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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 넘어놓고 또 한국 탓…방사포 10발 쏜 北 "의도된 도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북한이 24일 새벽 화물선으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했다. 해군 호위함이 기관총으로 20발을 경고 사격한 뒤에야 화물선은 물러났지만, 북한은 이를 빌미로 ‘9ㆍ19 남북 군사합의’에서 설정한 해상완충구역에 방사포(다연장로켓의 북한식 표현) 10발을 쐈다.

24일 새벽 북한의 화물선 한 척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약 38분 동안 침범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북한은 해군의 경고 사격을 빌미로 방사포를 서해 해상완충구역으로 10발 쐈다. 사진은 지난 20일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서 바라본 NLL 인근 해역에 중국 꽃게잡이 어선의 모습. 뉴스1

24일 새벽 북한의 화물선 한 척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약 38분 동안 침범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북한은 해군의 경고 사격을 빌미로 방사포를 서해 해상완충구역으로 10발 쐈다. 사진은 지난 20일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서 바라본 NLL 인근 해역에 중국 꽃게잡이 어선의 모습. 뉴스1

북한 선박의 NLL 침범은 윤석열 정부 들어선 처음이다. 지난 3월 8일 대통령선거를 하루 앞두고 북한 선박이 NLL을 침범했으나, 당시 정부가 하루 만에 선박과 군인 등 탑승자 전원을 북측에 인계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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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NLL을 넘은 선박은 북한이 과거 중동 지역에 스커드 미사일을 수출하기 위해 썼던 화물선이어서 사실상 북한군이 위장선으로 NLL을 침범한 “의도된 도발”이란 풀이가 나온다.

북한이 지난 18일부터 이틀간 동ㆍ서해 해상완충구역에 350여발의 포탄을 쏜 지 5일 만에 도발을 재개한 것을 두고는 “중국을 배려한 조치”란 분석이 뒤따른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을 확정하는 제20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가 끝난 뒤에야 무력시위를 감행했다는 점에서다.

"1㎞ 이내 근접, 긴박한 상황"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화물선 1척이 NLL을 넘은 건 24일 오전 3시 42분쯤이다. ‘무포호’로 식별된 이 선박은 백령도 서북방 약 27㎞ 떨어진 곳에서 월선해 NLL 이남 3.3㎞ 해역까지 들어왔다. 무포호는 지난 1991년 ‘스커드-C형’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싣고 시리아로 가던 중 미 정보당국에 적발됐던 화물선으로 북한군이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군 관계자는 “(무포호가) NLL을 침범하기 전부터 추적하고 있었다”며 “20여 회에 걸쳐 1ㆍ2차 경고 방송을 했지만 계속 남하했고, M60 기관총으로 10발씩 두 차례 총 20발의 경고 사격을 한 뒤에야 변침해 오전 4시 20분쯤 북상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함정과 선박 간 거리가 1㎞ 이내로 근접하는 등 긴박한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약 38분간 NLL을 침범했던 무포호는 뒤쫓는 해군 함정에 "접근하지 말라"며 적반하장 식 태도까지 보였다고 한다. 군 소식통들에 따르면 당시 무포호 대응엔 지난해 전력화한 대구급(2800t급) 신형 호위함이 나섰다. 인근에 대기하고 있던 고속정 등도 현장으로 긴급 출동하고 있었다. 군 관계자는 “우발 상황을 대비해 (전투기 등) 합동 전력도 준비 중이었다”고 밝혔다.

또 "남측이 먼저 사격" 우겨

북한군은 무포호가 돌아가고 1시간여 뒤엔 포사격까지 벌였다. 이날 오전 5시 14분쯤 백령도에서 15㎞ 정도 떨어진 황해남도 장산곶 일대에서 NLL 이북 해상완충구역에 방사포 10발을 쐈다.

