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랄프 깁슨 사진미술관’을 개관하니 와서 보세요.”
이재구 고은사진미술관 관장과 통화 중 “아니, 왜?”란 물음이 나왔다.
현대사진의 거장인 랄프 깁슨 미술관이 생긴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그것도 부산에 개관한다니 그 이유가 자못 궁금했다.
흔히 랄프 깁슨을 초현실주의 사진의 선구자로 일컫는다. 현실에서 절제하고 또 절제한 요소만으로 표현하는 그만의 방식은 보이는 것보다 그것으로부터 발산되는 것을 보도록 유도한다.
결국 현실이되 현실 너머의 세계로 이끌기에 초현실주의라 일컫는 게다. 이 독특한 표현법으로 랄프 깁슨은 세계 사진 흐름의 한 축을 열었다.
이런 그의 입을 통해 미술관을 여는 까닭을 듣고자 부산으로 향했다.
- “유럽엔 수많은 사진박물관에 나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아시아에서는 내 작품의 존재감이 좀 부족하다. 고은문화재단 김형수 이사장과 이런 아쉬움을 이야기하다가 한국에서 내 작품과 내 비전을 표현하는 게 자연스럽겠다며 교감했다. 그 교감 후 3년 만에 개관하게 되었다. 이 미술관에 전시되는 작품이 아시아와의 시각적인 가교가 되기를 기대한다.”
자신의 이름으로 된 미술관을 위해 그는 무려 1000여 점을 기증했다.
개관전에 나온 사진은 그의 대표작인 블랙 3부작이다. 1970년과 1974년 사이에 출판된 『몽유병자』 『데자뷔』 『바다에서의 날들』로 세계 사진예술사의 획을 긋는 작품이자 사진가에게는 교과서와 다름없는 것이다.
자신의 이름에 걸맞은 작품을 앞에 두고 그가 밝힌 바람은 이러하다.
- “미술관을 넘어 한국 사진의 진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싶다. 그래서 내 이름을 딴 상을 만드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이로써 한국이 아시아에서 시각적으로, 예술적으로 더 큰 발전을 꾀할 수 있을 거다.”
그가 마지막으로 덧붙인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 "여기서 나는 음악 자체보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라디오 역할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