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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안 본 걸로 할게"…前해경청장, 공무원 피격 은폐혐의 소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해 공무원 피격 사망 사건 관련 문재인 정부의 조직적 은폐 및 자진 월북 조작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 이희동)가 14일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하고 있다. 전날 서욱 전 국방부 장관에 이은 두 번째 핵심 피의자 소환이다. 김 전 청장은 또 감사원 결과에서 자진 월북과는 상반되는 핵심 증거인 피살 공무원이 한자가 적힌 구명조끼를 착용했다는 보고를 받곤 “난 안 본 걸로 할게”라고 발언했다고 지목된 장본인이다.

해경은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이대준씨가 북한군 총격에 사망하기 전후로 실종자 수색과 관련 수사를 책임졌다. 사건 발생 이후 일주일 만인 2020년 9월 29일 “이씨가 자진 월북한 것으로 판단한다”는 중간수사 결과를 내놓곤, 정권교체 이후 지난 6월 16일엔 “월북 의도를 인정할 만한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번복해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김 전 청장은 ▶이씨 수색을 위한 관련 정보를 수색팀에 공유하지 않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자진 월북 정황을 속단한 한편 ▶이와 배치되는 사실은 은폐한 혐의(직무유기·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허위공문서작성 등)를 받고 있다.

지난해 10월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김홍희 당시 해양경찰청장이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지난해 10월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김홍희 당시 해양경찰청장이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전날(13일) 감사원이 발표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감사 결과에 따르면, 해경은 2020년 9월 22일 오후 6시쯤 청와대 국가안보실로부터 전날 어업지도선에서 근무 중 실종된 이씨가 북측 해역에서 발견된 정황을 전달받았다. 당시 이씨는 생존해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이씨를 수색 중이던 해경은 청와대 안보실이 “정보가 보안사항”이라고 하자 발견 위치 등 수색에 필요한 추가 정보를 더는 확인하지 않고 수색팀 이동 등 해경 차원의 구조 조처를 하지 않았다.

이후 3시간 40분 만인 오후 9시 40분쯤 이씨는 북한군 총격으로 사망했다. 오후 10시 11분쯤엔 북한군이 해상에서 시신을 소각한 정황이 군 첩보망에 포착됐다. 정보당국으로부터 이 같은 사실을 보고받은 청와대는 이튿날(23일) 오전 1시 관계장관회의를 열었다. 같은 시각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UN) 총회에서 사전 녹화된 영상을 통해 한국전쟁 종전선언을 제안하는 연설을 했다.

김 전 청장은 23일 오전 2시 30분쯤 청와대 안보실로부터 이씨 피살과 시신 소각 정보를 전달받았다. 하지만 ‘보안을 유지하라’는 안보실 지침에 따라 “보안이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수색·구조를 종료하면 그 사유를 설명할 수 없다”며 현장 수색팀에 공유하지 않았다. 이에 수색팀은 엉뚱한 남측 해역에서 이전과 동일한 수색·구조 작업을 이어갔다.

청와대의 실종 공무원 북한 피격 사건 대응 일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청와대의 실종 공무원 북한 피격 사건 대응 일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안보실은 같은 날 오후 3시쯤 해경에 ‘선박 폐쇄회로(CC)TV 사각(지대)에서 신발 발견, 지방에서(가정불화) 혼자 거주’ 이씨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와 자진 월북 정황이 담긴 언론대응 지침을 하달했다. 이에 따라 해경은 다음 날(24일) 1차 브리핑에서 “자진 월북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상세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나흘 뒤인 28일 김 전 청장은 이씨가 표류 당시 착용한 구명조끼에 한자(漢字)가 적혀 있다는 내용을 보고 받고 “나는 안 본 걸로 할게”라고 발언한 것으로 조사됐다. 해경은 이씨가 근무하던 어업지도선과 민간 어선에선 한자가 적힌 구명조끼를 사용하지 않는 데다 국내에서도 유통·판매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당시 인근 해역에서 조업 중이던 중국 어선이 이씨를 먼저 발견했을 가능성을 수사에서 배제한 셈이다. 이씨가 애초에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고 바다에 빠졌다면 단순 실족 사고일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해경 안에서는 29일 2차 중간수사 브리핑 초안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수사팀과 발표자로부터 ‘월북으로 판단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의 의견이 제기됐지만, 김 전 청장은 “다른 가능성은 말이 안 된다. 월북이 맞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이씨 표류 예측 분석과 더미 실험 등에서도 “(월북하려는)인위적 노력이 있었다”는 결론에 부합하지 않으면 해당 분석·실험 결과를 제외하는 방식으로 왜곡했다.

윤성현 해양경찰청 수사정보국장(오른쪽 두 번째)이 2020년 10월 22일 오후 인천 연수구 해양경찰청 대회의실에서 서해 피살 어업지도 공무원 실종 수사 관련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해경은 수사 중간 브리핑을 통해 "정황 등을 고려해 실종자가 도박빚 등으로 인한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월북했다"고 발표했다. 뉴스1

윤성현 해양경찰청 수사정보국장(오른쪽 두 번째)이 2020년 10월 22일 오후 인천 연수구 해양경찰청 대회의실에서 서해 피살 어업지도 공무원 실종 수사 관련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해경은 수사 중간 브리핑을 통해 "정황 등을 고려해 실종자가 도박빚 등으로 인한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월북했다"고 발표했다. 뉴스1

해경은 3차 브리핑(2020년 10월 23일)에 앞서 어업지도선 내 구명조끼 수량에 이상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씨가 실종 당시 구명조끼를 착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자문을 구한 범죄심리 전문가 7명 중 2명만 월북 가능성을 언급했으나, 해경은 “이씨가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현실 도피를 위해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국회와 언론에 발표했다.

검찰은 이 같은 해경의 사실 은폐 및 미확인 근거에 따른 월북 결론이 김 전 청장을 비롯한 해경의 자체 판단인지, 안보실 등 청와대 윗선의 보다 구체적인 지시가 있었던 것인지를 캐고 있다. 감사원이 전날 해경 관계자 진술 등을 토대로 발표한 김 전 청장의 발언 경위에 대해서도 추궁하고 있다. 감사원 수사요청서를 접수한 검찰은 현재 진행 중인 대통령기록관에 대한 압수수색과 관련자 소환을 이어가면서 김 전 청장 등 피의자들의 혐의를 보강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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