그러면서 최근 포사격 때처럼 해군의 경고 사격을 빌미로 삼았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이날 아침 대변인 명의로 방사포 발사가 “적 함선을 강력히 구축하기 위한 초기 대응 조치”라며 “최근에 지상 전선에서의 포사격 도발과 확성기 도발에 이어 해상 침범 도발까지 감행하고 있는 적들에게 다시 한번 엄중히 경고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24일 오전 5시 14분쯤 황해남도 장산곶에서 서해 해상완충구역으로 방사포 10발을 쐈다. 사진은 지난 2020년 3월 12일 북한군이 122㎜ 방사포를 쏘는 모습. 연합뉴스

북한은 24일 오전 5시 14분쯤 황해남도 장산곶에서 서해 해상완충구역으로 방사포 10발을 쐈다. 사진은 지난 2020년 3월 12일 북한군이 122㎜ 방사포를 쏘는 모습. 연합뉴스

군 관계자는 북한의 ‘확성기 도발’ 주장과 관련해선 “대북 확성기를 현재 운영하지 않는다”며 “다만 지난 18일 중부전선에서 응급환자 이송 헬기가 민통선(비무장지대 내 민간인 출입통제선) 이북에서 이동하는 것과 관련해 후송 조치를 알리는 방송을 한 적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도발 양상을 두고 “한반도 긴장 조성이란 명백한 의도를 갖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중국 당대회를 의식해 주요 행사가 있는 며칠을 빼고는 계속 긴장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도발 흐름을 이어나가고 있다”며 “북한이 대남 도발의 1순위인 NLL을 자극하는 것은 긴장의 책임을 남측에 돌리려는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훈련에 '도발 맞불' 이어질 듯

당분간 한ㆍ미 연합훈련을 비롯한 여러 군사 훈련이 예정돼 있어 북한의 도발이 더 잦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당장 해군이 ‘호국훈련’의 일환으로 주한미군 전력이 참가하는 대규모 실기동훈련인 ‘서해합동훈련’을 24일부터 나흘간 일정으로 시작했다.

이번 훈련에는 해군의 이지스 구축함 등 함정 20여척과 육군의 아파치 공격헬기, 공군의 F-15KㆍKF-16 등은 물론 주한미군의 아파치 공격헬기와 A-10 공격기도 동원된다. 군 관계자는 “북한군의 NLL 국지 도발 시나리오와 함께 북한 특수부대가 공기부양정으로 고속 침투하는 상황에서 한ㆍ미가 이를 격멸하는 시나리오로 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는 한ㆍ미 군용기 240여대가 참가하는 대규모 연합 공중훈련이 실시된다. 이와 관련, 군 소식통은 “예년의 경우 북한은 압도적인 한ㆍ미 공중 전력의 위세에 눌려 훈련 기간엔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비롯해 수뇌부의 집무 공간을 지하시설로 옮기는 등 예민한 움직임을 보였다”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2017년 12월 6일 한·미 연합공중훈련 '비질런트 에이스(Vigilant Ace)'에 참가한 양국 공군의 군용기들이 한반도 상공에서 편대 비행을 하는 모습. 오른쪽은 미국의 초음속 폭격기 B-1B '랜서'이다. 그 뒤로 양국 전투기들이 함께 편대비행하고 있다.    왼쪽부터 공군 F-16 2대, F-15K 2대, 미 공군 B-1B 1대, F-35A 2대, F-35B 2대. 사진 공군

사진은 지난 2017년 12월 6일 한·미 연합공중훈련 '비질런트 에이스(Vigilant Ace)'에 참가한 양국 공군의 군용기들이 한반도 상공에서 편대 비행을 하는 모습. 오른쪽은 미국의 초음속 폭격기 B-1B '랜서'이다. 그 뒤로 양국 전투기들이 함께 편대비행하고 있다. 왼쪽부터 공군 F-16 2대, F-15K 2대, 미 공군 B-1B 1대, F-35A 2대, F-35B 2대. 사진 공군

하지만 북한이 최근 들어 미국의 전략자산인 핵 추진 항공모함이 떠 있는 해상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전례 없는 과감한 모습을 보이는 상황이어서 돌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북한이 한ㆍ미 군용기가 떠 있는 상공만 피해서 탄도미사일을 쏘는 등 새로운 도발을 할 수도 있다”며 “그렇다 해도 핵실험 등 고강도 추가 도발에 대비해 현재 괌에 배치된 B-1B 폭격기 출격 등 전략자산 전개 카드는 아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계속되는 ‘강 대 강’ 국면에서 북한의 도발 카드가 많이 남아 있는 만큼 군사적 대응을 신중하게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북한이 국지 도발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황록 전 국방정보본부장은 "북한은 이미 사전에 계획한 시나리오에 따라 장소와 종류를 달리하며 다양한 도발을 벌이고 있다"며 "2010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과 같은 대남 도발도 노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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