 막겠다”(박성준 의원)는 사회자의 말과, 이에 호응하는 청중의 ‘와’ 함성으로 끝이 났다. 이 대표는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인사했지만, ‘장남이 도박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는 기자들의 질문엔 답하지 않고 떠났다.

원내ㆍ외 병행 투쟁 돌입?…당내 “‘싸우면서 일하자’에 이견 없다”

민주당에선 이날의 행사를 두고 “이 대표가 장외로 나가기 위해, 지지층을 먼저 움직이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 대표 측 관계자는 “당장 계획은 없다”면서도 “장외 투쟁은 언제나 야당이 쥐고 있는 카드”라고 말했다. 이미 김용민ㆍ안민석 의원 등 일부는 개별적으로 윤 대통령 퇴진 집회에 참석하는 등 어느 정도 움직임이 가시화된 상태다.

다만 장외 투쟁을 하더라도 ‘원내ㆍ외 병행 투쟁’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과반 의석의 이점을 살려 원내에서 충실히 활동하되, 장외에서도 대정부 투쟁을 벌이자는 것이다. 김성환 정책위의장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장외 투쟁을 해야 할 시기이지만, 다수 의석을 가진 야당으로서 국회를 방기할 수도 없다”며 “그래서 원내ㆍ외 병행 투쟁에 대한 당내 공감대가 매우 넓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원내ㆍ외 병행 투쟁을 한 적 있다. 2010년 이명박 정부 ‘청와대 대포폰’ 논란 때의 ‘주국야서(낮에는 국회에서 일하고, 밤에는 서울광장에서 투쟁)’가 대표적이다. 또 2013년 박근혜 정부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땐 국회에 ‘24시간 비상국회 운영본부’를 차려 전병헌 원내대표가 지켰고, 서울 시청 앞엔 천막당사를 설치해 김한길 대표가 직접 투쟁했다.

당 고위 관계자는 “2010년이나 2013년 방식 등 여러 방안 중 아직 확정한 건 없다”면서도 “당내에 원내ㆍ외 병행 투쟁을 하자는 것만큼은 이견이 없다”고 말했다. 전날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비이재명계인 김영배 의원조차 “차차 나가야 할 것 같다”고 말한 것처럼, 계파로 인한 시각차가 크진 않다는 것이다.

현실적 동력 부족…당 일각 “나가면 돌아오기 힘들다”

다만 현실적인 투쟁 동력이 크지 않다는 점은 당내 고민거리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외교학)는 “과거 장외로 나갔을 땐 명분이 있어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며 “지금은 이재명 방탄 이미지가 큰데, 일반 대중이 거리로 나와 동조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당내에서도 “장외 투쟁을 하더라도 성과를 장담하기 힘든 데다, 다시 돌아오려면 또 다른 명분이 필요하다. 황교안 대표의 삭발과 전광훈 목사의 집회 이미지만 남긴 2019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장외 투쟁 꼴을 우리가 겪을 수 있다”(지도부 초선 의원)는 우려가 있다.

2019년 9월 16일 당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반발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2019년 9월 16일 당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반발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정치학)는 “장외 투쟁만 하든 원내ㆍ외 병행 투쟁을 하든 장외 집회에 한 번 나서는 순간 여권은 자극적인 장면만 골라 ‘민주당이 국회를 포기했다’는 공세를 펼 것”이라며 “민주당은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단 생각을 내려놓고, 신중히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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