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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후남의 영화몽상

부산국제영화제의 참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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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후남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이후남 문화선임기자

이후남 문화선임기자

‘영화의 바다’라고 하면 어느새 자동으로 부산이, 부산국제영화제가 떠오른다. 전 세계 이름난 영화제 개최지 중에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가 부산 혼자일 리 없는데도, 출범 초부터 30년 가까이 부산영화제가 이 멋진 수사를 독점하다시피 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소리는 못 들어봤다.

일례로 ‘기생충’에 황금종려상을 안겨줬던 칸영화제 역시 매년 프랑스 남부 해변 도시 칸에서 열린다. 한데 칸영화제에 가보면 ‘영화의 바다’라고 하기가 망설여진다. 이 영화제는 전 세계 주목할 만한 영화를 선별해서 초청하는 높은 안목으로 무척 유명하지만, 정작 일반 관객이 이를 볼 수 있는 참여의 문호는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평론가나 기자, 또 영화를 사고파는 필름 마켓 참가자들을 포함한 영화계 관계자들이 아니고는 영화의 바다를 헤엄치기는커녕 발가락을 담그기도 쉽지 않은 곳이다.

배우 량차오웨이의 오픈 토크.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배우 량차오웨이의 오픈 토크.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반면 부산영화제는 일반 관객의 뜨거운 참여 열기를 떼어 놓고는 상상하기 힘들다. 한국에서 사상 처음 생긴 영화제가 출범 첫해부터 속칭 대박을 터뜨린 힘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영화제 개막 전부터 티켓 예매 전쟁을 치르고, 관람 스케줄을 빼곡하게 짜고, 많게는 하루 서너편 씩 영화를 보러 다니는 것은 해마다 부산영화제에서 흔하게 확인하는 관객들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올해 부산영화제는 3년 만에 만끽하는 ‘영화의 바다’였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거리두기로 지난해에는 객석이 만석이라야 절반만 찼을 뿐이다. 반면 올해는 코로나 이전을 떠올리게 하는 예년의 활력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영화의전당을 비롯해 행사장 주변은 지난해와 달리 인파가 꾸준히 이어졌다. 특히 객석이 가득 찬 것은 올해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이자 이번 영화제 최고 스타로 꼽히는 량차오웨이(梁朝偉)의 오픈 토크 같은 굵직한 행사만이 아니었다. 신인 감독들의 첫 장편을 포함해 영화제 첫 주말에 본 상영작 대부분이 관객들로 빼곡했다.

관객도 이런 모습이 인상적인데, 하물며 영화를 만든 감독과 배우라면 말할 나위가 없다. 이번 영화제에 첫 장편영화 ‘빅슬립’을 선보인 신인 김태훈 감독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관객과의 대화’ 첫머리에서 대뜸 “제가 청심환을 안 먹고 와서”라며 긴장감부터 드러내더니, “제게는 관객들과 만나는 것이 영화의 완성”이라며 “지금 이 자리에서 영화가 완성됐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부산영화제가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건 이런 순간이다. 이름난 스타와 스타 감독이든, 이제 막 영화의 바다에 첫 배를 띄운 신인이든 영화를 만든 사람과 관객 사이의 거리가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워진다. 그러고 보니, 윤종빈 감독과 배우 하정우 콤비를 처음 주목하게 된 것도 2005년 부산영화제에 이들이 첫 장편 ‘용서받지 못한 자’를 선보였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