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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밀 오너 “우유산업 한계” 직원들 “경영실패 떠넘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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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푸르밀이 지난 17일 전 직원을 대상으로 보낸 이메일. 사업종료 사실과 그에 따른 정리 해고 방침을 통보했다. [푸르밀 이메일 캡처]

푸르밀이 지난 17일 전 직원을 대상으로 보낸 이메일. 사업종료 사실과 그에 따른 정리 해고 방침을 통보했다. [푸르밀 이메일 캡처]

“(회사를 살릴) 방법을 좀 가르쳐 주세요. 우유 산업이라는 게 근본적으로 안 되는 상황입니다. 특히 3등 회사는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자산을 매각해서 될 게 아니에요.”

18일 오후 5시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있는 유제품 전문기업인 푸르밀 본사. 신준호(81) 푸르밀 회장은 퇴근길에 중앙일보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표정과 말투는 담담했으나 “(직원보다) 제가 걱정이 제일 많다”고 말할 땐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전날 푸르밀은 신동환(52) 대표이사 명의로 전 임직원 350여 명에게 이메일을 보내 다음 달 30일 자로 사업을 종료하고, 정리해고한다고 통보한 상태다. 경영 악화에 오너 경영인이 하루아침에 백기를 들자 회사는 ‘초상집’이 됐다.

신준호

신준호

신 회장은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의 넷째 동생으로, 2007년 롯데에서 분리 독립했다. 이듬해 푸르밀로 사명을 바꿨고 그동안 ‘가나초코우유’ ‘비피더스’ 같은 제품을 생산해왔다. 2018년엔 차남인 신동환 대표가 취임해 부자(父子) 경영 체제로 운영돼 왔다. 다음은 신 회장과 일문일답.

갑자기 사업 종료와 해고 통보를 했다.
“(직원들도) 걱정이 많겠지만 나는 직원들보다 10배 더 걱정이 많다. 끝까지 (회사를 살릴) 노력은 해 보겠다.”
매각이나 자구책 마련 등 다른 방법은 없었나.
“방안이 있다면 왜 그렇게 하겠나.”
부동산 매각을 통해 경영 정상화가 가능하다는 내부 의견도 있던데.
“잘 알겠다. 내가 제일 걱정이 많다.”

이날 문래동 본사 인근에서 만난 회사 직원들은 착잡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직원 A씨는 “회사가 어려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급박하게 해고를 통보할 줄은 몰랐다”며 허탈해했다. 그는 “특히 40대 중반 이상 나이 든 사원은 이직도 어려우니 더 난감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직원 B씨는 “오늘 오너 경영인이 모두 출근했는데 직원들에게 처우 관련한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며 답답해했다. 이 회사는 퇴직금 외에 추가로 보상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간부급인 C씨는 “아직은 대형마트 납품 계약이 남아있어 최대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푸르밀은 12월 말까지 이마트·홈플러스·CU·이마트24 등과 자체브랜드(PB) 공급 계약을 맺고 있어, 이들은 다른 거래선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회사 내부에서는 오너 경영의 실패라는 주장도 나왔다. 신 대표가 취임한 2018년부터 4년 내리 적자를 봤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기간에 영업적자는 15억→89억→113억→124억원으로 불어났다. 매출은 20% 이상 빠졌다. 유업계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남양유업과 풀무원다논 등이 적자 상태다. 직원들은 노조를 중심으로 “오너가의 경영 실패를 직원에게 떠넘긴다”고 주장하며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 문래동 본사 부지(4618.9㎡)가 800억원대, 부산 해운대 부동산을 포함해 1200억원가량의 자산이 남아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시장에선 LG생활건강이 푸르밀 인수를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LG생건 측은 “구체적인 이유를 밝힐 수는 없으나 푸르밀 인수를 진행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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