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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혁재의 사람사진

흙으로 그리는 채성필/ 캔버스에 피어난 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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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권혁재 기자 중앙일보 사진전문기자
권혁재의 사람사진 /채성필 화가

권혁재의 사람사진 /채성필 화가

화가 채성필의 작품을 처음 본 건 십수 년 전 SNS에서였다.
컴퓨터 모니터로도 대지의 질감이 확연히 느껴지는 그런 작품이었다.

당시 그는 프랑스에서 활발하게 활약하는 화가였다.
눈으로 직접 보고 싶은 작품이었지만 프랑스에 있으니 언감생심이었다.

이런 차에 한국에서 그의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전시 장소는 서울 강남의 소담한 카페였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작가가 카페 전시라니 의외였다.

채성필 화가는 끝까지 변치 않는 모티브로 '엄마를 대하는 느낌의 작품'으로 삼고 싶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그에겐 흙, 물, 자연이며 땅이다.

채성필 화가는 끝까지 변치 않는 모티브로 '엄마를 대하는 느낌의 작품'으로 삼고 싶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그에겐 흙, 물, 자연이며 땅이다.

장소야 그렇지만 직접 보니 작품에서 더 대지가 느껴졌다.
이유인즉슨 흙으로 그린 그림이었기 때문이었다.
대지의 질감을 손으로 만져보고 싶은 유혹까지 일 정도였다.
그래서 농담 삼아 채 작가에게 만져보고 싶은 충동이 인다고 말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가 내 손을 이끌어 그림을 만지게 했다.
그의 돌발 행동에 꽤 놀랐지만, 더 놀란 건 확연한 대지의 질감이었다.

최근 한국에서 그의 전시 소식이 들렸다.
이번엔 전시장이 카페가 아니라 ‘가나아트센터’였다.
대부분의 화가가 선호하는 곳에서 전시라니 놀랍기도 했다.

십수 년 사이 그는 ‘흙의 작가’라는 이름을 얻었고 이번 전시도 흙이 소재이자 주제였다.

동양화과 교수들이 수묵화 이외에 거들떠보지도 않을 때 일랑 이종상 화가만 그를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워 줬다. 재료와 철학에도 영향을 끼친 게 이종상 화가이기도 했다. 이에 채성필 화가는 휴대폰 연락처에 이종상 화가를 '나의 선생님'이라고 입력해 놓았다. 30여 년 전 '가나아트센터'에서 이종상 화가가 전시한 바 있기에 채 작가는 이번 전시가 더 뜻깊다고 했다. 전시는 10월 23일 까지.

동양화과 교수들이 수묵화 이외에 거들떠보지도 않을 때 일랑 이종상 화가만 그를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워 줬다. 재료와 철학에도 영향을 끼친 게 이종상 화가이기도 했다. 이에 채성필 화가는 휴대폰 연락처에 이종상 화가를 '나의 선생님'이라고 입력해 놓았다. 30여 년 전 '가나아트센터'에서 이종상 화가가 전시한 바 있기에 채 작가는 이번 전시가 더 뜻깊다고 했다. 전시는 10월 23일 까지.

대체 동양화가인 그가 흙으로 대지를 그리게 된 사연은 어찌 된 까닭일까.
“대학교 2학년 때부터 흙으로 그렸어요.
어린 시절부터 내 안에 내재한 뿌리가 흙이었기에 그랬죠.
교수님들이 수묵화 이외에 다른 거로 하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때도 그랬습니다.
그래도 나한테는 그 ‘수묵의 정신’이 바로 ‘흙의 정신’이었어요.”

그는 2003년 프랑스로 가서 더 ‘흙의 정신’과 씨름했다.
“유럽에선 신이 인간을 만든 첫 번째 창작 도구가 흙이라고 하죠.
동양에서는 '음양오행'의 근본이 흙이죠. 결국 동서양을 아우르는 게 흙인 겁니다.”

물감이 흐르면 보통 흐른 자국이 물감으로 보인다. 그런데 채 화가의 그림은 흐르는 자국이 비어 있어 보인다. 그는 이게 물의 역할이라고 했다. 마치 강물이 흐르는 것을 위에서 봤을 때 대지를 가르고 지나가는 것처럼 보이듯 그의 그림 또한 그러한 이유이다.

물감이 흐르면 보통 흐른 자국이 물감으로 보인다. 그런데 채 화가의 그림은 흐르는 자국이 비어 있어 보인다. 그는 이게 물의 역할이라고 했다. 마치 강물이 흐르는 것을 위에서 봤을 때 대지를 가르고 지나가는 것처럼 보이듯 그의 그림 또한 그러한 이유이다.

결국 그가 오롯이 흙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은 인간과 자연의 근원이 흙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