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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앞줄에 성폭행 의혹 장가오리…25년 만에 여성위원 0명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향후 5년간 중국을 이끌어갈 20기 중국 공산당 핵심 지도층에 여성은 없었다. 지난 23일 중국 공산당은 7명의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외에 중국의 대내외 정책을 실제 결정·집행하는 정치국 위원 24명을 공개했는데, 모두 남성으로 이뤄졌다. 19기의 유일한 여성 정치국 위원이었던 쑨춘란(孫春蘭·72) 부총리의 은퇴에 따른 후임자가 임명되지 않았다. 중앙정치국 위원에 여성이 ‘전멸’한 건 1997년 15차 당대회 이후 25년 만이다.

 장가오리(가운데)전 부총리가 지난 16일 제20차 중국 당대회 개막식 때 참석한 모습. AFP=연합뉴스

장가오리(가운데)전 부총리가 지난 16일 제20차 중국 당대회 개막식 때 참석한 모습. AFP=연합뉴스

외신들은 이 같은 상황은 예견된 결과였다고 평가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집권 이후 낮아지고 있는 중국 내 여성 인권 상황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중국 테니스 스타 펑솨이(彭帥)를 성폭행했다는 의혹을 받는 장가오리(張高麗·75) 전 부총리(당시 서열 7위)가 지난 16일 중국 공산당 제20차 당 대회 개막식 무대 맨 앞줄에 모습을 드러낸 점에 주목했다. NYT는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미투(Me Too·성범죄 피해 사실을 밝히고 심각성을 알리는 캠페인) 주장이 나오면 (가해자인) 정치인을 해임하지만, 중국에서는 오히려 피해자가 검열받는다”고 지적했다. 천밍루 시드니대 중국학센터 교수는 “(이번 결과는) 중국 공산당이 여성의 정치적 지위를 높이는 데 관심이 없다는 메시지를 확실히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 주석의 여성관이 반영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지난 16일 시 주석은 20차 당 대회 개막식 연설에서 “성 평등 기본 정책을 지키고 여성의 법적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론 여성의 전통적인 성 역할을 여러 차례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실린 시 주석 어록에 따르면 그는 여성이 노인과 어린이를 돌보는 책임을 맡아야 하고 아이 교육도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공산당 창당 100주년 연설에서도 “중국 여성은 좋은 아내, 좋은 어머니가 돼야 한다”고 했다. 리넷 옹 토론토대 정치학과 교수는 블룸버그통신에 “이는 시 주석이 여성을 대변하는 것보다 지지자를 주변에 둠으로써 자신의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는 데에 훨씬 더 관심이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뿌리 깊은 남성중심 중국 정치 문화의 일면이란 해석도 있다. 발라리 탄 메르카트로 중국학연구소 연구원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중국 정치에는 뿌리 깊은 남성 우월주의가 있다”며 “여성 정치 대표자가 많지 않기에 여성 인권 관련 부분이 정치적 의제로 추진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천밍루 교수는 “중국에선 여성 정치인들이 남성과 함께 있을 경우 부도덕하다고 평가될 위험이 있다”며 “이로 인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정치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구축하기가 어렵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철의 여인’으로 불린 우이(吳儀) 전 부총리가 왜 독신이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3일 공산당 총서기 및 정치국 상무위원회(상무위) 구성원을 뽑는 당 20기 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1중전회)를 마친 뒤,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신임 상무위 기자회견장에 리창, 자오러지, 왕후닝, 차이치, 딩쉐샹, 리시 등 새 최고지도부와 함께 입장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3일 공산당 총서기 및 정치국 상무위원회(상무위) 구성원을 뽑는 당 20기 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1중전회)를 마친 뒤,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신임 상무위 기자회견장에 리창, 자오러지, 왕후닝, 차이치, 딩쉐샹, 리시 등 새 최고지도부와 함께 입장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문제는 이러한 여성 정치인의 부재로 인해 중국 내 여성 인권이 더 취약해 질 수 있다는 점이다. 빅터 시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대 중국 전문가는 CNN에 “중국에 매우 유능한 여성들이 많기에 이번 상황은 비극”이라며 ”정치권에 고위직 여성이 없으면 어린 여성 간부들의 고위직 진출을 돕는 사례도 적어지고 이는 당내 성 평등에 오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NYT는 ”지난 몇년 간 터져나왔던 중국 내 성폭력 반대운동 움직임은 (당국 개입으로) 급작스럽게 사라졌다”며 “공산당 내에 여성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부재한 상황으로 인해 당 지도부는 향후 이러한 여성 인권 문제 제기를 정권에 대한 도전으로 여길 공산이 더 커졌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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